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의 카르테 4》는 청년 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의 다섯 번째 이야기다.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夏川草介)는 자신의 필명을 지을 때 나쓰메 소세키에서 ‘나쓰(夏)’를, 가와바타 야스나리에서 ‘카와(川)’를,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草枕)」란 작품에서 ‘소(草)’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스케(介)’를 따와서 작명했다고 한다. 과연 문학도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신슈대 의학부를 졸업한 현직 의사다. 레지던트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완성도 높은 필력으로 금세 인기를 모았다. 벌써 데뷔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여기서 ‘카르테(Karte)’는 환자의 진료기록부, 곧 ‘차트’를 뜻한다. ‘신의 카르테’란 제목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환자의 생사를 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사의 사명을 담고 있다.
가령 다음의 글을 보면 저자가 ‘신의 카르테’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운명은 신이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일하면 그걸로 충분하다.”(2권 8쪽) - 이 말은 나쓰메 소세키가 말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정하는 것은 확실하게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의 영역을 포기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정해진 운명 안에서도 힘껏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영역이라면 인간은 꽤나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0권 236쪽)
신의 카르테 연작은 다음과 같이 발간되었다(연도는 일본에서 출간된 해). 우리말로 옮긴 번역작가를 따로 소개한 것은 임상용어에 대한 풀이라든가 역주 같은 것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채숙향 번역작가에 주목하고 싶다. 마치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보는 것처럼 전문용어를 세련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카르테 1권 (2011) / 백지은 옮김
신의 카르테 2권 (2013) / 채숙향 옮김
신의 카르테 3권 (2014) / 김수지 옮김
신의 카르테 0권 (2015) / 백지은 옮김
신의 카르테 4권 (2019) / 김수지 옮김
0권은 프리퀄 역할이다. 구리하라 이치토가 시나노대학 의학부 본과 4학년에서 레지던트 1년 차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권부터 이치토가 내과전문의가 돼 혼조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이 진료한 환자와 그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치토가 대학병원보다 혼조병원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마쓰모토라는 마을을 좋아한다는 것, 24시간 365일 환자를 떠맡고 있는 병원이라는 조금은 무모하다싶은 이념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신의 카르테는 잔잔한 문체에 코 끝이 찡해지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 이번 4권은 3권에서 시간이 좀 흘렀다. 이치토는 내과의사의 길을 걸은 지 9년차다. 2년 전 혼조병원에서 시나노 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시나노 대학병원에서는 이치토가 전문의를 획득했을 때부터 들어올 것을 권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1권에 여러 차례 나온다. 혼조병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기 스나야마도 대학병원에서 일한다. 다쓰야만 혼조병원에 있다.
그리고 1년 전 아내 하루나와 결혼을 했고, 딸 고하루가 생겼다. 아이는 왼쪽 고관절 이상으로 생후 6개월부터 신슈 어린이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치토는 이제 서른 중반이다.
“학교생활을 만끽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의사가 됐고 지금은 아빠가 됐다. 알아채지 못할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직장도 위치도 가족도, 모든 것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97쪽)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이치토는 혼조병원의 인턴 때부터 기거했던 온타케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즉 “지은 지 20년이 지난 유령 저택 같은 2층짜리 목조 가옥”(1권 43쪽)이자 “오래된 매화나무와 함께 당당하게 서 있는 오래된 민가”(4권 44쪽)에서 세 가족이 여전히 “벚꽃방”에 살고 있다.
사실 아내를 만난 것도 온타케소였다. 하루나는 이치토가 갓 레지던트가 되었을 무렵 마쓰모토에 있는 북알프스 촬영 차 숙소 겸 온타케소로 찾아왔었다. 도라지방의 남작과 들국화방의 학사도 그대로 있으니 반갑다고 해야 될까.
구리하라가 보는 대학병원의 위상은 부정적이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난폭한 초석 위에 부조리와 불합리와 모순이라는 세 개의 기둥을 세우고 권위라는 커다란 지붕을 얹은 곳이 대학병원이다.”(36쪽)
이러한 부정적인 느낌은 향후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가늠하게 해준다. 본문에는 야마자키 도요코가 묘사한 “하얀 거탑”(244~245쪽)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사실 ‘하얀 거탑’이라는 말은 뒤(490쪽)에도 등장하는데, 후자 쪽의 뉘앙스가 묘하다.
구리하라는 시나노 대학병원에서 제4내과 3팀에 속해 있다.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팀장 호조 선생, 내과의 4년차 리큐, 인턴 대장 그리고 9년차 구리하라 해서 모두 4명이다. 호조 팀장이 연락이 닿지 않을 때가 많아 실제로 기동 중인 부대는 기본적으로 세 명이다. 그래서 일명 ‘구리하라 팀’으로 불린다.
