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수리오 (Etienne Souriau, 1892~1979)

〈예술들의 조응〉 (La Correspondance des Arts, 1947)

 

 

1. 

18세기 중엽에 독일에서 탄생한 미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그 최대의 학문적 성숙을 이룩하게 된 것은 아마도 20세기를 맞으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업적 가운데에서도 「學」으로서의 美學(esthetique)의 연구대상과 방법론에 관한 광범위한 반성이 두드러졌는데, 우리는 그 단적인 예를 금세기 프랑스 최대의 미학자의 한 사람인 「에띠엔느 수리오」(Etienne Souriau, 1891~1979)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리오는 1925년 『추상과 감정』(L'Abstraction Sentimentale) 그리고 『생명적 사유와 형상적 완전성』(Pensee Vivante et Perfection Formelle) 이라는 두 권의 저서를 통해 처음으로 세계의 미학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이후, 줄곧 소르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1975년 『풀잎의 왕관』(La Couronne d'Herbe)을 끝으로 50여년 미학 연구의 생애를 보냈다.

 

이 동안 그가 남긴 주요 연구업적은 저서와 논문을 합치면 상당히 많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미학연구의 대상과 방법론이 힘차게 전개된 것은 1929년의 『미학의 미래』(L'Avenir de L'esthetique)와 1939년의 『철학적 건립』(L'Instauration Philosophique), 그리고 1947년의 『예술들의 조응 - 비교문학의 요소들』(La Correspondance des Arts)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학의 미래』에서 예술을 「철학적 사유」(pensee philosophique) 위에서 해명하려 했던 그가 『철학적 건립』에서 소위 「철학적 건립」(instauration Philosophique)의 방법에 의해서 미학을 탐구하려 했다는 사실과 그 후 『예술들의 조응』에서는 철학적 사유에 의한 건립활동이 어떻게 예술들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거의 실증적으로 확증하려 했다는 것 등은 일관된 그의 연구방법의 예들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1974년에 「국제철학회지」(R.I.d.P.)가 특집으로 엮은 「오늘의 미학의 제문제」에 그가 기고한 「철학적 징후로서의 예술」(L'art comme symptome philosophique)은 수리오가 생각하는 예술의 「定義」를 말년까지 계속해서 일관성있게 주장한 본보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예술에 관한 그의 「철학적 건립」에 의한 고찰이 어떠한 성격의 것인지를 주석을 붙여두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는 특히 『예술들의 조응』의 서두에서 헤겔과 아믈랭 등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데카르트와 실증주의의 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미학의 미래』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엄격한 과학으로서의 미학의 이상을 천명한다. 수리오가 청년시절에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독단을 극력 타파하려 했던 것은 아마도 훗설의 그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도 수리오는 ‘사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던 훗설과 마찬가지로 그의 철학적 사유(예지)의 온갖 능력을 예술에 있어서의 사물(chose)로 침투시키는 데에 일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을 성싶다.

 

그래서 그의 저작들 전체를 관류하는 공통된 노력은 철학적 사유에 의해 예술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물을 어떻게 기술하고 분석하고 건립할 것이냐에 집중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생각에는 종래의 관념론적 ‘위로부터의 미학’과 실증주의적 ‘아래로부터의 미학’의 통합을 시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을 법하다.

 

여기서 그가 시도한 미학연구의 대상은 분명히 꼬집어 말해 예술작품 자체의 진실(verite de I'art lui-meme)을 밝히되 작품이라는 사물이 우리의 사유(pensee)에 현전하는 것, 그의 용어대로 하면 ‘現存들’(existences)에 육박해서 이 현존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에 본질적인 형식들(‘forme’을 그는 ‘형태’보다 철학적으로 ‘형상’에 가깝게 사용한다)을 해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그는 자신의 미학을 ‘형식들의 과학’(science des formes)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는 이 형식의 과학이 앞서 말한 철학적 건립을 수행함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 셈이고, 이 경우 철학적 건립은 과학의 결과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기능으로서 이해된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따라서 그의 저서 『철학적 건립』을 통해 예술에 나타나는 ‘건립적 활동’(activite instaurative)의 분석으로 발전되었고, 이 개념에 의해서 예술가가 작품이라는 ‘사물을 창조한다’(creer des choses)는 명제를 해명하려 하였다.

 

2.

이제 그의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예술들의 조응』은 그의 연구가 가장 왕성했던 시절 예술가들의 건립적 활동의 일대 파노라마를 전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초기의 『미학의 미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술들의 조응』에 있어서도 예술은 결국 ‘사물’의 창조이며, 이러한 창조는 건립적(instauratif)이다. 결국 이 고찰에 있어서 그의 방법적 가정은 사물의 이념으로서의 형식과 사유의 형식은 상호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들의 조응』에서는 이러한 전제를 통해서 『철학적 건립』에서 이미 정의되었던 예술은 곧 ‘건립적 능력’(puissance instaurative)임을 재천명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수리오는 예술을 그의 『예술들의 조응』에서도 역시 ‘건립적 활동’으로 파악하면서, 이러한 활동이 사물, 즉 작품의 현존에 관여하며, 작품의 실천적 제작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생기를 주는 ‘에스프리’(esprit)에까지도 적용된다고 하면서 작품의 현존 분석을 시도하였다.

