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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그 이후

[도서] 재난, 그 이후

셰리 핑크 저/박중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호흡기내과 전문의 닥터 존 틸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바쁜 외상 전문 병원인 공립 채리티 병원에서 배운 바가 있었다. 구급 요원 여러 명이 연이어 응급실로 들이닥치면 가장 위험한 환자를 맨 먼저 살펴야 했다.

이곳 메모리얼 병원에서 가장 많이 아픈 사람을 구조에서 맨 나중으로 우선순위를 매긴 것을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을 살릴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메모리얼의 의사들도 재난 대비 훈련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린가스 공격으로 수많은 환자가 한꺼번에 병원으로 몰려들 경우를 대비하는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틸이 의사로 일하는 동안 이렇게 비상 전력도 나가고, 수돗물도 끊어지고, 교통도 두절된 상태를 대비한 구체적인 훈련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지켜보고 체험하는 상황에 대한 대비는 그의 이력이나 교육에서 전혀 제공된 바가 없었다. 이제는 그의 능력 범위를 완전히 넘어선 상황이었다.“

2005년 8월 28일 일요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뉴올리언스 시장 레이 네이긴은 주민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했다. 호텔, 교도소 그리고 병원에는 예외로 해두었다. 당시 뉴올리언스에는 약 2500명의 입원 환자가 있었다. 지상에 자체 발전기를 둔 병원은 열댓 군데 가운데 오로지 두 군데뿐이었다.

▲2005년 당시 메모리얼 병원 내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


카트리나가 수그러들면서 거리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하 가운데 제방 한 곳이 터 지는 바람에 물이 도시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에도 물이 차올랐다.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서 지하에 있던 비상 발전기가 작동했다. 비상 발전기가 꺼지면 내부는 암흑 천지가 되고 모든 의료장비는 작동을 멈출 것이다.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는 집중치료실(ICU)에 52명, 신생아실 아기 약 20명, 고위험 임산부, 대여섯 명의 투석혼자, 골수 이식 환자 2명 등을 포함해서 거의 200명에 달하는 환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과연 이들을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의학전문기자 셰리 핑크


총 45명의 환자가 살아서 나가지 못했다. 루이지애나주 보건당국은 이중 23명의 시신에서 모르핀과 기타 약물 농도가 높게 나왔다고 발표했다. 최종적으로 20명이 의료인에 의해 사망했다고 결론지어졌다. 주 검찰은 당시 개입한 의사와 간호사 수 명을 체포했다.

의학전문기자 셰리 핑크(사진)는 카트리나가 닥쳤을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난 5일간의 르뽀를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과연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안락사시킬 것인가? 그 뜨거운 의료윤리의 현장! 그녀는 당시 상황을 규명한 심층 취재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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