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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하우저 (Arnold Hauser, 1892~1978)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1954)

 

  

 

  


1.

아르놀트 하우저는 1892년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해 있던 헝가리의 테메스바(Temesvar)라는 소도시의 소시민 유태인 가정에서 출생하여 오랫동안에 걸친 외국생활을 마치고 1978년 부다페스트에서 타계하였다.

 

그는 모국어인 헝가리어와 독일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영미 문화에도 매우 친숙한 20세기 유럽의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이자,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예술사가이다. 이러한 면에서 하우저는 루카치, 아도르노와 비슷한 지식인의 대열에 서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우저가 루카치와 아도르노보다 비교적 덜 알려진 이유는 그의 지적 작업과 그의 삶이 보여주는 특이한 스타일에 기인하는 듯하다.

 

하우저는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부다페스트와 베를린, 빈 등의 대학에서 문학사와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1919년에 세워진 헝가리 소비에트 정권하에서는 루카치의 도움으로 잠깐 부다페스트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이 정권이 무너지자 빈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전생애에 걸친 유랑생활이 시작된다.

 

매우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그는 20년대와 30년대의 대부분을 일종의 사학자로서 주로 미술사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훗날에 출간될 업적에 비추어 보면 매우 생산적인 '수업시대'였다. 이 시기에 그는 당시의 주요한 예술사적 업적, 즉 리글(Alois Riegl)의 바로크 연구, 뵐플린(Heinrich Wolfflin)의 양식사 연구, 드보르작(Max Dvorak)의 역사주의적 예술사 연구 등을 폭넓게 섭렵하였고, 또 베를린대학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회과학자들, 예컨대 짐멜, 좀바르트, 트뢸취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의「막스 베버」등의 사회학적 연구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 이 시기에 그는 파리와 이탈리아 등에 오래 머물면서 직접 미술품을 접함으로써 훗날 그의 예술사연구의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하우저의 이러한 긴 교양 체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무래도 1910년대말의 부다페스트의 이른바 '일요 서클'이었다. 루카치를 중심으로 칼 만하임, 발라츠(Bela Balazs) 등이 속해 있던 이 젊은 지식인 그룹에서는 현대문학과 예술은 물론이고 정신과학 전반에 걸친 문제들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하우저의 예술사 연구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학적 연구방법론, 예술담당자로서의 지식인 계층에 대한 집중적 연구, 그리고 영화예술에 대한 집요한 관심 등은 모두 이 서클(특히 루카치와 만하임)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38년 나치가 빈을 점령하자 하우저는 또다시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런던에서 그의 망명생활도 빈에서의 망명생활처럼 매우 외롭고 가난하였다. 그가 이 당시 어떠한 여건 속에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하 『예술사』)를 썼던가를 회고하는 글을 읽으면, 우리는 그의 학자로서의 정열과 양심에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1940년(나이 47)부터 1950년까지 어느 영화사에서 ‘사동이 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주로 직장일이 끝난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하여 10여 년에 걸쳐 『예술사』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주말에 대영박물관의 도서실에서 알게 된 영국의 미술사가 허버트 리드가 이 무명의 학자에 주목하고 『예술사』의 출간에 기여하였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아무튼 1951년 처음 영어로 이 책이 출간되고 1954년에 독일어판이 나옴으로써 하우저는 점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곧 영국 리드 대학에 전임 강사직을 얻게 되었고, 50년대말과 60년대 초에는 미국대학의 초청을 받아 교환교수로서도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예술사의 철학』(1958)이라는 이론적 연구서와 『현대예술과 문학의 근원』(1964)이라는 마네리즘에 관한 연구서를 저술하였다.