 

『예술들의 조응』은 1947년에 파리에서 초판이 나온 후 69년에 중판이 나왔다. 이 저서는 모두 7장 38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부제로서 『비교미학의 요소』(Elements d'Esthetique Comparee)가 부가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작품의 ‘현존 분석’은 제3장의 6개의 절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에 의하면 작품이라는 사물이 우리의 사유에 현전되는(se presenter) 것, 즉 ‘現存’(exiter)으로서는 1) 물리적 2) 현상적 3) 사상적 4) 초월적 등 네 가지 현존 방식(modes d'existence)의 복수성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현존들의 우리의 의식에 대응해서 -존재(etre)와 現前(presence)을 향해-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리오가 현존 분석의 결과 제시하는 예술의 특징으로서 ‘위대한 작품은 특히 강렬하고 빛나는 현존을 보여준다’는 점을 들면서 예술작품이 일상 사물과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작품은 더욱 강렬하게 현존하는 바 아마도 보다 분명하고, 보다 완전하며, 보다 완성된 (현존일) 것이다. 그것은 넓게 말해 의심할 수 없는 現前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현존들의 전혀 필요 불가결한 국면들 위에서 건립되어진다.”

 

그러면 이러한 예술의 현존들은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수리오는 제4장의 7개의 절을 통해서 현존들에 주어져 있는 것들(所與)로서 7가지의 ‘감각가능적 성질들’, 그의 용어로 하면 ‘꽐리아’(qualia)를 예로 들면서 작품은 이러한 ‘감각가능적 성질들’을 토대로 우리의 사유에 의해 현존들을 나타내도록 건립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건립된 결과는 하나의 일정한 건립적 ‘체계’(systeme)를 이룰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유명한 7방위의 방사형에 의한 14개의 예술들을 용인하였다.

 

이를 기초로 해서 그의 『예술들의 조응』에 나타난 건립 활동의 기초개념은 ‘감각가능한 성질들’(qualia sensibles)이며, 이것들이 예술 작품의 현존을 상이하게 구성해서 각 예술들의 ‘레알리떼’의 특징을 결정할 것이라고 상정한다.

 

따라서 5장과 6장을 통해 그는 음악과 문학, 그리고 음악과 조형예술들의 건립적 구성의 ‘유사’와 ‘차이’를 고찰하는 실증적 분석에 돌입한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저서의 1장과 2장에서 밝힌 ‘비교미학’과 예술의 ‘건립적 정의’를 실험적으로 확충하려는 부분이다. 이 저서의 ⅔를 차지하는 이 부분들을 여기서 요악할 수는 없지만, 그 결론만은 마지막 제7장에 제시된 대로 ‘예술적 우주론’(Cosmologie Artistique)으로서 요약될 수 있다.

 

3.

요컨대 그는 예술을 철학적 건립에 비교하면서 철학적 사유에 대응하는 예술적 사물의 건립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고, 여기에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을 그의 일관된 인생의 『미학의 열쇠』(Clefs pour L'Esthetique, 1970)로 삼았던 것이다. 이 열쇠는 이미 초기의 『철학적 건립』에서 제시하였던 ‘진정한 사유는 작품에 내재하는 형상의 인식에 있음과 아울러 인간의 건립적 활동(여기서 그는 인간을 건립하는 존재로 보았다)안에서 작용하는 사유가 예술의 개념을 특징지으며, 따라서 작품의 형식(상)이란 인간의 정신적 사유 안에서 하나의 존재(etre)로서 인식된다’는 것을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펠드망(V. Feldman)은 일찍이 수리오의 미학적 특징을 ‘합리적 리얼리즘’으로 기술한 바 있지만, 그의 철학적 건립의 사상은 1950년대 이후 특히 60~70년대의 프랑스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1950년작인 『20만개의 연극적 시츄에이션』(Les Deux Cent Mille Situations Dramatiques)은 60~70년대 프랑스 기호학의 거두인 그레마스(A. J. Greimas)의 「작품의 言說에 관한 언어과학적 탐구」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수리오의 업적은 작품의 과학적 탐구자들에게만 모범이 되고 있지는 않다. 그의 연구가 보여준 결과는 동시에 높은 철학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바, 특히 듀프렌느와 인가르덴과 같은 현상학적 미학의 대가들이 수리오의 업적을 그들의 저서들에서 인용하거나 지적하고 있다.

 

흔히 미국의 토마스 먼로(T. Munro)의 경험과학적 미학에 비교되는 수리오의 철학적 과학으로서의 미학은 60~70년대의 비교미학과 비교예술학을 탄생시키는 데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