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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의 뮤지컬 대본집 '오! 당신이 잠든 사이'(랜덤하우스)를 낄낄대며 읽고 진지하게 다시 읽었다. 평론가 원종원의 해설처럼, 톡톡 튀는 감각이 돋보였다. 처음엔 특유의 엇박자와 깔끔함에 끌려 세 편의 뮤지컬 대본과 한 편의 연극 대본을 독파했는데, 다시 읽을 때는 세상을 바라보는 장유정만의 시선에 더 끌렸다.

 

대본집에 실린 네 편 모두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표제작은 사라진 반신불수 다리병신 고집불통 최병호를 찾고, '김종욱 찾기'는 제목대로 인도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찾고, '멜로드라마'는 비록 불륜일지라도 지루한 일상을 넘어설 진정한 사랑을 찾고, '형제는 용감했다'는 사이 나쁜 형제가 아버지 유품에서 당첨된 로또 복권을 다투며 찾는다.

 

근대소설을 실패한 보물찾기로 규정한 이는 헝가리 비평가 루카치였던가. 근대소설뿐만 아니라 장유정 대본의 등장인물도 하나같이 첫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허나 그들은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이 꿀처럼 달 때 관객은 함박 웃고 깨달음이 약처럼 쓸 때 관객은 눈물 쏟는다.

 

장유정은 기막힌 반전을 통해 깨달음을 극대화한다. 반전 구조 서사물은 창작자와 향유자 사이에 머리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자나 관객은 예상 밖의 이야기 전환에 놀라워하면서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불쾌감을 지우지 못한다.

 

차가운 논리로 이야기의 구조적 완결성을 시시콜콜 따지는 비평도 수두룩하다. 장유정의 반전은 신기하게도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반전을 통해 등장인물에 대한 연민이 자라고 팜플렛에서 작가 이름을 확인하게 만든다. 나는 이것을 장유정식 '따듯한 반전'이라 명명하고 싶다.

 

 

무엇에 대한 따듯함인가.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향한 따듯함이다. 아내와 딸을 두고 돈 벌러 상경한 못난 아비 최병호, 사랑하기 두려워 먼저 연락을 끊고도 첫사랑을 찾으려는 여인 오나라, 적당히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며 지내다가 밀물처럼 찾아든 사랑에 혼란스러워하는 김찬일 강유경 부부,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싸우는 이석봉 이주봉 형제. 작가는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꼬집으면서도 그들이 꼭꼭 숨겨온 삶의 애환을 보듬어 안는다. 악행에 찌들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 그가 바로 인간이다.

 

'따듯한 반전'은 상처와 콤플렉스가 치유되는 과정을 단숨에 드러낸다. 관객은 머리로 복선을 되짚어 확인하기보다 장유정이 비정하고 더럽고 탁한 세상 속에 숨겨두었다가 펼친 따듯한 결말에 가슴으로 젖어든다.

 

물론 이런 결말은 꿈이며 낭만이다. 그 낭만의 현실성에 문제를 제기할 법도 하지만, 뮤지컬이야말로 세파에 찌든 등장인물과 관객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예술이 아닐까. 절망에서 희망으로, 상처에서 치유로, 절규에서 노래로 상승하는 장유정의 대본은 힘차다. 소극장 뮤지컬의 미래도 장유정의 대본만큼 따듯하게 반전하기를 빈다.

 

2008. 3. 15(토)

김탁환 KAIST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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