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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너머, 더 깊은

[도서] 와인 너머, 더 깊은

마숙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때 나는 헤이리 마을을 광적으로 좋아했었다. 마을을 찾을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는 모습에 감탄 또 감탄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한번은 직장 동료들과 MT도 다녀왔었지.

 

저자 마숙현은 헤이리 마을 건설 초창기 싱크탱크 멤버로 참여했다. 마을이 형성된 후에는 회원위원장, 뉴프로젝트위원장, 브랜딩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마을에 살면서 직접 와인샵을 운영하고, 파스타 전문점 '식물감각'을 17년째 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와인을 마시며 떠오른 시, 소설, 철학, 역사, 그림, 음악, 달리기, 사랑, 영화, 커피, 음식, 헤이리에서의 일상 같은 것들을 엮은 달콤한 마리아주같은 에세이다.

 

와인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지만 와인의 객관적 사실에만 몰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와인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와인이 내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와인이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내가 와인을 어떤 방법으로 즐기는지, 와인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또한 그동안 와인에 대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관점에서 와인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이 진정 와인을 사랑하고 와인의 본질에 다가가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듯이 보여주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 ‘책머리에중에서 

 

나는 10여 년 전 파사트를 몰고 프랑스 전역을 돌며 2주간 와이너리 투어를 했다. 가이드 투어를 하면서 까브를 구경하고, 시음도 했다. 맘에 드는 와인이 있으면 서너 병씩 트렁크에 채웠다. 그렇게 다녔던 투어는 영감을 무한대로 자극했고, 지금 소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당시 특이했던 경험은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한 와이너리에서 개인 투어까지 해주었던 일이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구매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그때의 아련한 감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저자를 통해 새로운 와인을 많이 알게 돼 즐거웠고,  와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도 더 없이 좋았다. , 와인의 가장 좋은 안주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책은 맨 먼저 샤갈, 아서왕, 월리엄 모리스의 삼각관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나파 밸리의 플로라 스프링스 트릴로지(Flora Springs TRILOGY)’를 소개한다. 이어 34종의 와인과 이에 곁들인 이야기를 한아름 풀어낸다.

 

개중 가장 인상 깊었던 와인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탈리아 와인 메이커 비비 그라츠(Bibi Graetz)의 '소포코네 디 빈칠리아타(Soffocone de Vincigliata)'.

 


▲소포코네 디 빈칠리아타

 

이 와인의 레이블에는 벌거벗은 여자가 남자를 잡은 채로 무릎을 꿇고 있다. ‘소포코네는 토스카나 지방의 사투리로 오럴 섹스를 뜻한다. 비비가 귀향했을 때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와이너리는 잘 관리되지 않아 동네 청춘남녀들의 밀회장소로 애용되고 있었다.

 

이에 착안한 그는 와이너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그렸다. 이 와인은 에로틱한 스토리텔링 때문에 곧 유명해졌다. 이런, 자신의 재능을 쏟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비비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한편 까사마타 로쏘(Casamatta Rosso)신의 물방울에도 소개된 와인으로 그가 만든 최고의 작품 Testamatta보다 10분지 1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비가 자신이 만든 와인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레이블의 모든 그림을 직접 그렸다. 왼쪽부터 Casamatta Rosso, Testamatta, Soffocone de Vincigliata, It’s a Game (와인명 맞다).

 

다른 하나는 랑케 아르보니아(ARBORINA Langhe)’. 저자는 빈티지 2004년을 골랐는데, 이는 식물감각의 오픈 연도와 일치한다. ‘ARBORINA Langhe’는 이탈리아 와인 메이커 엘리오 알타레가 추구하는 바롤로 와인의 방향을 제시하는 와인이다. 저자는 네비올로의 날카로움이 전혀 없는 달콤한 풍미와 쓴맛의 피니쉬가 길게 이어진다며, “바롤로의 진면목을 비로소 체험하는 환상적인 와인이라고 평한다.

 

나는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업장에서는 소믈리에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고객들과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와인 강좌를 수년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와인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자연의 산물이며, 슬로푸드를 대표하는 식문화입니다. 또한 와인은 인류역사와 함께해온 문화적 콘텐츠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삶에 유용하고, 와인에 내재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은 사람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제공하는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고입니다. 무엇보다 와인은 모든 만남과 인연을 조화롭게 해줍니다.” - 296

 

내 보기에 식물감각은 저자의 공간에 대한 철학, 헤이리에 대한 미래를 담고 있다. 책을 내려놓으매 저자가 오랜 세월 헤이리와 함께 하면서 와인샵에서 와인을 나눈 이야기, 수많은 와인과 와이너리,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미듯 다가온다.

 

헤이리와 식물공간의 사계절을 담은 이안수의 사진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실로 꿰매어 만든 사철 방식의 제본은 책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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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goodchung

    헤이리에 가서 와인 한 잔 하고 싶습니다^^

    2021.05.07 06:1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사랑지기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얼른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자유롭게 다녀왔으면 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21.05.07 12:00
  • 스타블로거 부자의우주

    와인 너머 더 깊은, 리뷰를 통해 공감이 더 생겼습니다.
    사랑지기님의 마음을 끈 부분이 참 좋네요 ^^

    2021.05.07 09: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사랑지기

      네 감사합니다. 저자의 필력이 능준해서 글이 뭉근히 와 닿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

      2021.05.07 12:02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꼭 읽어야 할 분이 읽고 쓴 리뷰구나...
    체험한 경험에다 알고 있는 지식이 글력을 만나니, 이렇게나 멋진 리뷰가 됩니다.
    비비가 화가보다는 술 잘 마시게 생겼네 라는 첫 인상입니다 ㅋㅋㅋ.

    2021.05.13 13:5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사랑지기

      ㅎ 감사합니다. 비비의 인상은 8할이 술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21.05.15 20:42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