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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가슴을 달구는 책이 있다. 오래 전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란 이문열의 소설을 집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용을 들춰보기도 전에 그 밤 이 책을 독파하지 않고는 잠들지 않으리라고 예감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매일 이별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닐까. 설이나 추석에 악착같이 귀향하는 이유도 돌아갈 고향이 있고 품에 안길 일가붙이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실크로드의 심장부에 위치한 타클라마칸 사막은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땅'이란 뜻이다. 넓고 험한 탓에 동에서 서로 가든 서에서 동으로 오든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이산출판사)에는 이 사막을 거쳐 간 공주부터 목부까지 직업과 처지가 제각각인 10명의 고단한 삶이 담겼다. 그들의 인생을 풀어헤쳐 8세기 초반부터 10세기 후반까지의 실크로드를 다채롭게 조망하는 것이 돈황학자인 저자의 목표다.

 

'실크로드 이야기'는 관련 자료와 유물을 인간에 대한 관심을 북돋는 원천자료로 쓴다. 가령 사마르칸트에서 태어난 장사꾼 나나이반다크를 등장시킬 때는 소그드인 특유의 복장을 주목한다. "꼭대기를 앞으로 접은 고깔 모양의 프리지아 모자, 무릎까지 내려오는 군청색 비단 저고리와 허리띠, 장딴지까지 올라오는 가죽창 비단신, 장화 속에 자락을 쑤셔 넣은 통 좁은 바지"로부터 독자들은 단숨에 실크로드를 오간 대상(隊商)의 주인공과 재회한다.

 

 

복색뿐만 아니라 그가 어릴 때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으나 장성해서는 마니교를 신봉한다는 사실을 8세기 장안 지도에 마니교 사원의 위치를 꼼꼼히 표시하여 곁들인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를 존경하는 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의 무용담도 흥미롭지만, 내 눈길을 끈 인물은 카슈미르 출신으로 돈황에서 죽은 승려 춧다이다. 카슈미르에서 북문을 통과하여 길기트 골짜기를 따르면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춧다는 북문 대신 서문으로 나가서 간다라와 웃디야나를 지나간다. 때는 봄이고 산비탈에는 '솜다리꽃, 용담꽃, 나리꽃, 앵초꽃'이 만발하다.

 

이 꽃길은 춧다보다 100년도 훨씬 전에 신라승 혜초가 답사한 길이다. '왕오천축국전'에는 나라이름과 경과한 시간으로만 등장하던 길이 춧다의 걸음을 따라 봄볕 찬란한 풍광으로 바뀐다. 휫필드가 고선지나 혜초의 일대기에 도전해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고국이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도, 사람들은 왜 실크로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듭 건넜을까. 그들에게 구도자(求道者)로서의 새로운 집착이 생겨났기 때문은 아닐까. 거대한 사막이 비록 고향은 아닐지라도, 이토록 많은 깨달음과 감탄이 깔린 실크로드를 내 어찌 떠날 수 있으리. 더 걷고 더 보고 더 느낄수록 인생은 아름다울지니!

 

2008. 2. 16(토)

김탁환 KAIST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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