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 읽기가 있다. 책상에서의 책 읽기와 침대에서의 책 읽기. 전자가 단정한 자세의 정독을 지향한다면 후자는 자유로운 몽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 장정일은 일찍이 이렇게 적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2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새벽까지 침대를 뒹굴며 읽은 책들을 제멋에 겨워 가르고 묶어 평한 글모음이 바로 '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이다.

 

'침대와 책'은 온전히 저자의 독특한 취향과 독자의 직접적인 필요에 근거한다. 저자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맛집 추천서나 술집 추천서처럼 책 추천서를 썼다. 이 책에는 저자가 싫어하는 작가나 문장은 하나도 없고, 저자가 "거의 졸도할 만큼 좋아하는 구절"들만 차고 넘친다. '도시의 연인들이 여자들의 가슴 크기에 주목하게 될 때',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이면', '부장님께 된통 깨지고 나서' 독자 여러분이라면 무슨 책을 읽겠는가.

 

저자는 '피맛을 본 짐승처럼 사랑하자'는 루쉰의 말을 아낀다. 침대가 독서와 휴식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공간임을 염두에 둔다면, 추천 내용에 유독 연애와 관련된 항목이 많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랑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고 사랑 때문에 삶이 바쁘고 촘촘해진다는 것은 사랑을 해본 사람은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동성애를 다룬 소설 중 백미인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어보라 권한다. 이 아름다운 소설에서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마지막 장면이다.

 

애니스는 살해당한 잭과의 행복한 나날을 꿈에서나마 즐긴 후 깬다. 그랬더니 베개와 시트가 동시에 젖었다. 저자는 이 광경을 놀랍도록 따뜻하고 깊은 물음으로 감싼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눈물과 정액 둘 중 한 가지만 골라 바칠 수 있겠는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 깔끔한 책이 정혜윤이라는 독서광이자 라디오 피디인 여자의 자서전 중 일부로 읽힌다. 그녀도 이 책 어느 귀퉁이에 "한 사람이 평생 읽은 책으로 그의 자서전을 꾸며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적었다. 저자는 맛깔스런 입담과 세밀한 감성 그리고 놀라운 순발력까지 두루 갖춘 이야기꾼이다.

 

헌데 인용과 잡담이 절묘하게 얽힐수록 나는 그녀가 무척 외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오로지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고", "외로운 한 인간이 우주와 자신 앞에 홀로 서는 것"이 문학의 영원한 테마임을 그녀가 알기 때문이다.

 

나도 '책의 마돈나' 정혜윤처럼 명예롭게 살고 싶다. 그녀가 엉뚱하게 규정한 단어집에 의거하자면 명예란 "하루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일주일에 세 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도 침대에 누워!

 

2008. 1. 12(토)

김탁환 KAIST교수·소설가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