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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앙 골드만 (Lucien Goldman, 1913~1970)

숨은 神〉(Le Dieu cache, 1956)

 

 

1.

루시앙 골드만은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사회학적 비평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그에게 문제되는 것은 문학, 나아가서는 모든 문화적 창조의 사회적 의미인데, 그의 보다 근본적인 입장은 한 작품 한 사상가가 위치해 있는 사회적 조건이야말로 그것들의 본질을 결정짓는다고 하는데 있다. 따라서 한편의 텍스트나 작품은 그 자체로서 혹은 단순히 작가와의 관련 하에서 완전히 설명될 수는 없다. 그것은 보다 광범한 전체, 즉 그것들이 관련을 맺고 있는 사회집단 또는 사회계급과의 상관관계 하에서만 비로소 그 비밀이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이 마르크스적 사회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보다 직접적으로는 헝가리의 마르크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의 영향을 받았다.

 

1945년 『칸트에 있어서의 인간 공동체와 세계』(La Communante humaine et l'univers chez Kant) 가운데서 철학자와 그들이 그 안에서 작업한 사회적 조건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며, 그 사이에 어떤 기능적 관련의 체계를 설정하고자 시도한 이래로, 『인문과학과 철학』(Sciences humanies et Philosophie, 1952), 『변증법적 연구』(Recherches dialectiques, 1958) 등을 통해 지적 창조에 대한 성찰을 심화시켜 나갔다.

 

한편 문학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여기 문제되어 있는 『숨은 神』을 포함하여 현대문학, 특히 누보 로망을 논한 『소설사회학을 위하여』(Pour une sociologie du roman, 1964)로써 문학의 사회학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숨은 神』에는 『파스칼의 팡세 및 라신의 희곡에 나타난 비극적 비전에 관한 연구』(etude sur la vision tragique dans les Pensees de Pascal et dans le theatre de Racine)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즉 이 비평서는 파스칼과 라신의 주저를 대상으로 엄밀히 자신의 사회학적 방법론을 적용시킴으로써 이 작품들의 새로운 의미를 추적한 것인데, 그 방법론의 엄정성 및 대상작품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써 일반의 주목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여기서는 특히 파스칼론을 중심으로 그의 방법론과 주장을 소개한다.

 

2.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광범위하게 인문과학 분야에 있어서의 방법론에 관한 성찰을 펼치고 있다. 이 방법론은 한마디로 ‘변증법적 개념화’(conceptualisation dialectique)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변증법은 전체와 부분의 개념으로 성립된다. 즉 ‘모든 부분적 진리는 전체 속에서의 그것의 위치에 따라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고, 마찬가지로 전체도 부분적 진리의 진전되는 인식에 의해 파악된다’라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골드만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단계를 설정한다.

우선 골드만은 ‘개별적이고 추상적인 경험적 사실들’과 마주친다. 그런데 이 사실들은 부분적인 것들이고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만큼 (그렇기 때문에 골드만은 이것들을 ‘추상적’이라고 부른다) 그것들이 속하고 있는 보다 큰 ‘전체’ 속에 편입되어야 한다.

 

이 전체로의 편입에 의해 ‘부분적이고 추상적인 현상을 뛰어넘어 그것의 구체적인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론상 이 전체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 한 작품 또는 한 사상은 그것을 생산한 하나의 전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속에 편입되고, 이 인간은 다시 그가 속해 있는 사회집단 속에 편입된다.

 

골드만이 최종적으로 설정하는 전체는 ‘사회집단’(groupe social)이다. 그것은 ‘과학적 연구에 틀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독자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단은 ‘구성원들을 결집시키고 다른 집단에 대항케 하는 갈망과 감정과 사상의 총체’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이 집단적 의식, 골드만에 의하면 ‘세계관’(vision du monde)의 가장 명석하고 조리있는 표출이다.

 

실제적으로 이 방법의 적용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첫째, 작품 또는 텍스트에 대한 내부적 분석의 단계가 있다. 골드만은 이것을 ‘이해’(comprehension) 또는 ‘현상학적 기술’(description phenomenolotique)이라 부른다.

 

다음으로 이 내부적 분석의 결과가 하나의 ‘의미있는 구조’로서 설명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전체, 즉 그것의 ‘발생을 설명해주는 사상과 감정의 전체적 흐름’, 위에서 말한 사회집단의 세계관 속에 편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세계관으로써 모든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집단의 의식(즉, 세계관)은 보다 큰 전체, 즉 경제적·사회적·정치적·이념적 삶의 총체로 구성되는 전체 속에 편입됨으로써 완전히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골드만의 방법론은 ‘이해’와 ‘설명’의 두 축으로 성립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적 분석을 통해 ‘이해된’ 구조는 그것이 속해 있는 사회집단의 체계에 의해 ‘설명되고’, 다시 이 집단적 의식은 이 집단의 역사적 상황에 의해 설명된다. 다시 말해서 작품 속의 원초적 구조는 그것을 발생시킨 보다 근원적 구조에 의해 점진적으로 설명됨으로써 마지막 열쇠가 주어진다. 골드만이 스스로 ‘발생학적 구조주의’(structuralisme genetique)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이해할 만하다.

