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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

[도서] 웃음소리

최인훈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나는 사랑한다.

그뿐이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노랫가락마따나 지은 죄란 그밖에는 없다. 누구를 사랑하려고 했는가? 무엇을 사랑하려고 했는가? 그렇게 물으면 안 된다. 그건 아주 창피한 물음이다. 그런 말을 물으면 못쓴다. 중요한 건 내가 분명히 사랑하려고 헀다는 사실 그 한 가지다. 참으로 중요한 얘기다. 그런 탓으로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 <수囚> 중에서 -

 

『웃음소리』는 최인훈의 단편집이고, 단편 중 하나를 책의 제목으로 정했다. 사실, 『웃음소리』의 내용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 하다. 그 깊이를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웃음소리』에서 느껴야 하는 것은 내용전개의 기발함이나 신선함 이런 게 아니라, 글이 전개될 때 묘사되는 그 느낌의 향기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췌한 몇 문장만 실어보기로 한다.

 

그러자 그녀는 그 짜증스러움이 밖으로부터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맞은편 자리로부터 오고 있었다. 이맛전이 희부연 그 남자는 담배 연기 사이로  그녀를 뜯어보고 있었다. 몸으로 알 수 있는 그 남자의 눈길은 뭐 하는 계집인지 안단 말야 하는 투의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이 들자 그것은 무거운 고단함을 떠맡겼다. 그러자 그녀는 거의 날래다고 해야 할 움직임으로 핸드백을 열었다 줄칼은 없었다. 그러자 그녀 앞에 요즈음 들어 처음으로 부피 있는 느낌이 - 아득하도록 깊은 구렁텅이가 빠끔히 아가리를 벌렸으나 곧 인색하게 아물어졌다.

- <웃음소리> 중에서

 

최인훈의 소설은 소설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다. 더더군다나, <광장> 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나는 이 소설집에서 책에 나온 해설을 참고하여 보자면 <사실>주의 작품 계열>과 <반사실주의 작품 계열>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편의상 분류일 뿐, 사실 깊게 따지고 보면, 분위기는 모두 다르고, 그래서 최인훈의 책들은 아직까지도 계속 판매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음미하고, 흐름을 따라서 다시 볼 만한 구절들이 꽤 들어 있다. 최인훈 전집도 있던데,전부 다 사볼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다. <광장> 스타일의 최인훈의 글은 별로 안 좋아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건데, 『웃음소리』를 보면서 이런 스타일의 분위기라면 줄 쳐 가면서, 나름대로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 읽어도 좋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 서평해야 할 책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아서 당분간은 최인훈의 소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올 거란 기대를 해 본다. 웃음소리의 결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까지 던져주면서, 내 삶에도 언젠가 신선한 충격 (물론, 좋은 쪽으로) 을 받게 되길 기대해 본다.

 

일주일을 더 묵고 그녀는 서울로 오는 열차를 탔다.

창가에 앉은 그녀는 가게에서 새로 산 줄칼로 골똘히 손톱을 다듬으면서 가끔 창밖을 내다본다.

올 때나 마찬가지로 창밖에서는 푸르게 더럽혀진 사막이 흘러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 속의 한 푼경을 보고 있었다. 어느 사보텐의 그늘 속에 한 쌍의 남녀가 가지런히 누워 있다. 남자는 그녀가 모르는 얼굴이다. 여자는 사보텐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사보텐의 가시의 저편에서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 손톱 다듬는 손이 저절로 멈춰지고 그녀는 홀린 듯이 그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주 귀에 익고 사무치는 목소리였다. 암암하게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웃음소리였다.

-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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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최인훈 작가님의 소설은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광장도 언제 읽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번 기회로 부러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한 획을 그은 소설가인데 말이죠

    2018.08.12 11:4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신통한다이어리

      그렇지요. 그런데 리뷰 대회는 오늘로 마감이네요~! ㅎㅎ. 리뷰 대회가 아니더라도, 최인훈의 작품집은 많이 나와 있으니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해요~ 저도 광장 빼고는 웃음소리가 처음이네요~

      2018.08.12 16:05
  • 호요

    저에게는 최인훈님이 어려운데요?? ㅎㅎ 이해력이 딸리는 걸로~
    신다님이 '웃음소리'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으셨다니 축하드려요~ 책을 읽다가 가끔 숨은 보물찾기 한 느낌이 드는 경우 괜히 신나잖아요~~ 신다님 신나셨겠당~~ㅎ ㅎ

    2018.09.01 16: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신통한다이어리

      음...저도 어려운데요? ㅎㅎㅎ...전, 책보다 이런 댓글이 더 신나용~. ㅋㅋ.. 신선한 댓글, 신선한 충격, 신선한 마음으로~ ㅎㅎㅎㅎ...................................

      2018.09.01 17:43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