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노스럽 프라이 (Northrop Frye, 1912~)
〈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scism: Four Essays, 1957)
1.
노스럽 프라이는 1912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출생하여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계속 연구하였다. 1936년에 캐나다 연합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1939년 이래 토론토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1991년 80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간 무려 30여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등 학자 비평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비평의 해부>는 그 부제가 말하듯이 네 에세이로 되어 있다. 일찍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공의 상징적 해석법인「예형론」(typology)을 깊이 있게 배웠고, 또한 인류학 (특히 神話學)과 융 일파의 분석심리학이 보여준 인류의 불변하는 상징적 본성을 나름대로 통찰하여 이를 문학 연구에 응용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첫 수확이 최대의 상징적 시인인 월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를 연구한 <무서운 균형>이었다. 이 책 역시 명저로 꼽히고 있는데, 그 집필을 전후해서 프라이는 문학의 이론에 관한 새로운 경향의 논문들을 많이 발표했다. 그중 「오늘날에 있어서 비평의 기능」, 「문학의 원형」 등이 나중에 수정·확대되어 <비평의 해부>(임철규역)에 편입되었다.
<비평의 해부>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역사주의 문학론과 새로운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던 신비평과 기타 심리학적·윤리적·사회적 비평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다. 서론을 「도전적 서론」이라 이름한 것부터가 프라이의 자신만만한 도전적 자세를 분명히 보여준다.
프라이는 문학비평이 하나의 체계적인 지식, 즉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종래의 비평은 철학, 신학, 윤리학, 심리학 등 인접 학문으로부터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대체로 두서없이 편리한 개념과 논리를 빌어다 썼다. 그런 까닭에 화려한 낱말과 수사법을 동원한 굉장한 분량의 비평에도 불구하고 물리학 경제학 법학처럼 자체의 체계와 전통을 유지·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독자적 학문, 조직적 지식으로 정립되지 못한 채 수 천 년이 흘렀다는 것이다.
또 하나 문학비평의 체계화를 방해한 것은 비평의 작업이 거의 모두 문학에 대한 가치평가에만 쏠렸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하여 주로 좋다 나쁘다는 말만 해왔다는 것이다. 좋다 나쁘다의 반응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적인 전통을 이루어 축적되는 체계적 지식을 성립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물리학의 대상은 자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물리학이 말하는 자연은 꽃피고 새우는 만고강산은 결코 아니다. 물리학의 대상은 자연에서 추출한 것을 체계화한, 오랜 전통의 물리학이다. 즉 물리학자는 물리학을 연구하지 자연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의 연구는 이미 정해진 구조를 갖고 있는 지식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문학비평의 대상은 직접적으로 <춘향전>이나 <잃어버린 낙원>이어서는 안된다. 문학비평-문학연구라 함이 더 옳을 것이다-의 대상은 일정구조 속에서 체계를 이룬 문학비평(문학연구, 또는 문학이론), 즉 문학으로부터 추출된 체계적 지식이어야 한다. 자연과 물리학이 서로 직접적 관련성이 멀 듯, 문학과 문학비평도 직접적 관련성이 멀어야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물리학자는 물리학을 연구할 때에는 정해진 틀 속에서 개념들의 체계화에 전념하듯 문학의 아름다움에 황홀한 비평가(문학자)는 일정한 틀 속에서 개념들의 체계화라는 작업에 임해야 한다.
이것은 문학비평의 과학화라는 19세기의 실증주의적 발상과도 흡사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실증주의 문학론은 문학에 관련된 가장 표피적 사실들만을 수집했을 뿐, 문학이라는 무한히 다양한 현상을 깊고 넓게 담을 구조를 절대로 형성할 수 없었다. 프라이는 바로 그 일을 해내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인류의 신화와 문학을 깊이 통찰한 끝에 이들 속에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는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증주의는 표피적 사실들만 만지작거렸지만, 그는 피부 속에 깊이 묻혀 있는 골격구조를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사람, 박쥐, 원숭이와 고래는 겉으로는 서로 엄청나게 다르지만 골격구조는 포유류로서 동일하는 비교해부학적 사실을 발견한 이래, 생물학은 완전히 체계가 잡힌 과학으로 정립되었다.
프라이는 말하자면 문학의 비교해부학적 탐구를 통하여 문학의 기본구조의 체계를 알아볼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비평의 해부>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학의 ‘해부학적’ 골격구조는 신화적 구조라는 것이 프라이의 주장이다. 이 비슷한 주장은 실상 아주 오랜 것이어서 아리스토텔레서의 <시학>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특히 19세기 낭만주의시대 이후에 그리고 20세기 초 신화 학자들이 신화의 심층구조를 파헤치면서 문학 속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지적해 냈다.
프라이의 독창성은 신화와 문학 사이의 신화구조적 유사성을 간헐적으로 지적하고 마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문학 작품이라도 구조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포괄적이면서도 단일한 큰 구조를 형성했다는 데에 있다.
2.
