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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Hans-Georg Gadamer, 1900~2002)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 1960)

 

  

 

1.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1900년 2월 11일 독일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태어나 2002년 3월 13일 타계하기까지 무려 102년이나 장수했다. 그는 라이프치히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하이델베르크대학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그리스철학, 미학, 역사철학, 철학적 해석학 등을 강의하였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진리와 방법:철학적 해석학의 제특징(Wahrheit und Methode: Grundzuge einer philosophischen Hermeneutik)』은 그 부제가 말해 주듯이 철학적 해석학에 관한 저서이며, 1960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해석학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해 준 대저이다.

 

2.

『진리와 방법』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 가다머는 예술의 경험에 있어서 진리의 물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는 여기서 근대의 미학이 특히 칸트의『판단력 비판』에 의해서 주관화되었다고 비판하고 미학적 차원의 초월을 서술한다. 그는 예술에 관한 인식론적 관점을 배격하고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분석한다. 예술작품은 주관적인 미학적 의식의 대상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오히려 우리에게 자기 존재의 진리를 드러낸다고 한다. 예술작품 자체가 예술경험의 주관으로서 우리를 자기의 존재로 불러들인다. 따라서 예술의 이해는 스스로의 존재 진리를 드러내는 작품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수행된다. 더 나아가서 가다머는 예술작품의 존재론을 정립하고 그의 해석학적 의미를 밝힌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일단 행태화되고 난 후에는 그의 창작자나 해석자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되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작품은 그 자체의 자율성을 가지고 창작자의 의견이나 창조적 행위로부터 원칙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에서 의도된 의미는 자품 자체의 존재의 진리이며, 예술작품의 존재가 그의 진리에 있어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작품의 이해이다.

 

제2부에서 그는 진리의 물음을 정신과학에 있어서의 이해로 확대한다. 가다머는 우선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의 낭만주의적 해석학, 역사학파와 낭만주의적 해석학의 결합으로서의 랑케와 드로이젠(J. G. Droysen)의 역사주의를 비판하고, 딜타이에 있어서 역사의 인식이론적 문제가 어떻게 정신과학 일반의 해석학적 정초로 발전되는가를 서술한다. 제반 정신과학에 있어서 인식이론의 확립을 시도한 딜타이는 역사의식의 분석에 있어서 결국 과학과 ‘삶의 철학’의 분열에 빠진다고 한다.

 

정신과학에 있어서 인식론적 물음, 즉 방법론적 사고는 현상학적 탐구에 의해서, 특히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에 의해서 극복된다. 가다머는 여기서 해석학은 진리의 경험이요 정신과학의 인식론일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자기의 사상을 해석학적 경험의 이론으로서 정립한다. 해석학적 경험은 이해의 역사성 속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해의 역사성은 가다머에 있어서 해석학적 원리로 된다. 그는 이해의 역사성에서 나타나는 해석학적 문제들, 즉 해석학적 순환과 선입견, 시간 간격의 해석학적 의미, 影響史의 원리 등을 차례로 그의 서술의 주제로 삼는다.

 

이해의 역사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과 의미연관을 이해함이며, 다른 하나는 이해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고 역사에 의해서 이미 규정되어 있으며, 우리 자신의 역사적 상황과 의미지평으로부터 이해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해는 객관적인 역사의 의미내용과 이해의 주관이 서로 만나고 융합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해과정에서 가다머에게 우선 문제되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이미 역사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이해의 先構造’(하이데거)와 해석학적 순환 속에 있다.

 

그런데 가다머는 해석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선이해’(Vorverstandnis)라는 개념 대신에 ‘선입견’(Vorurteil)이라는 좀더 폐쇄적으로 보이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선입견을 계몽주의 이래 부정적 의미로 통용되는, 따라서 배척되어야 할 선입견과 분명히 구별한다. 선입견은 전통 권위 등 일정한 역사적 지평에 의해서 제약된, 그러나 아직 학문적으로는 반성되지 않은 이해로서, 모든 이해의 통로를 마련해 주는 전체요 출발점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이해과정에 있어서 타당성 여부에 따라 검토되고 부단히 수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다머는 선입견의 생산적 성격을 강조하고 그것의 복권을 요구한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전통과 역사적?문화적 권위 속에 존재하며, 이해에 있어서 그것에 의해 제약된 선입견으로부터 출발한다 함은 해석학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리는 이해함에 있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현재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 과거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재생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전승된 텍스트는 그것이 주어진 우리의 현재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함은 곧 그것을 현재에 ‘적용함’이라고 한다. 이 때 텍스트의 사실은 우리에 대해서 단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그 속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의미지평이며, 이것은 우리의 역사성의 지평 안에 주어져 있다.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해석학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며 또한 현재와 관계하고, 우리에게 이해지평을 넓혀 준다. 이해는 단지 우리의 주체적 행위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해석자, 즉 과거와 현재의 서로 다른 역사적 지평이 만나고 융합되는 데서 이루어진다.