 

말년에 씌어진 『예술의 사회학』(1974)은 하우저 예술관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저서인데,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이론과 예술연구방법론을 최종적으로 정립하고 있고, 또 그가 일생 동안 깊은 관심을 보여 왔던 현대예술(특히 영상예술)과 현대문학에 대한 견해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2.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하우저의 생애와 저술에서 알 수 있듯이 하우저는 범유럽적 교양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서서히 성장한 이를테면 대기만성형의 지식인이다. 그의 저서가 비교적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또 오랫동안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삶과 그의 지적 성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1966년에 그의 『예술사』의 일부가 소개되고 1974년에 「현대편」이 번역 출간되었으며, 1981년에는 4부에 걸친 그의 『예술사』가 완역되었다. 그 후 뒤이어 『현대예술과 문학의 근원』(『예술과 소외』라는 제목으로 출간)과 『예술의 사회학』의 대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됨으로써 하우저의 저서는 우리들에게 거의 다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하우저의 대표적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예술사』와 『예술의 사회학』을 중심으로 하여 하우저의 예술사와 예술이론이 갖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하우저의 『예술사』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전유럽의 예술과 문학을 통사적으로 서술한 유일한 저서이다. 하우저의 『예술사』에 필적할만한 저서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하우저의 『예술사』는 비록 문학에 한정되어 있고 또 방법론을 달리하고 있지만 역시 통사적 성격을 띠고 씌어진 아우얼바하의 『미메시스』와 쿠르티우스(E. R. Curtius)의 『유럽문학과 중세라틴문학』과 함께 날이 갈수록 미시적 연구에만 빠져드는 제도권 중심의 오늘날의 학문적 풍토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 하나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예술사를 사회학적 시각에서 조감해 보려는 문학도에게는 일종의 교과서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하우저는 문학사가이기 이전에 미술사가이다.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조형예술에 대한 관심은 그가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일종의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예술사가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이다. 그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조형예술에 나타나는 양식사적 현상, 즉 마네리즘을 셰익스피어 문학 해석에 적용시키고 있다든가 20세기 전위 문학의 특성을 현대의 영상예술에서 찾는다든가 하는 등은 그의 미술사가로서의 시각이 없었더라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우저의 이러한 특징은 현대예술을 음악과 문학의 관련 속에서 보는 아도르노의 예술 이론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셋째, 하우저의 『예술사』는 일반적 이론과 구체적 작품비평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변증법적으로 잘 매개되고 있다. 『예술사』에 보여지는 몇몇 개별적인 작가나 작품에 대한 하우저의 뛰어난 실제 비평은 그가 정해 놓은 이론의 틀을 끊임없이 교정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하나의 예술사가 빠지기 쉬운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예술사가로서의 하우저의 이러한 특징과 입장은 이론적·체계적 비평에 매우 강한 루카치와 개별적 예술품에 날카로운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아도르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 보는 것처럼 이론비평과 실제비평이 서로 연결을 짓지 못한 채 이루어지고 있는 문학연구나 예술연구의 실정에 비추어 보면 하우저의 『예술사』가 갖는 이러한 특징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하우저의 사회사(사회학)적 연구방법론의 특징은 이미 언급한 대로 사회학적 연구방법론이 빠지기 쉬운 도식적 구성과 방법론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면 현대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여러 사회학적 인식은 그에게는 예술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그는 예술적 현상이 전체적으로 보면 예술 외적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모든 요소에 의해서도 설명되지 않는 예술의 어떤 실체 내지 본질이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예술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는 이러한 예술의 본질적 면을 예술의 형식 내지 양식이 가지고 있는 지속성과 자율성, 그리고 예술이 갖는 보편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뵐플린식의 양식사 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인다든가, 아니면 현대예술의 특징을 16세기의 마네리즘적 양식의 연속선상에서 고찰한다든가, 아니면 ‘예술의 종말론’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현대예술의 존립근거와 기능을 옹호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의 예술관의 이러한 면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예술연구방법론에 대한 그의 관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이론적 틀과 변증법적 방법론은 인정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실천과 역사적 결정론이 예술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에는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예술의 정치적·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일체의 실천적 예술관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에도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하우저의 예술관은 아마도 예술을 보는 그의 시각이 19세기 서구 부르조아의 예술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나아가서는 20세기 망명 지식인으로서의 하우저의 생애와 학문적 작업이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실천의 문제와 유리되어 전개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일반적인 하우저 수용은 보다 본격적인 연구과 분석, 그리고 보다 비판적인 시각에 의해 더욱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예술연구의 방법론〉 Methoden der Kunstbetrachtung, 1960

현대예술과 문학의 근원〉 Der Ursprung der modernen Kunst und Literatur, 1964

예술의 사회학〉 Soziologie der Kunst, 1974

루카치와의 대화〉 Im Gesprach mit Georg Lukac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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