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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을 탈고한 후엔 제주도로 간다. 섬 하나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면 긴장이 풀리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제주도에는 시린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오름이 장승처럼 푸근하게 길손을 맞아들인다.

 

제주 출신 사진작가 고남수가 흑백으로 찍고 시인 이성복이 단상을 붙인 '오름 오르다'(현대문학)는 떨림을 떨리지 않게 잡아내려고 애쓴 예술가와 그 담담함에 묘하게 떠는 자신을 관찰하는 예술가의 지독한 대화다. 시인의 문체는 오름을 쉬엄쉬엄 오르는 노인네 발걸음처럼 유연하다. 때로는 사진보다 글이 먼저 나오지 않았을까 착각이 들 만큼 둘은 자연스럽게 한 몸처럼 어울린다.

 

쉽게 읽힌다고 이 책을 단숨에 완독하리라 덤비는 것은 어리석다. 오름 하나하나의 차이를 세심하게 알고 또 그 차이에 시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꼼꼼히 따라 짚기 위해서는, 시인만큼이나 사진 앞에서 이 궁리 저 궁리로 세월을 서성거려야 한다. 나는 이 책을 2년 반 동안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알베르 까뮈의 '태양의 후예'와 함께 틈틈이 읽었으며 104개의 문장을 혀로 감으며 밑줄을 그었다.

 

가령 시인은 물컹거리는 화면 속의 오름들을 보며 "퍼질러 누워 붕긋한 배와 처진 가슴을 드러내놓고 잠자는 중년 여인"을 떠올린다. 오름들이 만들어내는 곡선을 "아무도 달랠 수 없고 저도 어쩌지 못하는 하염없는 곡선"에 비기는 것이다.

 

하염없음이란 무엇일까. 저리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리 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하염없이 울거나 하염없이 서 있거나 하염없이 걷는다. 운명 앞에 나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두 개의 오름이 소리 없이 어깨를 맞댄 흑백의 화면처럼 생은 가난하다"는 대목에선 숨이 막힌다. 시인은 가난을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영혼의 본성 자체가 헐벗음이며 비어 있음"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난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며, 가난 그 자체가 지닌 진실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영혼이 되라고 권한다.

 

시인은 주장한다. "의미를 담지하지 않은 선(線)은 없다" 시인은 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우리는 오름이 지닌 의미를 어떻게 미리 알아차릴 수 있을까. 감히 추측하자면, 시인은 사물과 그 사물이 지닌 비밀을 요모조모 따져 풀어헤치는 글쓰기를 '산문(散文)'이라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멋지고 애석하게도 이 책은 다시 시적인 무엇인가에 가 닿는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묵은 때처럼 사물에 붙은 낡은 이름을 걷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탓이다. 시인이 이 책에서 밝힌 오름이란 둥금이며 숨은 그림이며 가난이며 죽음이며 기억이며 임신의 꿈이며 즉물적인 신비며 미친 유혹이며 슬픔이다. 무엇보다도 오름은 겹겹 쌓인 의미로 출렁이는 제주도의 싱싱한 아름다움 곧 시다.

 

2008. 1. 26(토)

김탁환 KAIST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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