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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론가들은 이 구조라는 녀석을 정복하기 위해 씨름을 해왔다. 누구나 한 번쯤 "스토리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땐 이 말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보 스토리텔러에게는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다행히 이런 지침은 차고 넘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조에 대한 논의도 '시작-중간끝'을 훨씬 넘어선다. 현대의 아리스토텔레스들은 독자에게 공감을 얻는 스토리 구조를 굉장히 자세하게 파고들어 '주인공-시련-해결'모델의 필수 요소를 시각적으로 연관 지어 보여준다. 재닛 버로웨이의 책을 비롯한 픽션 쓰기 지침서들을 보면 이러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에게는 작가들을 인터뷰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인터뷰가 끝나면 그들이 스토리를 짜고 집필할 때 지침으로 삼는 시각적인 얼개를 그린다. 나는 먼저 작가에게 중요한 스토리 요소들을 꼽아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내러티브 포물선을 그려본다. 그러면 아래 그림과 같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포물선 모양이 된다.

 

<내러티브 포물선(narrative arc)>

 

경험 많은 논픽션 작가 중에도 내러티브 포물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양키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던 짐 콜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러티브 포물선을 이해하는 작가는 거의 없다. 시작, 중간, 끝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독자를 따라오도록 만드는 사건이 연속해서 배열된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굴곡 없이 단조로운 글이 많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다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들을 잇는 통일된 흐름이 없다.”

 

진정한 내러티브 포물선은 시간을 가로질러 쉼 없이 움직이며 스토리를 몰아붙인다. 마치 부서지기 직전의 파도처럼 에너지를 가득 품은 채 휘몰아친다.

 

 

1. 발단

 

포물선 위쪽에 숫자로 표시된 것처럼 포물선은 완결된 스토리를 특징짓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발단이다. 독자에게 주인공이 누구고, 주인공이 직면하게 될 시련이 무엇일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발단을 인물을 정의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라요스 에그리는 발단은 "노출하는 행위"라는 웹스터 사전의 정의를 들며 그렇다면 무엇을 노출해야 할까? 전제? 전반적인 분위기? 인물 배경? 플롯? 장소적 배경?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노출하는 것이 답이라고 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발단을 쓰는 요령은 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만 알려주고 그 이상은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내러티브 논픽션을 처음 쓰는 기자들은 수집한 정보를 전부 집어넣느라 스토리 전개를 지연시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한다. 발단은 내러티브의 적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체는 상관없다.

 

좋은 발단은 주인공이 어쩌다 어느 시간에, 어떤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충분한 배경을 제공하고 아쉬움을 남겨 다음 단계로 인도한다. 반드시 노출되어야 할 아주 짧은 정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스토리 시작이 지연된다면 집어넣은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독자를 기다리게 해선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전 정보는 주어야 한다. 이렇게 시련이 고개를 내밀고, 발단 단계가 막을 내린다. 이제 상황은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2. 상승(발전)

 

완결된 내러티브 포물선의 두 번째 단계는 상승(혹은 발전)이다. 다른 단계와 같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분량은 가장 많다. 120분짜리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 상승(발전) 단계가 100분을 넘는다. 사건이 펼쳐지며 극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관객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렇게 팽팽해진 긴장은 클라이맥스(절정)가 해결로 이어질 때 비로소 해소된다. 각각의 사건은 플롯 전환점으로서 내러티브 포물선의 상승 곡면에 나열된 X에 해당한다.

 

플롯 전환점이란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현재 상황에 강제로 떠밀린 주인공은 사건의 단초인 플롯 전환점 A에서 내러티브 포물선 끝에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현실을 향해 출발한다.

 

다린 스트라우스는 스토리를 풀어 내기에 앞서 중심인물의 삶을 저 위 산꼭대기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바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툭 치면 바위가 굴러 내려오면서 내러티브도 포물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굴러 내려오는 바위는 주인공뿐 아니라 관객까지 흔들어 놓으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플롯이 방향을 틀 때마다 긴장감은 커진다. 대부분 플롯 전환점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문제를 던진다. 테드 코노버는 그 전환점이 문제가 생겼을 때의 내러티브라고 말한다.

 

주도면밀하게 짜인 상승 단계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한 가지씩 의문을 제기한다. 필립 제라드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가 치밀한 순서로 짜인 미스터리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 미스터리는 크기도, 작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흥미성 편차를 잘 이용해 이야기가 고조될수록 미스터리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모두 해결되도록 한다. 처음에는 사소한 문제였던 것이 점점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가장 큰 미스터리는 최후로 미뤄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막에서 (주인공이 직면한) 상황을 명백하게 제시하라. 2막에서는 그에 따른 에피소드들을 엮되 3막 중반에 이를 때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해야 한다. 늘 예상을 한발 앞질러야 한다. 이렇게 하면 결국에는 마땅히 예상되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공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3. 위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운명의 급전환이라는 뜻을 가진 페리페테이아(peripeteia)를 언급한다. 이것은 주인공을 갑자기 위태로운 심연으로 떨어뜨리는 3막의 반전을 의미한다. 현대의 스토리 분석가들은 대개 페리페테이아를 상황이 한층 더 심각해졌음을 뜻하는, 더욱 폭넓은 개념의 위기로 간주한다.

