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워낙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진 작품이라 지금은 원작보다 오히려 변주된 버전이 더 유명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 신의 저주를 받은 철저한 악의 화신 드라큘라와 빅토리아 시대의 지극히 모범적인 현숙한 여인 미나라는 설정을 뒤틀어, 두 캐릭터를 죽음도 초월한 운명의 사랑으로 만들어버린 변형은 이제 원작을 밀어내고 거의 『드라큘라』의 원형처럼 자리를 잡아 버렸죠. 이를 두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하면 브램 스토커로서는 좀 원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2013년 10월 25일부터 2014년 1월 24일까지 10개의 에피소드로 시즌 1을 끝냈던 미드 『드라큘라』의 경우도 이 변주된 버전에 속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저는 오히려 더 큰 부분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미드였다고 생각합니다. 원작과는 정말 동떨어지게도, 이 미드에서는 드라큘라 백작과 반 헬싱 교수가 동업을 하니까요.
( ※ 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
1881년 루마니아. 두 남자가 지하 깊이 숨겨진 납골당으로 들어옵니다. 말뚝에 꽂힌 시체들의 그림이 있는 관 주변을 살피던 한 남자는 관에서 금덩어리를 발견하고 흥분하지만, 다른 남자 - 반 헬싱 교수(토마스 크레취만)는 슬그머니 그의 뒤로 다가가 칼로 그를 찔러 피를 관 안으로 흘려주죠. 관에 뉘어진 시체로 그 피가 흘러들어가며 말라 비틀어진 시체에는 살이 붙습니다. 그렇게 되살아난 시체는 바로 드라큘라(조나단 리 마이어스). 그는 미국인 사업가 알렉산더 그레이슨으로 신분을 위장해 영국 런던의 카팩스 저택을 사들인 후 성대한 파티를 개최합니다.
런던의 재력가와 유명인사들이 대거 초대된 파티에 루시 웨스턴라(케이티 맥그래스) 역시 친구인 기자 조나단 하커(올리버 잭슨 코헨)와 그의 약혼녀 미나 머레이(제시카 드 구우)를 동행해 참석하구요. 이윽고 사람들 앞에 등장한 드라큘라는 조나단 옆에 서 있는 미나를 보자 놀라고 마는데, 몇백 년 전에 죽은 아내 일로나와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파티 참석자들에게 환영 멘트를 한 후 조용히 집사 렌필드(논소 아노지)에게 미나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지시합니다. 헤르 크루거와 동행한 제인 웨더비(빅토리아 스머핏)와 인사를 나눈 후, 클라이브 도슨 경, 데븐포트 경(로버트 바써스트), 로렌트 경(안소니 하웰) 등과 인사를 나눈 드라큘라는 특히 로렌트 경과 클라이브 도슨 경이 이사회 공동의장으로 있는 대영제국 냉각수 회사에 관심을 보입니다. 드라큘라가 추진 중인 과학 프로젝트에 필요한 기술의 특허권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대영제국의 특허권을 식민지 사람들에게 팔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립니다. 무색해진 드라큘라의 옆으로 다가와 클라이브 경의 도박중독에 대해 귀띔해주며 은근슬쩍 그에게 도움을 줄 뜻을 비친 조나단. 드라큘라는 막상 조나단보다는 미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렌필드는 조나단과 미나에 관한 정보를 드라큘라에게 귀띔해줍니다.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드라큘라는 사람들에게 ‘테크니컬 마블’이라는 자신의 시제품을 소개하는데, 지구 자기장을 동력원으로 한 에너지로 불을 밝히는 실험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데, 놀라운 것은 전구에 전선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단 거였죠. 다들 기적과 같은 현상에 놀라는 동안, 막상 지하실의 실험장에서는 기기의 냉각수 문제로 불이 붙어 시연은 이내 중단되고 맙니다. 놀라움과 흥분, 그리고 다소의 실망감을 남긴 채 파티가 끝나고, 클라이브 도슨 경은 드라큘라에게 사기꾼이라는 모욕을 주고 갑니다. 그리고 그날밤, 클라이브 도슨 경은 집 앞에서 잔혹하게 살해되고 마는데요...
첫회부터 빠른 전개로 눈길을 끌었던 미드 『드라큘라』는 역시 미드 『튜더스』에서 헨리 8세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타이틀 롤인 드라큘라 역을 맡아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역을 맡았던 토마스 크레취만이 이제껏 우리가 알던 뱀파이어 슬레이어와는 다른 모습의 반 헬싱 교수를 연기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시즌 1의 10개 에피소드로 막을 내리고 말았더랬죠. 미국 영화평점(imdb.com)에서 7.4점이었으니 평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8.1점의 『튜더스』보다는 낮지만, 『피어 더 워킹 데드』(『워킹 데드』 아니구요.)의 7.0점보다는 높은 점수)
▲ 반 헬싱 교수 역의 토마스 크레취만. 2012년작인 『드라큘라 3D』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했고, 케이블방송용 영화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도 맡았다니, 고딕공포영화 주인공을 섭렵한 셈이네요.
감히 추측컨대 반 헬싱 교수와 드라큘라 백작이 한 팀을 이루어 미스터리한 「용의 기사단」과 맞선다는 설정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게 어때서?’라고 하신다면, 그 「용의 기사단」이 실은 교회보다는 거대 석유자본과 연결된 집단이었거든요.(흠, 생각해보니 교회와 연결된 사악한 집단이라는 것도 문제의 소지는 되겠네요.) 자기장을 동력원으로 한 무한 청정에너지가 시장에 등장하는 순간, 석유자본은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 기를 쓰고 드라큘라의 과학 프로젝트를 훼방한다는 거죠. 그야말로 악의 축인 석유기업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게 아마 미국 드라마 시장의 스폰서(였을 수 있는) 대기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게 아닐까...라는 게 제멋대로의(=아님말고식 ^^;) 추측입니다.
반 헬싱 교수의 가족을 몰살하고 드라큘라의 아내를 화형시킨 용의 기사단이 신의 이름에 헌신적인 단체로 위장한 채 여러 악행을 이어가는 설정이라 드라마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점차 용의 기사단보다는 드라큘라-반 헬싱 교수 쪽에 마음이 가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희생과 음모가 제법 복잡해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던 드라마 『드라큘라』... 미나 머레이를 사이에 둔 조나단 하커와 드라큘라의 삼각관계 역시 어느 한쪽에 마음을 기울이기에는 상황이 간단치가 않았는데, 그 모든 상황의 클라이막스에서 대체 왜 시즌 2가 엎어졌는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방송사의 발표로는 시청률이 워낙 낮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왜 시청률이 낮았던 걸까요?
▲ 미나 머레이는 베들레헴 왕립병원장 윌리엄 머레이 박사의 딸로 의대생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의대생이라는 점이 이 드라마에서 나름의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 집사 렌필드가 흑인으로 설정된 것도 특이하죠. 하긴 드라큘라 백작이 미국인 사업가로 위장했으니 흑인 집사가 그럴듯하긴 합니다. 뱀파이어 슬레이어인 제인 웨더비의 경우 나름 한 카리스마하는 분위기에 액션씬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