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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별은 왜 전부 라싸에 뜨는가. 오래전 강석경의 장편소설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조화로운 삶)를 읽으며 티베트의 높고 푸른 하늘을 그리워했다. 4000m 고원에 자리 잡은 하늘호수에 머리를 감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던 시절.

 

필자의 상상력은 호방하고 우주적이다. "지구는 은하계를 여행하는 우주선이다. 이 순간에도 우리가 탑승한 지구는 시속 11만㎞의 놀라운 속도로 우주를 항해한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여행가의 삶을 타고난다는 이야기다.

 

그 지구에 티베트라는 땅이 있고 그 땅을 한 사내가 걷는다. 걸으며 사내는 티베트의 풍광을 만나고 티베트의 사람을 만난다. 겹겹이 쌓이는 만남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문장으로 박힌다.

 

책에 인용된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는 테레사 수녀의 가르침처럼, 티베트에서의 만남은 저마다 독특하다. 사내는 그 유일무이한 모습을 유일무이하게 묘사하려고 애쓴다. 가난하고 지친 삶의 굵은 뼈마디가 툭툭 불거져 나온다.

 

늙은 라마승은 가죽 앞치마를 두른 채 쇳조각을 붙인 나막신을 손바닥에 끼고 오체투지를 하고, 하늘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 사진을 찍힌 소년은 1위안을 던져버리고 무조건 5위안을 달라고 고집을 부려댄다. 육체를 향한 욕망이든 정신을 향한 욕망이든, 모든 욕망은 지독하며 편협하다.

 

 

사내는 아등바등 다투는 삶의 전장을 구름을 닮은 몇몇 문장으로 맵시 있게 덮어나간다. 가령 윤회에 대한 고민을 "어제의 나는 오늘 나의 전생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 나의 후생이다"고 풀고, 늘 슬픔과 고통에 갇혀 사는 일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불행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적는다. 멋지다.

 

그 중에서 흥미로운 문장은 이것이다. "사람의 몸을 붙들어 매는 것은 장소가 아니다. 마음이다. 떠도는 것도 실상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모든 고민의 시작도 내 마음이고 모든 여정의 근원도 내 마음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필자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티베트는요? 마음이 문제란 것을 티베트로 가기 전에 알았나요, 여행 중에 알았나요, 혹은 귀국하여 기행문을 정리하면서 알았나요? 마음이 문제란 것을 출국 전에 알았다면 구태여 티베트의 험산을 오르내릴 까닭이 없지 않았을까요?

 

필자의 어법을 따라 내 생각을 밝히자면, 여행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네 마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스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은 없다. 매 순간 매 시간 달라지는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있을 뿐이다.

 

마음을 멋지게 다스려 간명한 문장에 담는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별이 내 집 골방에 뜨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별을 보려면 한없이 높고 더없이 맑은 라싸에 가야 한다. 내가 평생 티베트 여행을 꿈꾸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7. 12. 1(토)

김탁환 KAIST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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