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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추리소설계의 젊은 거장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읽노라면 어두운 하수구를 기어 들어가듯 불편하다. 작가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오물을 뒤져 되살릴 순간을 집어낸다. 그가 만든 범죄자들은 분노하지도 흥분하지도 않는다. 이 단단한 차가움이 소설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미스틱 리버'를 비롯한 장편의 기기묘묘한 갑갑함은 단편집 '코로나도'에도 이어진다. 다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연극대본이 실린 책의 백미는 '코로나도'라는 대본의 원작이기도 한 단편소설 '그웬을 만나기 전'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네 아버지가 감옥으로 와서 너를 태운다." 하일지의 장편소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2인칭 시점 소설이다.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너'라고 부를 때마다 소설 속 풍광은 유별나게 도드라진다. 독자들은 객석에 앉고 너와 네 아비와 또 네가 그럭저럭 아는 이들이 무대에서 일을 꾸미는 듯하다.

 

여기서 너의 이름은 바비고 그웬은 바비가 사랑하는 여인이다. 바비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어딘가 감췄다. 바비의 아버지는 바비에게 보석을 숨긴 장소로 가자고 하고 바비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시간을 끈다.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바비와 아버지의 갈등을 중심에 놓기 쉽다. 그런데 왜 소설 제목이 '그웬을 만나기 전'일까?

 

 

이 제목은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그웬을 만난 후에야 바비가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바비를 향한 그웬의 사랑은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 줄 사람도 없고 또 필요하지도 않아. 그냥 넌 너 자신인 거지 너무나 멋져." 또 하나는 소설 말미에 밝혀지는 그웬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과 연관이 있다. 그것은 곧 이미 시신이 되어 땅에 묻힌 그웬을 만나기 전에 벌어진 일들로 단편소설을 짰다는 뜻이다.

 

바비는 그웬의 시신을 확인하고 살인마를 벌하여 죽인 뒤 그 자리에 앉아 운다.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울고,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운다." 뒤늦은 복수는 성공했지만 울음을 그치게 하지는 못한다. 문득 그웬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 더더욱 슬프다. '코로나도'를 보면 이미 죽은 그웬이 등장해서 바비를 위로한다. "자기는 착하니까" 사진 따윈 필요 없다는 것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에게 동정이 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한 마디로 그들은 너무 착하다. 너무 착해서, 이미 죽어 뼈만 남은 애인의 복수를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것이다.

 

작가는 이 짧은 소설들을 통해 집요하게 묻는다. 너는 착하냐? 착하다면 복수를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느냐? 착한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드는 이 세상을 그냥 둘 수 있느냐?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

 

2007. 12. 15(토)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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