 

끝으로 덧붙일 것은 ‘유추’(analogie)의 개념이다. 즉 작품 속의 구조가 집단의식의 구조에 의해, 다시 이 집단의식의 구조가 역사적 상황의 구조에 의해 설명되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제2장에서부터 골드만은 자신의 방법론에 따라 파스칼의 『팡세』에 대한 분석에 착수한다.

제1단계는 작품의 내적 분석을 통해 그것의 구조를 이해하는 단계인데, 그는 『팡세』에서 추출된 사상적 구조를 ‘비극적 세계관’(vision tragique)이라 부르고 있다. 그는 파스칼의 시대가 ‘철학적 합리주의와 과학적 기계론’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시대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파스칼은 데카르트와 더불어 이 투쟁의 대열에 섰었으나 그 승리에 도취되기는커녕 오히려 이 새로운 이념들로 인한 정신적 공백을 가장 심각하게 괴로워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다.

 

다시 말해서, 신에 의해 보장되었던 우주적 질서와 인간 공동체가 붕괴되자 ‘무한한 공간’속에 내던져진 ‘고립된 자아’가 느끼는 당혹과 절망감-『팡세』속에 그려지는 비극적 인간의 상황은 이런 것이다. 골드만은 신세계 인간이라는 세 주제를 통해 ‘비극적 세계관’의 본질을 규명한 끝에 파스칼의 신앙관에 대해 결론을 맺는다.

 

즉 신과 인간과의 단절이 불멸의 법이 되어 있는 이 비극적 상황 속에서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는 것은 오직 ‘추구’의 미덕,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희구’의 미덕뿐이다. 그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숨은 신’에 대하여 비극적 인간은 오직 희망을 가지고 ‘내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석의 제2단계는 팡세의 이 내적 구조를 보다 큰 전체 속에 편입시키는 단계인데, 골드만은 17세기 프랑스의 한 사상적 흐름, 즉 ‘쟌세니즘’과 관련시킨다. 그는 1630년대 이후 근 40년간 프랑스의 지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쟌세니즘 가운데 성숙되어간 비극적 세계관을 분석하며, 그것이 파스칼의 세계관과 동질적인 점에 주목한다. 사실상 파스칼은 가장 투철한 쟌세니스트였으며, 그의 개인적 사상은 이 집단적 의식의 가장 의식적이고 일관성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쟌세니즘은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하였는가. 이렇게 해서 골드만의 분석의 마지막 단계는 한 사회집단이 놓인 역사적 상황에 대한 고찰로 채워진다.

 

이 사회집단은 다름 아닌 ‘범복귀족’(noblesse de robe)인데, 이들은 17세기 중엽 절대왕정이 확립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다. 즉, 왕을 정점으로 새로이 개편되는 권력체계에서 소외된 구관리 및 법관들이 바로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조직적인 반대세력을 형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이 체제의 유지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의 생존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이들은 절대왕정에 적대적인 위치에 놓여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에 매여 있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들은 절대 권력의 영원한 현존 속에서 그러나 이 권력의 부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매여 있는 권력은 결국 그들에게 ‘숨은 권력’이나 다름없다.

 

끝으로 골드만은 이와같은 법복귀족의 사회적 조건과 쟌세니즘의 비극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동질성을 결론짓는다. 쟌세니스트들은 지상의 모든 가치의 공허를 발견하고, 은거와 고독 속에서 구원을 추구한다. 그들은 가치의 실현을 위한 지상에서의 시도를 전적으로 배제하면서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신을 추구하는 것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은 ‘숨은 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숨은 권력’ 앞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으되 그것에 매달리는 일부 법복귀족의 역설적 상황과 완전히 동질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3.

이상의 고찰을 통해 골드만은 한 이데올로기의 탄생 및 발전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의 사회적·정치적 배경과의 성관관계로써 설명되어야 한다는 그의 방법론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는 계속해서 당대의 역사적 사실들 가운데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사실들을 제시하기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파스칼 및 라신에 관한 골드만의 비평작업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 사적 고증의 과정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점에 있어 골드만은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어쨌든, 『숨은 神』은 작품해석에 동원된 방법론의 엄정성과 비극적 세계관의 사회학적·역사적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로서 크게 주목받을 만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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