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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민의 한양읽기 도성

[도서] 홍순민의 한양읽기 도성

홍순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아직도 도성을 낯설게 여기는 분들도 없지 않다. 관심을 가진 분들도 그 이해의 깊이는 그리 깊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도성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교양서가 적은 것도 한 원인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조선 태조는 13948월 새 도읍터를 살펴보러 친히 나섰다. 한양으로 결정한 태조는 그해 10월 천도를 단행하였고, 이듬해 12월 경복궁에 들었다.

한양 도성은 조선 임금의 존재를 알리고, 국가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는 시설물이다. ‘도성의 의미는 범위가 달리 정해진다. 가장 좁은 의미는 내사산(內四山)을 따라 쌓은 성곽이다. 내사산은 백악, 타락산, 인왕산, 목멱산을 말한다. 이에 반해 외사산은 북한산, 아차산, 덕양산, 관악산이다.

도성의 다음 의미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구역인 성 안을 가리킨다. 가장 넓은 의미로는 서울 전체를 가리킨다. 남과 서로는 한강변까지, 북으로는 북한산 자락까지, 동으로는 짧게 중랑천 변까지, 멀게는 아차산 자락까지 포함한다. 이 구역은 성 밖으로 대체로 10리라 하여 성저십리(城低十里)라고 불렸다.

 

도성도〉 《여지도》. 도성과 도성문들이 잘 표기되어 있다.

 

태조 대에 전국에서 백성들을 징발하여 도성을 쌓았다. 13959월 도성조축도감(都城造築都監)이 설치되고 정도전이 수장을 맡았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징발된 민정(民丁)의 수효는 118,070여 명에 이르렀다. 13961월에 쌓기 시작하여 13982월에 완공됐다.

도성은 종묘 및 궁궐과 함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건조물이다. 일제 강점기 때 세 건조물은 헐려나가거나 변형됐다. 특히 도성은 일제가 자신들의 뜻과 목적에 따라 바꾸고 비트는 주요 대상이었다. 해방 이후 여러 차례 재건과 발굴을 거쳐 많이 복구되거나 복원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도성은 온전치 못하다. 18.6킬로미터 가운데 13.1킬로미터만 사적에 포함되었고, 나머지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흔적만 남았다. 저자는 꼭 형태 재현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도성을 재구성하고 이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도성이 개발의 걸림돌이었다면 이제는 도성이 마을과 공생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락산 북쪽 기슭의 성벽 : 도성은 무너질 때마다 보수한 탓에 다양한 모양의 성돌이 쓰이게 됐다. 여장은 모두 근래에 새로 쌓은 것이나, 체성은 오른쪽은 세종 대, 왼쪽은 숙종 대, 가운데는 숙종 이후에 쌓은 부분으로 보인다.

 

내탁부 : 도성 여장의 안쪽이 바깥쪽에 비해 확연히 높다. 기어오르는 적군을 막기에 유리하였겠다.

 

저자 홍순민 교수는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최근 조선의 정치 중심지였던 한양이라는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그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이번 책을 기점으로 궁궐, 종묘 그리고 조선시대 서울의 모습을 연이어 낼 계획이라 하니 기대가 자못 크다.

이 책은 한양 도성의 축성과 수리, 재건 등 6백여 년 간의 역사적 변천을 짚어본 다음, 도성의 짜임새와 주요 구조물을 소개한다. 미려한 문체와 더불어 풍부한 옛 문헌과 기록, 지도와 사진 등을 곁들여 한양 도성의 맥락과 구조를 능준하게 되살렸다. 어느 햇볕 좋은 날 이 책을 벗 삼아 도성을 따라 순성(巡城) 길에 나서보면 어떨까.

마침 서울 지역 22개 성곽마을 주민들이 주민네트워크를 구성해 마을을 보전·관리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올해 6월 10∼17일 '성곽마을 주민 한마당 축제'도 열렸다.

한편 정부가 신청한 한양 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아쉽게도 올해 3월 불가 판정을 받았다. 우리가 도성을 오늘날 의미에 맞게 되살리고 잘 가꾼다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날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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