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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최전선

[도서] 박물관의 최전선

박찬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지난 4월 나는 서둘러 국립경주박물관을 다녀왔다. 고대 한국의 유리 공예전이 거의 막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리가 출현한 것은 기원전 2세기. 한반도 서남부지역 초기철기 시대 무덤의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유리제 대롱구슬(管玉)의 등장을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전시회는 부여와 낙랑시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와 가야 그리고 통일신라까지 유리 공예품과 장신구, 사찰 사리기까지 전국 박물관 등에서 소장된 것들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유리의 영롱한 빛깔과 아름다움 그리고 고대 장인들의 솜씨에 감탄하여 마지않았다.

 

이때 특이했던 경험은 앱을 설치하고 주요 작품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나레이션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예전에 일정 금액을 내고 기기와 헤드폰을 빌려서 들었던 것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MMCA’를 설치하니 전시회의 작가와 주요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이렇듯 박물관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박물관에 대해 제대로 보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박찬희 박물관연구소장이 쓴 박물관의 최전선은 이에 딱이다!

 


▲경천사지 10층 석탑 옆에 선 박찬희 소장

 

박찬희 소장은 대학에서 역사를,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고 호림박물관에서 30대를 온전히 보냈다. 아이를 자기 손으로 키우려고 아내 육아휴직이 끝나자 박물관을 그만 뒀다. 육아가 끝나고 생활이 잔잔해졌을 무렵 이번에는 큐레이터가 아니라 관람객이 되어 전국의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그러기를 얼마간 했을까, 이제 평론가의 눈으로 박물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유물을 대하는 관점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유물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유물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제 저자는 호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유물에 대한 이야기 서른 가지를 펼쳐보인다. 본디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 터에 열정 열두 스푼까지 보태졌으니 어련하겠는가.

 

신선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인 서울역사박물관의 기획전시실,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섬세한 전시가 돋보이는 온양민속박물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국립기상박물관까지 손가락으로 꼽자면 두 손으로는 어림없다. 규모가 크건 작건 박물관마다 저마다의 빛깔을 드러낸다. 다녀와서도 문득문득 기억을 떠올리며 괜스레 미소 짓는 이유는 두 가지다. 마음을 사로잡은 유물이나 공간 혹은 전시를 보았거나 박물관 사람들의 정성과 관심으로 가꾼 곳을 만나서다.” (144~145)

 

그는 개중 경기도 연천에 있는 전곡선사박물관이 특별하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박물관이 주변 환경과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단다. 한번은 박물관에서 돌도끼로 나무를 베고, 그 배를 깎아 만든 통나무배를 한탄강에서 띄우는 실험을 하고, 그 배를 전시한 <돌과 나무의 시대>을 열었다. 이때 받은 강렬한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단다.

 

우선 저자의 열정을 물씬 느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대동여지도에 관한 것이다. 대동여지도를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이다. 조선실에는 큰 진열장 안에 대동여지도 영인본 일부와 대동여지도를 인쇄하는 목판(보물 1581) 원본을 전시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한양을 중심으로 위아래 지역을 선택해 보여준다. 전도를 보여주기에는 지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만약 대동여지도 전체를 직접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박 소장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보여주기로 했다. 영인본 22권의 지도를 실물 크기에 맞춰 복사하고 두꺼운 종이에 덧붙인 뒤 이 종이들을 이어 붙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온 국토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지도를 뛰어넘은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대동여지도와 놀기

 

이어 아이들이 지도 위에 올라가 뛰어놀게 했다. 대동여지도와 놀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답사의 히트 상품이 되었다.

 

유물 이야기 중에서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전시된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경천사는 개성의 남쪽, 부소산 자락에 있던 절이었다. 고려인으로 원나라에 가서 크게 출세한 강융과 고용붕은 원의 장인들을 불러 고려와 원의 스타일을 합쳐 대리석으로 화려한 탑을 만들었다.

 

1907년 궁내부 대신 다나카는 탑을 일본으로 약탈해갔다. 국내외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탑은 1918년 반환되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놓여졌다. 그간 우여곡절 끝에 복원을 거쳐 2005년 지금의 자리에 옮겨졌다. 1907년 약탈된 지 근 백 년여 만에 유랑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저자는 유물의 이동 역시 유물의 역사라고 말한다.

 


▲철조 석가여래좌상

 

이외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사하면서 10만 점의 유물을 옮길 때, 실내 유물 중 가장 컸던 철조 석가여래좌상(높이 281센티미터 무게 6.2)을 어떻게 옮겼는지, 2006년 일본의 사가와 미술관이 호림박물관 소장 도자의 명품전을 개최할 때 호림박물관에서 백자와 분청사기 120점을 어떻게 출품했는지 하는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다.

 

조명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박물관은 전시실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조명을 선택한다. 이때 조명에 유난히 까다로운 유물이 있다. 저자에 의하면 청자. 청자는 빛을 흡수하기 좋아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붉은색 조명 아래서는 붉은 청자로 바뀌고, 푸른 조명 아래서는 파랗게 질린 청자로 바뀐단다. 그래서 우리는 청자의 비색을 전시실에서 제대로 볼 수없다고 한다. 어이쿠!

 

게다가 종이나 천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서화는 (색이 변하는 걸 막기 위해) 조명의 밝기를 최대한 낮춘다. 특히 고려불화는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처리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고려불화를 제대로 보려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국 사진작가가 찍은 조선 의병(오른쪽 네 번째 검은 복장을 한 이가 대장)

 

말미에 등장하는 사진 한 장이 묘한 느낌을 안긴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봤던 의병 사진이다. 이 사진이 나오게 된 내막을 저자의 설명으로 알게 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광성보 손돌목 돈대 전투 사진도 마찬가지다.

   


▲광성보 손돌목 돈대 전투

 

그렇다면 저자가 지금 가장 머물고 싶은 전시실은 어디일까?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의 큰 불상 전시실이다. 그에 따르면 전시실은 좋은 기운으로 꽉 찬 것 같다. 전시실의 가장 큰 매력이자 진짜 비밀은 저녁에 드러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저녁에도 문을 여는 날, 아무도 없는 전시실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의 큰 불상 전시실

 

가끔 이 순간, 독특한 경험을 한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 순간적으로 열려 공간이 충만해지고 다른 세상인 듯 신비로워진다. 그곳에는 그곳을 가야 경험하는 세상이 있다.” (151)

 

저자는 독자가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변화가 찾아오리라고 예견한다.

박물관 전시실에 갔을 때 설명판을 읽고 조명을 살펴보고 진열장 안의 장치들을 눈여겨본다. 전시실이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107)

 

박물관에는 박물관을 가야 비로소 경험하는 세상이 있나니.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박물관을 찾는지 모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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