 

스토리텔러에게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관객이 모두 숨을 멈춘 채 기다리는 순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위기는 작가에게 중대한 극적 질문을 던지는 단계이기도 하다. “당신은 (시간 순으로) 발단부터 스토리를 시작하는가? 아니면 다짜고짜 위기로 시작하는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시학Ars Poetica에서 이 같은 딜레마를 인정했다. 호메로스는 사건의 중반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플래시백을 사용해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함으로써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귀띔한다.

 

논픽션에서 내러티브의 포물선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시간 순으로 그린다. 픽션도 동일한 원칙을 따르지만, 허구의 현실을 그려낸다. 논픽션이든 픽션이든 이야기를 일어난 순서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앞으로 훌쩍 건너 뛸 수도, 중간에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플롯이 항상 내러티브 포물선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픽션은 보통 시간 순으로 이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독자에게 배경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플래시백(현재에서 과거로 회상하는 장면 전환 기법)을 끼워 넣기도 한다.

 

사건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지점에서 시작하면 위기가 먼저 등장한 뒤, 처음으로 되돌아가 발단, 시련, 상승 순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위기에 이르는데, 이때는 위기를 그대로 통과한 다음 절정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선다. 사건의 중간부터 시작하는 내러티브 포물선은 다음과 같다.

 

<사건의 중간 지점에서 스토리를 시작하는 경우>

 

 

중간에서 스토리를 시작하면 스토리텔러의 일이 복잡해진다. 글쓰기 경험이 많든 적든 플래시백이나 플래시포워드(현재에서 미래로 넘어가는 장면 전환 기법)가 길어지면 KISS (Keep It Simple, Stupid)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스토리텔러는 독자가 이야기에 빠져 즐겁게 헤매길 바란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을 앞으로 뒤로 건너뛰는 것은 이 즐거움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 플래스포워드는 특히나 작위적인 장치이므로 독자가 이야기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은 갑자기 시간을 빨리 돌려 미래로 혹은 과거로 가지 못한다. 플래시포워드는 우리와 스토리 사이에 작가라는 존재가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한창 푹 빠져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여기서 잠깐만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얘기하고 갈게요라며 흐름을 끊는 것과 같다. 톰 프렌치가 길어지는 플래시백,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플래시포워드, 지나치게 전문적인 설명을 경계하라. 가능한 한 인물의 행위를 바짝 쫓아라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위기는 내러티브 포물선이라는 파도의 봉우리다. 이 봉우리가 무너져 내리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비극에서는 주인공(가령 맥베드)이 파멸한다. 액션이 주된 단순한 스토리에서는 시련이 해소된 뒤 주인공이 본래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가령 구급차가 도착해 불타는 차에서 구조된 여자를 태우고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향한다). 건설적인 결말로 끝나는 감동적인 스토리라면 주인공이 완전히 달라진다. 더욱 성숙해진 주인공은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무기 삼아 삶을 능동적으로 주도해 나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인공이 새롭게 눈뜨는 것을 인식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맥키는 영화 도입부와 결말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보면 그 영화의 포물선이 보인다. 마지막에 인생을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이끄는 엄청난 변화의 곡선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심오한 심적 변화가 딱히 없을 때는 위기가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통찰 지점으로 간주하면 된다. 스스로 위기가 해결로 접어든 계기가 무엇이었지?”라고 물어보라. 그 계기를 통찰 지점으로 삼자. 내러티브 논픽션 기사를 쓸 때도 이 지점이 있으면 전체 구조를 잡기 좋다.

 

 

4. 절정(해결)

 

클라이맥스라고도 부르는 절정은 위기를 해결하는 일련의 사건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는 순간 반지를 둘러싼 시련이 마침내 종결된다.

 

실화는 훌륭한 논픽션 기삿감이다. 이것이 바로 논픽션 기사의 핵심이다. 완결된 스토리 구조로 보면 2퍼센트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극적인 실화가 가진 힘, 즉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라는 사실은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두기에 충분하다.

 

 

5. 하강(대단원)

 

절정에서 우린느 봉우리에 오른다. 봉우리에 오른 후에는 내려갈 일만 남는다. 말 그대로 하강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다. 치열함이 사그라지고 속도는 느려지며 상황이 마무리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한두 가지 남는다.

 

남은 의문들이 하강 단계에서 해소된다. 따라서 이 단계를 매듭 풀기혹은 대단원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데뉴망’(denouement)이라 칭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단계다.

 

대단원을 쓸 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대단원에서는 사건이 마무리되며 모든 극적 긴장감이 샘물처럼 빠져나간다. 이야기를 추진할 강력한 동력이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끌고 나갈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독자가 몇 가지 의문점을 갖는다고 해도 질질 끌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해서 떠나야 한다.

 

웬만큼 의문을 해소하고 나면 한 가지 숙제가 남는다. 다소 예상 밖의 요소로 이야기를 매듭짓는 일이다. 이 작업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면 독자들에게 놀라움을 주면서 이야기가 충족된 효과를 낸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전과는 다른 상황을 맞이한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끝났다는 데 한 치의 의심도 남지 않는다.*

 

퓰리처 글쓰기 수업

잭 하트 저/정세라 역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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