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열을 가해 최초로 만든 물질은 무엇일까? 바로 '점토'다. 이 책은 돌, 점토, 구리, 청동과 같이 고대에 발견한 물질부터 시멘트, 실리콘, 폴리머 등 비교적 현대에 발견한 물질까지 문명과 물질이 함께 진화해온 역사를 이야기한다.
저자 스티븐 L. 사스는 미국 재료공학자다. 그는 뉴욕시립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소재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2008년까지 코넬대에서 재료공학을 가르쳤다. 그의 유일한 원서 〈The Substance of Civilization〉은 1998년에 나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질은 국가의 운명 뿐만 아니라 국가가 번성하고 몰락하는 시기도 규정한다. 가령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처럼 특정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에 물질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라. 이는 인류의 문명사에서 물질이 밀접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점토, 석회, 석고(황산칼슘)는 인류가 불을 이용해서 더 값진 물건으로 변모시킨 최초의 재료들이었다. 처음에 수메르인과 이집트인은 석회와 석고를 벽이나 바닥 미장 재료로만 사용했다. 그러다가 석회는 유리의 내구성을 높이는 유리용 재료로 쓰이게 되었고, 석고는 기원전 3000년대와 2000년대에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 건축에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석고 모르타르는 석공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대개 석고 모르타르는 태운(탈수한) 광물과 태우지 않은 광물의 혼합물이어서 굳는 정도가 일정치 않았다. 이집트인은 석고 모르타르를 접착제가 아니라 거석을 밀고 줄을 맞출 때 쓰는 윤활제로 더 많이 사용했다.” - 160~161쪽
책은 “물질이 인류의 문명을 어떻게 형성해왔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선다. 저자에 의하면 초기 인류는 모두 어쩔 수 재료공학자가 되어 근처에서 발견한 물건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개선해야 했다. 초기 인류가 사용했던 도구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를 비교해보면, 특정 물질을 사용하지 못할 때 우리 삶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물질과 문명사는 서로 맞물려 있다. 어떤 물질은 농업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또한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지었는가 하면, 과학혁명을 촉발하기도 했다.
가령 그리스는 아테네 은광 덕분에 페르시아의 에게해 진출을 막았고 알렉산더 대왕은 트리키아에서 추출한 금으로 전대미문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중국이 발명한 종이·나침반·화약은 무역과 탐험 같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외 책은 항공기나 테니스 라켓, 낚싯대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을 구성하는 물질을 기술 발전의 역사와 함께 설명한다.
비록 저자는 금속과 세라믹에 관심이 많은 재료공학자이지만, 고고학과 역사학에 관해 공부하고 참고문헌을 찾아 물질과 역사를 하나로 묶어 큰 흐름을 서술했다. 책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물질을 둘러싼 인문학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