제4내과의 대빵은 원래 미즈시마 교수이지만, 우사미 준교수가 의국의 사무적인 운영을 도맡고 있어 우두머리라 불리는, 두려움의 대상인 인물이다. 그의 별명은 ‘빵집’이다. 왜 빵집일까?
우사미 교수는 곧잘 병실을 빵에 비유한다. “한 개의 빵이 있고 열 명의 굶주린 아이들이 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략) 지금 그 빵을 먹으면 확실히 오늘을 살아 넘길 수 있을 아이만 골라서 빵을 주고 내일을 준비하겠네, 우리 대학병원 의사들에게는 그런 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해.”(66~67쪽)
이런 빵집이 내과 병상을 담당하고 있으니 환자에 대한 퇴원 압박이 심할 수밖에. 구리하라의 팀과 갈등을 빚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율적인 병원 운영과 의사로서의 환자 존중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까. 그래도 빵집은 예의 악당은 아니다.
이번 신간의 중심 이야기는 췌장암을 진단받은 후타쓰기 미오라는 환자에 관한 것이다. 29세 여성. 남편과 7살 난 딸 리사가 있다. 그녀는 여기저기 돌면서 여러 의사를 만났지만 별로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시나노 대학병원을 찾았지만 스나야마가 속한 제3외과의 마미야 주임 교수가 무표정으로 수술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스나야마가 이치토를 찾아와서 미오 환자가 며칠 전 ERCP를 담당했던 이치토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다고 말해준다. 물론 이치토는 미오를 맡는다.
“의사라는 존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많이 아는 탓에 필요 이상으로 미래를 허무하게 느끼기도 한다. 췌장암의 5년 생존율과 화학요법의 성공률도 확실히 중요한 데이터지만, 어디까지나 데이터일 뿐 눈앞의 환자 일은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명확하다면 비통함에 젖어 멍하니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우선은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리라.” (120쪽)
췌장암은 통증 같은 증상이 생기면 이미 늦다. 확진 받고 남은 여생이 보통 3개월 내지 6개월에 불과하다. 이치토는 네 종류의 항암제를 병용한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어쩐 일인지 3주가 지났는데 전혀 차도가 없다. 그는 약을 바꾸기로 한다. 여전히 잘 듣지 않는다. 간에도 여러 군데 전이가 됐다. 미오의 운명이 예사롭지 않다.
이때 첨단 시술이 등장한다. 바로 ERCP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 조영술, Endoscopic retrograde choangiopancreatography)다. ERCP는 “내시경 하나로 췌장과 담관이라는 몸 깊은 곳의 중요 장기에 접근하는 매우 중요한 손 기술”(310쪽)이요, 특히 긴급 ERCP는 “성공하면 환자가 극적으로 좋아지지만, 담관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시술”(137쪽)이다.
사실 ERCP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1권부터 나오지만, 소화기내과에서 난이도가 꽤 높은 시술이라고 하니 호기심과 긴장감을 한껏 불러일으킨다. 미오를 위한 케어에서도 ERCP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잠시 차도가 있어 퇴원했던 미오는 패혈증 증세를 보이며 응급실로 찾아왔다. 이치토는 입원해서 긴급 ERCP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미오는 한사코 입원하기를 거부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확실한데 병원 안에 박혀서 또다시 집에 못 가게 되는 건 싫습니다.”
“기적의 여부는 신의 영역이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나쓰메 소세키가 말한 듯한 맥락이 4권에 다시 나온다.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는 미오를 퇴원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컨퍼런스가 열린다. 3팀은 미오의 염원을 들어주고 싶지만,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확실한 건, 혼자 걷기에는 가혹한 길도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으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리라. (중략) 알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삶'이라는 것이다.” (530쪽)
책은 제법 두툼하다. 이야기가 잔잔하게 진행되다보니 다 읽어내려면 반 스푼 정도의 인내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뢰같이 널린 위트와 극적인 반전은 다 읽은 사람을 위한 적절한 보상이 될 것이다. 작가의 능준한 필력과 따뜻한 감성은 훈훈한 감동을 안겨준다.
나는 불쑥 선술집 규베에서 이치토와, 아니 다들 술 한잔 하고 싶어졌다. 물론 스나야마 블렌드도 맛보고 말이다.
이치토가 한 말을 인용하며 끝내려 한다. “(이 소설은) 괜찮지 않은 것도 많겠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괜찮을 겁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