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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편의 독창적인 소설을 읽었다. 한국형 SF 대표작 10편이 함께 묶인 계기는 웹진 '크로스로드(crossroads)'에 소설란이 마련되면서부터다. 서문을 쓴 박상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창간한 크로스로드는 한국의 창작 SF를 발전시키기 위해 SF 단편소설 릴레이 연재를 시작했고, 1년 단위로 작품집 발간을 목표로 삼았지만, 첫 출간까지 3년이 걸렸다.

 

복거일이나 이영도, 듀나처럼 SF에서 두각을 드러낸 작가 곁에 단독 저서를 지니지 못한 신인들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SF 작가층이 얇다는 증거면서 이름값이 아니라 작품성을 따져 소설집을 묶은 결과다.

 

노성래의 '향기'는 날렵하고 우스꽝스럽다. 소설은 교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었던 주인공 강일수가 깨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리저리 몸을 뒤채지만,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리 잠자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대로 사지가 움직이지 않는다. 장기 이식용 무균 돼지에 강일수의 두뇌만 따로 옮겨 심은 까닭이다. 뇌사자에게 다시 두뇌를 옮길 날을 기다리라는 의사의 충고를 듣고 실망하는 것도 잠시 뿐, 강일수는 언론과 방송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명인이 된다.

 

특히 냄새를 선별하는 조향사로서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강일수는 자신에게 맞는 뇌사자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수술을 포기한다. 인간은 맡지 못하는 세상 향기를 좀 더 오랫동안 만끽하기 위해서다. 소설은 돼지인간 강일수의 행복에 겨운 외침으로 끝난다. "꿰에에에에엑."

 

 

김덕성의 '얼터너티브 드림'은 자각몽과 온라인게임 그리고 힌두신화를 교묘하게 엮은 중편이다. 주인공은 전철에서 이상한 물을 마신 후부터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인지하는 상태에서 꾸는 꿈"인 자각몽에 시달린다. 연속성 집단 자각몽에서 주인공은 사냥감을 죽일수록 성장하는 코끼리인간으로 옛 서울 곳곳을 누빈다.

 

꿈의 나라에서 주인공이 인간이나 짐승을 사냥하는 방식, 능력을 키워 다른 레벨로 상승하는 방식은 영웅서사시에 기반을 둔 한국형 온라인 게임의 룰을 철저하게 따른다. 살인과 폭력으로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꿈과 그로 인해 피폐해지는 현실을 교차시키는 장면은 섬뜩하고 고통스럽다.

 

역사와 테크놀로지의 연관성을 시간여행의 관점에서 살핀 고장원의 '로도스의 첩자'나 더 높이 올라가려는 상식적인 바람을 뒤집어 한없이 내려가는 인간의 의지를 다룬 김보영의 '땅 밑에' 역시 묵직한 주제의식과 깔끔한 문장, 참신한 구성이 돋보인다.

 

SF 10편을 신나게 완독한 후 문득 울적하다. 과학에 근거를 두고 펼친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무섭고 암담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듯 디스토피아로만 점철될까. 이야기를 만드는, 지금 여기의 현실이 막막한 탓일까. 첨단과학이 예견하는 장밋빛 미래마저도 밝게 그리지 못하는 소설가들의 하찮은 결벽과 못난 의심 탓일까.

 

2008. 3. 1(토)

김탁환 KAIST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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