가다머는 이해를 자기이해와 전통 사이의 긴장관계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매개과정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역사적 지평의 만남과 융합은 영향사적 연관성의 매개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영향사’란 이해에 대한 역사의 부단한 작용을 말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전승은 우리의 역사 안에서 작용하고 해석되며, 그래서 우리 자신의 고유한 이해지평 속으로 들어온다. 이러한 영향사적 연관성이 이해의 가능성을 매개한다.


제3부에서 가다머는 언어를 실마리로 하여 해석학이 존재론으로 전향함을 밝힌다. 텍스트 이해의 과정은 언어적 과정이라는 것, 영향사적 사건은 언어의 사건이라는 것, 따라서 과거지평과 현재지평의 융합도 대화수행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언어가 해석학적 경험의 매체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다머는 언어를 해석학적 존재론의 지평으로 파악한다.

 

3.

고대 희랍시대부터 텍스트의 의미를 다른 정신세계로부터 자기 자신의 정신 세계로 옮겨놓는 것을 과제로 하는 해석의 기술은 17세기에 이르러 해석학(Hermeneutik)이라고 불리우게 되었고, 그것은 세 가지 형태로, 즉 고전적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는 어문학적 해석학으로서, 성서해석에 있어서는 신학적 해석학으로서, 그리고 법전의 해석에 있어서는 법학적 해석학으로서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성서나 법전에 있어서의 규범적 의미의 해석을 과제로 삼는 이러한 특수 해석학들의 공통적 이해과정을 근거로 하여 해석학을 보편적 이해이론으로 확립한 것은 슐라이어마허였으며, 그의 사상은 딜타이에 의해서 수용 발전되었다.

 

딜타이는 19세기 사상계를 지배하던 자연과학적·실증적 사고에 대해서 정신과학의 방법적 독립을 확보하려 하였다. 그래서 해석학은 정신과학의 정초라는 보편적 문제를 그의 과제로 삼게 된다. 인간정신의 객관화가 역사의 세계라면 딜타이와 가다머가 공통적으로 역사이해를 해석학의 주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딜타이는 해석학을 정신과학에 있어서의 인식론으로 파악하고, 역사세계의 인식은 어떻게 자연세계의 그것과 같이 보편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그의 주저 『역사이성비판』에서 다룬다. 르네상스로부터 슐라이어마허를 거쳐 딜타이로 이어지는 일관된 해석학적 노력은 정신과학의 보편적 방법론을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 베티(E. Betti)에 의해 체계화된 이러한 규범적 해석학의 전통에 맞서서 해석학을 학문적 방법론으로서가 아니라 존재론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다머의 입장이다.

 

전후 해석학은 자연과학적 사고에 기초를 둔 과학이론과 사회비판이론의 거센 물결에 의해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해석학이 그의 본질상 엄격한 과학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으며 전통적으로 사회이론과 연결되지 못한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다머는 그의 저서 『진리와 방법』을 통하여 해석학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철학, 문학, 신학 등의 분야에서 해석학적 논의를 새롭게 부활시켰다.

 

가다머는 그의 스승인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표명한 존재론적 해석학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은 삶의 객관화된 형태를 실천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적 이론이 아니라 이해 자체가 이미 인간적 삶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래서 삶을 현존재(Dasein)로 표현하는 하이데거는 자기의 ‘기초적 존재론’을 ‘현존재의 해석학’으로서 전개하였다.

 

가다머는 이러한 존재론적 해석학을 이해의 역사성과 결부시키면서 영향사이론을 정립하였다. 이해는 객관에 대한 주관적 과정, 즉 인식론적 과정이 아니라 학문 이전의 인간 현존재의 보편적 존재양식이라고 한다. 존재론적 과정인 이해를 그의 역사성에 있어서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철학적 해석학’의 과제이다. 따라서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방법론적 노력을 그의 철학적 해석학 과제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한다. 과학의 방법론은 진리로 이끄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경험을 오히려 제한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경험은 학문적 방법의 규제영역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플라톤의 변증법적 윤리학』, 1931

『헤겔의 변증법』, 1971

『과학의 시대에 있어서의 이성』, 1980

 

진리와 방법 1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저/이길우,이선관,임호일,한동원 공역
문학동네 | 2012년 10월

 

진리와 방법 2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저/임홍배 역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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