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초판본 자산어보

[도서] 초판본 자산어보

정약전 저/권경순,김광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손암 정약전(1758~1816)은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됐다. 흑산도는 한양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정가의 삼형제를 몹시 두려워하고 시기했던 양반들은 순조 임금한테서, 뜻있는 지기들한테서 그들을 멀리 떼놓으려 했으리라.

 

하지만 손암이 지녔던 실사구시지학의 정신이 한양에 있든 어디에 있든 달라질손가. 손암은 흑산도에서 바다와 바닷속에 사는 생물에 매료돼 일일이 관찰하고 탐구한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때 청년 어부 장창대를 알아 사제 간의 연을 맺게 되었으니.

 

창대의 본명은 덕순(德順)이었다. 당시 덕순은 외지에서 온 손암을 잘 따랐다. 손암 입장에서도 영특해 보이는 아이가 자신을 따르니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이름도 창대(昌大)’라고 직접 지어줬다. 글을 깨우치는 것은 손암이 스승이었으나, 바다와 바다 생물에 관한 것은 창대가 스승이었다. 손암은 그렇게 삶의 활력을 새로이 얻었다.

 

손암은 장덕순과 함께 여러 날을 머무르며 자산어보원고를 매만졌다. 원고를 쓰는 데 도움을 준 만큼, 당대의 학자였던 손암이 장덕순의 공부 역시 도와주었을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우정과 학문을 나누었다. 손암은 장덕순에게 받은 도움을 특별히 자산어보서문에 기록하여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도록 했다.” - 옮긴이의 머리말에서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손암이 1814(순조 14)에 마무리했다. 자산의 '()'는 검다는 의미로 흑산의 '()'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산(玆山)어보'란 곧 흑산(黑山)도의 물고기 사전이라는 뜻이다. ‘검을 흑()’ 자에서 캄캄한 앞날이 연상될뿐더러 당시 흑산도는 살아 나오기 힘든 유배지로 악명이 높았으니, 걱정할 가족들을 위해 편지에 ()’로 고쳐쓰면서 붙은 이름이라한다

 

최근 이준익 감독은 신안의 도초도에서 손암과 창대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었다. 손암 역으로 배우 설경구씨가, 창대 역으로 변요한씨가 열연했다.

 


 전남 흑산도 사리마을의 유배문화공원

 

신안군은 영화 촬영 세트장을 보수해 관광자원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는가. 군은 1998년 손암이 유배 생활을 했던 흑산도 사리마을의 복성재(復性齋)를 복원, 유배문화 공원으로 조성한 바 있다. ‘복성재는 손암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곧 사촌서당(沙村書堂)이다. 동생 다산이 지어준 글귀에서 따왔다.

 

자산어보우리 바다의 우리 물고기 226의 정보들을 4(55)으로 분류해 3권으로 묶었다. 분류를 보면 인류(鱗類 : 비늘이 있는 종류)’무린류(無鱗類 : 비늘이 없는 종류)’, ‘개류(介類 : 껍데기가 있는 종류)’잡류(雜類 : 기타 바다 생물)’로 돼 있다. 1권은 인류’, 2권은 무린류개류’, 3권은 잡류를 다루었다. 현재 원본은 없고 필사본만 전한다.

 

손암은 곧 해배될 것이라는 소문에 흑산도를 떠나 육지와 가까운 우이도로 옮겼다. 하지만 그는 끝내 우이도에서 숨을 거두었고, 창대 역시 손암이 세상을 떠나자 술로 지내다 생을 마감했다.

 

다산은 형의 부고를 듣고 급히 제자 이청을 보내 원고를 수습, 책으로 펴냈다. 자산어보에 이청의 설명이 대폭 추가(전체 분량의 40퍼센트)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

 

권경순과 김광년 두 사람이 자산어보를 우리말로 옮겼다. 권경순은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대외협력팀장으로 재직 중이고, 김광년은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 겸직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 뒷부분에 한자 원문도 수록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