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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1월 11일은 영국 현충일입니다. 미국,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영연방의 현충일이기도 하지요. 아래 글은 제가 영국에 있을 때인 2009년 11월 11일 정리한 것입니다.

 

나는 지금 티를 마시며 베라 린Vera Lynn의 'The White Cliffs of Dover'를 듣는다. "도버의 화이트 클리프 너머에는 파랑새가 있을거야 (There'll be a bluebird over the White Cliffs of Dover)"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2차 대전 당시 영국 사람들이 가장 애창해 불렀던 곡이었다. 눈을 지긋이 감고 잠시 1915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 해 4월 22일 벨기에 플랑드르 이프러Flanders Ypres.
캐나다 1사단 병력은 생줄리앙St. Julien마을을 뒤로 하고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캐나다군 진영 쪽으로 정체불명의 녹색 가스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뿌린 최초의 독가스, 염소였다. 병사들은 영문을 모른 채 하나둘 쓰러져 나가고, 이 틈을 노린 독일군들이 야금야금 몰려오기 시작했다. 급히 기관총 부대가 뛰쳐 나가 독일군의 전진을 차단하는데 성공한다.

 

4월 24일 독일군은 또다시 염소가스를 뿌린다. 캐나다 병사들은 이번에 오줌으로 손수건을 적시고 있다가 코와 입을 틀어 막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공기보다 무거운 염소 가스는 꾸역꾸역 참호로 내려 앉았고, 들이마신 자들은 폐가 망가지고 눈뜬 자들은 눈이 멀기 시작했다. 참호 밖으로 뛰쳐 나가면 독일군의 총알이 날아 들었다. 전선이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이날 연합군은 전선으로부터 6km나 물러나야 했다. 독일군은 생줄리앙 마을을 차지한다.

 

전열을 가다듬은 연합군은 반격을 펼쳐 5월 3일 마침내 원래의 전선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이 때 사상자는 무려 6천명, 특히 캐나다 1사단의 피해가 심했다.

 

캐나다 군의관 존 맥클레이John McCrae(사진)는 이 전투에서 가까운 친구를 잃어 큰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는 죽은 자를 묻고 다친 자를 구호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한다. 잠시 소강 상태의 전선은 고요하기만 하고, 때마침 플랑드르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난 양귀비꽃이 눈에 들어 왔다. 아! 병사들이 흘린 피처럼, 너무나도 붉은 꽃이여!

 

  In Flanders Fields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We are the Dead. Short days ago
  We lived, felt dawn, saw sunset glow,
  Loved and were loved, and now we lie
  In Flanders fields.

  Take up our quarrel with the foe:
  To you from failing hands we throw
  The torch; be yours to hold it high.
  If ye break faith with us who die
  We shall not sleep, though poppies grow
  In Flanders fields.

 

  플랑드르의 들녘에 줄지어선 십자가 사이
  양귀비꽃이 피어나
  우리 자리를 말하네, 하늘 위로
  종달새가 지저귀며 날아 오르고
  저 아래로 희미한 총성 소리

  이제 우리는 죽은 자들
  엊그제도 우리는 살아 있었네
  새벽을 느끼고 석양을 맞았지
  사랑하고, 사랑받았건만, 이제 우리는 잠들어 있네
  이 플랑드르의 들녘에

  그대여, 우리 대신 적과 맞서 주오
  이제 당신 손에 드리니
  이 횃불을, 그대여 높이 치켜 들라
  만일 그대가 죽은 자들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잠들지 못하리니, 양귀비꽃이 피어나도
  이 플랑드르의 들녘에

 

이 시는 1915년 5월 3일 존이 야전 병원에서 쓴 것으로 같은 해 12월 8일 주간지 펀치punch에 게재되었다. 이 후 존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으니…. 마침내 제1차 세계 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종식을 고한다. 연합국과 주축국 양측 사망자가 1천만 명에 이르는 대전쟁Great War(1차 대전 별칭)이었다. 영국군도 100만명에 가까운 병사를 잃었다.

 

영국과 캐나다는 연합국의 승전일인 이 날을 현충일Remembrance day로 정하고, 11월 11일 11시 정각에 2분간의 묵념으로 고인들을 추모한다. 미국의 경우는 이와 달리 남북 전쟁이 끝난 때인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현충일Memorial day로 정하고 있고, 11월 11일은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기념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현충일은 4월 25일이다. 이 날은 두 나라가 1915년 영연방의 일원으로 연합군(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ANZAC)을 구성하여 오토만제국(현 터키)의 칼리폴리 반도Gallipoli peninsula에 처음 상륙하게 된 때이다. 그래서 그들은 현충일을 '연합군의 날(ANZAC's Day)'이라고 한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의 추모 방식에 약간 문제가 생겼다. 2분간의 묵념 시간에는 모든 공장 라인도 올스톱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무기와 군수품 생산공장까지 잠시 중단시켜야 했고, 재가동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묵념을 생략할 수도 없는 노릇.

 

이렇게 해서 찾은 대안이 11월 11일전 가까운 일요일로 묵념과 행사를 옮기는 것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이 날을 'Remembrance Sunday'라고 부른다. 영국에서는 '현충일요일'과 '현충일' 모두 공식적으로 묵념과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영국 현충일은 법정 공휴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충일 6월 6일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이는 24절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유래는 고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종 때 전장에서 죽은 장병들의 혼령을 달래주기 위해 손없는 길일을 골라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가 바로 망종으로 마침 햇보리가 나오는 절기이기도 했다. 1956년 현충일을 제정할 당시 망종이 6월 6일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현충일은 이 날이 되었다.

 

영국에선 매년 현충일요일이면 재향군인회Royal British Legion 주관으로 로얄알버트홀에서 성대한 전야제Festival of Remembrance가 펼쳐진다. 이 축제는 여왕도 참석하는 큰 행사로 웅장한 군악대와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져 볼거리도 풍성하다. 

 

올해 행사는 작년에 1차 대전 종전 90주년을 맞아 성대하게 치러지는 바람에 약간 축소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지난 7월 대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의 마지막 생존자 헨리 알링엄Henry Allingham옹(당시 113세, 아래 사진 왼쪽)과 해리 패취Harry Patch옹(당시 111세, 오른쪽)이 연이어 타계하면서 영국인들의 추모의 정은 더욱 애틋한 듯하다. (계속)

 

 

두 번째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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