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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1월 11일은 영국 현충일입니다. 미국,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영연방의 현충일이기도 하지요. 아래 글은 제가 영국에 있을 때인 2009년 11월 11일 정리한 것입니다.

 

11월 8일 현충일요일 행사Ceremony of Remembrance Sunday는 여왕을 비롯한 왕실과 수상 등 정치인, 재향군인 그리고 영연방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런던 화이트홀앞 충혼탑Cenotaph(그리스어로 ‘empty tomb')에서 거행되었다. 빅벤에서 11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2분간의 묵념에 이어 여왕의 헌화를 시작으로 추모식이 30분간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영연방 각국에서 온 재향군인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이날 찰즈 황태자는 여왕을 대표하여 캐나다 행사에 주빈으로 참석했기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전야제와 현충일요일 행사는 BBC방송과 BBC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다. 한편 11일 현충일 행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여왕 참석하에 진행된다.

 

영국 사람들은 10월 하순부터 11월 11일까지 가슴에 빨간 꽃을 단다. 바로 조화로 만든 양귀비꽃. 우리나라는 현충일에 흰 국화를 헌화하지만, 영연방과 미국에서는 붉은 양귀비꽃을 사용한다. 왜 그럴까?

 

▲ 2009년 현충일요일 행사에서 군악대의 퍼레이드 모습

 

양귀비는 고대 로마 때 수면(혹은 망각)과 죽음의 상징이었던 꽃이다. 아편 성분이 '깊은 잠'에 빠져 들게 하고, 붉은 꽃이 '붉은 피'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근데 양귀비꽃은 아편 때문에 재배하거나 다루는 것이 불법이지 않을까? 이는 흔히 잘못 알려진 것인데, 모든 양귀비에서 아편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헨양귀비와 목단양귀비 단 2종에서만 그렇다고 한다. 그 외는 관상용으로 얼마든지 재배가 가능하단다. 우리나라도 6월이면 곳곳에서 양귀비꽃축제가 열려 화려한 자태를 즐길 수 있다.

 

붉은 양귀비꽃이 추모화가 된 계기는 존 맥클레이의 시의 영향 때문이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데는 두 여성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영국재향군인회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력을 간략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미국 상이군인 재활학교 교사였던 모이나 마이클Moina Michael(사진 마이클 여사 추모 우표, 1948)은 존의 시를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재향군인을 돕는 활동에 적극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존이 묘사한 것처럼 붉은 양귀비 조화를 만들어 성금을 모으고 이를 재향군인회에 기부하는 등 활동을 넓혀 갔다. 마침내 미국에서 1920년부터 양귀비꽃이 추모화로 지정되었다. 

 

프랑스 꾸에린Guerin 여사는 양귀비 조화로 모은 성금으로 프랑스 재향군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 영국재향군인회장을 맡고 있던 헤이그 백작(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5성장군 출신)을 찾아가 성금 모금 활동에 동참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고, 이에 백작은 1921년 현충일부터 공식 추모화로 채택하는 등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이로부터 영국 사람들은 현충일을 일명 '양귀비꽃의 날(poppy day)'이라고 한다.

 

양귀비 조화는 당시 한쪽 팔이 없는 상이군인도 쉽게 부착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그래서 압핀 대신 바늘침이 사용되지만, 꽃받침 아래로 작은 지지대가 있어 쉽게 빠지지 않는다. 조화는 상이군인조합이 운영하는 리치몬드 공장에서 전량 생산되는데, 그 수는 3,800만개나 된다고 한다. 영국인 2명 중 1명 꼴로 달 수 있는 셈이다.

 

 

나는 가까운 마트에서 성의껏 기부하고 조화를 구했다. 아내는 남의 나라에 와서 왜 그걸 다냐고 핀잔을 주지만, 이 나라에 온 김에 이 나라 사람들처럼 살아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가 아니겠는가.

 

조화를 꽂고 윌쳐 카운슬에 출근하니 안젤라가 의외라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냥 살짝 웃어 보였다. 카운슬에 일보러 온 할아버지 한 분은 날 보더니 대견했는지 ‘파피 어필!’하면서 엄지를 치켜 세운다. 약간 어색하기도 하다.

 

11월 8일자 신문을 보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베스트셀러 10에 ‘왕립전쟁박물관’ Imperial War Museum의 가이드북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렇구나. 그 시대의 아픔을 아는 이들은 힘들었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이후 세대는 당시 모습을 통해 반전에 대한 교훈을 배우는 것일테지. 두 차례의 큰 전쟁을 무수한 희생 속에서도 끝내 승리한 자신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 자부심은 또 얼마나 클까.

 

나는 글래스고 시민궁전People's Palace과 에딘버러 국립스코틀랜드박물관National Museum of Scotland에 갔을 때 대전쟁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대전쟁 때 7,4000명 그리고 2차 대전 때 36,000명이 희생되었다고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는 2차 대전이 발발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영국 사람들은 그 때의 향수를 베라 린을 들으며 달래나 보다. 베라의 앨범 'We’ll Meet Again'이 올해 마트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녀는 2차 대전 때 군인들의 사기 앙양을 위한 문선대 가수였다. 베라의 노래를 통해 군인들은 고향에 돌아가 그리운 부모형제와 재회할 희망을 안고 싸웠고, 시민들은 나찌 대공습Blitz의 공포 속에서 삶을 위로할 수 있었다. 이에 여왕은 그녀에게 훈장과 기사 작위를 부여하여 은공에 보답했다고 한다(사진 베라의 앨범 'Remembers').

 

영국 최대의 클래식 향연인 프롬스Proms 대미에는 베라 린이 불렀던 ‘희망과 영광의 나라’Land of Hope and Glory가 울려 퍼진다. 국가Royal anthem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있는 이 곡은 지금 영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전쟁의 고통과 희생 속에서 지켜져 왔음을 잊지 않겠다는 국민적 의지의 표상이 아닐까.

 

 ▲ 2009년 프롬스 마지막 날 실황. '희망과 영광의 나라'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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