네 에세이 중 그 첫 에세이에는 「역사적 비평: 양식의 이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아마 전통적 문학론에서는 프라이가 말하는 ‘양식’을 장르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문학의 근본 양식은 비극적·희극적 및 주제적 양식의 세 가지로 본다.
이중 비극과 희극은 이야기, 즉 허구에 의존하고 주제적 양식은 생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주제적 내용에 의존한다. 이들 양식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를 프라이는 밝힌다. 애초에 종교적 제식에서 시작된 비·희극의 외모는 인간 사회의 변모에 따라 변하지만 근본구조는(서양 문학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고대 희극에 으레 등장하던 인물은 분장만 달리한 채 오늘날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에세이는 「윤리적 비평: 상징의 이론」인 바, 프라이의 신화비평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상징이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을 뜻할 때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어떤 적절한 문맥(또는 약속, 관습)만 주어졌을 때 사람이 알고 있는 모든 만물, 현상과 생각이 다 다른 무엇을 뜻할 수 있다. 즉 세상은 모두 상징이 된다. 산수책의 숫자와 같은 단순한 상징에서부터 우주일체를 다 포괄한 신비주의적 상징에 이르기까지 상징은 각양각색 무수하다.
문학은 우선 말을 사용하는 까닭에 상징적일 수밖에 없고, 더욱이 신비적 상징을 즐겨 다루므로 문학적 상징의 폭은 극히 넓다. 프라이는 단순한 기호로서의 상징, 심상으로서의 상징, ‘원형’으로서의 상징, 신비적 상징을 차례로 다룬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원형적 상징을 다루는 부분이다. ‘원형’(archetype)이란 한 사회가 공유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심상을 말하는데 그것은 한 작품과 다른 작품을 연결시켜 우리의 문학적 경험을 통일·통합시켜 준다. 원형의 비평은 그러므로 문학을 사회적 의사소통의 양식으로 보는 비평이다. 상징의 이론은 이렇듯 사회의 의사소통을 위한 뜻의 형성과 전달에 관한 것이므로 ‘윤리적’ 비평이 되는 것이다.
셋째 에세이는 「원형 비평: 신화의 이론」으로서 <비평의 해부>의 노른 자위에 해당된다. 먼저 개념적 의미와는 별개의 원형적 의미를 설정한다. 모든 민족에게 공통된 우주에 대한 신화를 보면 일정한 변모를 주기적으로 겪는 신들의 세계, 역시 자연의 주기를 따라 변모하는 인간세계, 그리고 자연(동·식물)의 세계가 서로 대조 유비되며 이야기된다. 근본에 있어 신까지 포함한 우주의 주기적 변모는 출생, 성장, 결실(완성), 소멸, 다시 출생, 성장…의 반복의 형식이다.
이것은 즉 사계절에 따른 생물계(특히 식물계)의 생태적 변화와 관계되고, 나아가서는 인류의 신화가 처음 형성되었다는 농경사회의 생활양식과 관계된다(농경사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즉 농경사회의 신화의 원형은 아직도 깊숙이 존속하고 있다). 프라이는 생물이 출생하는 봄에 관련된 기본 신화(또는 원형)와 희극은 뗄 수 없는 서로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본다. 희극의 기본양식은 즐거운 낙원에서의 아름다운 청춘의 행복한 이야기이다. 여름의 이야기는 로맨스로서 소원과 욕망이 실현되는 모험담이다. 가을의 이야기는 비극, 즉 영웅의 쇠망의 이야기인 것이다. 겨울은 아이러니와 풍자의 문학의 원형이 된다.
넷째 에세이, 「수사학적 비평: 장르의 이론」은 시, 산문, 희곡 등의 말재간, 소리의 조절 등 이야기 또는 뜻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들을 장르별로 다루고 있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운문과 산문의 리듬에 대한 그의 통찰이다.
「잠정적 결론」이라 이름한 마지막 부분에서 프라이는 자기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들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버릴 새로운 전망을 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장벽을 허무는 일에 ‘원형비평’이 중심적 역할을 하리라 확신하는 것이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포괄하는 원형에 대한 인식이 없는 한, 비평은 표피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원형비평이 사회의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여 또한 공동의 꿈, 상상력을 해방시키고 북돋아주는 인간 고유의 본성을 일깨워준다고 믿는다.
<비평의 해부>는 도식적이고 독단적인 데가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하나, 종횡무진한 그의 해박함과 직관은 누구에게나 놀라움을 자아내며, 인류의 공동자산으로서의 신화와 문학의 긴밀한 구조적 관계에 대한 해석은 계속 설득력이 있다.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교육된 상상력> The Educated Imagination, 1964
<자아인식의 이야기들> Fables of Identity, 1963
<단련된 비평가> The Well-Tempered Critic, 1966
<시간의 바보들> The Fools of Time, 1967
<완고한 구조> The Stubborn Structure, 1970
<비평의 길> The Critical Path, 1971
<세속적 성서> The Secular Scripture, 1976
<세계의 정령> Spiritus Mundi,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