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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클라라와 태양

[도서]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저/홍한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을 서로 떼놓고 사유했던 플라톤과 달리, 둘의 관계는 불가분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고유한 형상 안에 내재된 본질을 찾는 것이 자아실현이요, 개인의 완성이라고 했다. 정의로운 것/아름다운 것/선한 것을 관조하면서 그에 닮게 사는 것이 곧 행복이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번 작품에서 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해 관조한다. 인조인간 클라라의 눈을 통해서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국. 작가는 4살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일본계 영국인이다. 왜 미국으로 무대를 설정했을까? 아무래도 미국이 영국보다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을 많이 보이고, 상대적으로 역동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싱글 맘 크리시는 아픈 딸 조시를 키우고 있다. 첫째 딸을 병으로 잃은 아픔이 있다. 그녀는 전남편 폴과 가끔 만나면서 조시를 위한 해결책을 함께 찾기도 한다. 조시의 말 동무라도 삼으려는 것일까, 크리시는 인조인간 클라라를 매장에서 사서 데리고 온다.

 

이야기는 클라라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거의 백지 상태에 놓여 있는 클라라는 존 롤즈가 말한 원초적 무지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상대적으로 선입관이나 편견에서 자유롭다. 우리는 클라라를 통해 조시와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클라라는 태어난 이후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서 배운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인조인간이나 인간에게 모두 공통점이다. 인간성을 갖추기 위한 하나의 필요 조건일 수도 있겠다.

 

한편 클라라는 아픈 조시를 위해 어떤 일을 꾸미기로 결심한다. 선한 영향력 같은 것이기도 하고, 태양의 자양분 같은 것이기도 하다. 딱히 논리를 댈 순 없지만 클라라의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다. 이때 태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은 클라라의 에너지원이면서 생명을 상징하는 자연과 같은 존재다.

 

우리는 클라라가 나서는 모험도, 꾸미는 음모도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을 듯한 묘한 체험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바랄 때면 때로 무턱대고, 때로 무모하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선함을 믿는 클라라는 주변을 희망적으로 변화시킨다. 때 묻지 않은 시선, 순수한 희망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작가는 2005나를 보내지 마에서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의 이야기를 다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 클라라와 태양에선 AI와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공학자인 조시의 아버지 폴은 클라라에게 말한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중략)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결국 소설은 인조인간이든 인간이든 형상 자체 보다는 그 안의 본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본질이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요, “두 사람이 서로 안 만나고 산다 해도 어떤 부분은,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늘 같이 있을 거라는사랑과 믿음이다.

 

우리는 작가 특유의 능준한 필력과 표표한 문체 덕분에 방대한 이야기 속으로 스펀지처럼 빠져든다. 다 읽고 나면 무언가 번뜩이는 영감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게 거장의 솜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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