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정말 오래된 영화죠. 방금 imdb.com을 찾아봤더니 무려 1956년작이랍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현충일 특집으로 이 영화를 TV에서 봤는데, 영화의 세부적인 장면들 대부분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연인과 재회했던 여주인공은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이상하게 그 굵은 빗줄기는 잊혀지지 않네요. 제가 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말이죠.
(※ 스포일러 “아주 많이” 있습니다!)
1942년, 뉴욕의 어느 사무실에서 일하는 루스 우드(제인 와이먼)는 비 내리는 저녁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다가 아더 휴게논(반 존슨)이라는 이등병을 만납니다. ‘아트’라는 애칭의 그 남자는 소심하고 수줍은 루스와는 달리 쾌활하고 넉살 좋은 군인으로, 처음 만난 사이인 루스의 집으로 자신을 초대해(정말 넉살 좋죠?) 루스의 어머니 아그네스(조세핀 허친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아그네스는 루스가 어렸을 때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편 해리(윌리엄 가간)이 떠나버리는 바람에 우울증에 걸려 루스가 돌봐드리는 상황이죠. 아버지 일에다 어머니의 우울증까지 겹쳐 루스는 별로 즐거운 일 없는 삶을 지내다가 아트를 만남으로 해서 인생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 아그네스(조세핀 허친슨)를 돌보느라 집과 직장만 오가던 딸 루스(제인 와이먼)
아트는 해리가 남겨놓은 악보에 가사를 붙여 피아노를 쳐 주기도 하고, 루스를 데리고 센트럴 파크나 「노르망디」라는 프랑스 식당에도 가는데요, 마침 이 프랑스 식당 「노르망디」는 루스의 아버지 해리가 손님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며 먹고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해리는 딸을 알아보긴 하지만 차마 딸 앞에 나서지는 못하고요.
▲ 왼쪽부터 그레이스(아일린 헤카트), 아트(반 존슨), 루스(제인 와이먼)
루스의 사무실 동료인 그레이스(아일린 헤카트)의 응원을 받으며 데이트를 하게 된 두 사람. 루스는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 얘기도 하고, 아버지의 악보를 아트에게 주기도 합니다. 어쩌다 들어간 경매장에서 옛 로마 동전을 낙찰받게 된 루스는 그 동전을 아트에게 선물하는데, 아트는 그 동전에 구멍을 뚫어 목에 걸고 다니며 늘 루스를 생각하겠다고 하죠. 아트는 뉴욕이 너무 좋다며, 전쟁이 끝나면 뉴욕으로 와서 뉴욕 타임즈의 기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꿈같이 행복했던 시간도 잠깐, 어느덧 아트의 부대가 파병될 시간이 다가왔고, 떠나기 전 아트는 루스에게 청혼을 합니다. 돌아오면 결혼하자며 어머니의 반지를 루스에게 건네고 떠난 아트.
첫키스를 나누고 헤어진 석 달 후, 그간 매일처럼 그에게 편지를 썼던 루스는 처음으로 아트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스포일러 주의! 반전이 있으므로, 혹 앞으로 영화를 보실 분은 클릭하지 마십시오!)
imdb.com에서는 ‘오 헨리의 소설스럽다(A fanciful, O. Henryesque tale)’는 표현을 썼는데, 실제 분위기가 좀 그렇죠? TV에서 이 흑백영화를 보았을 때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사춘기여서 지금도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하기는 하지만, 지금 21세기에 애들한테 이 영화를 보여주면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imdb.com의 평점이 1014명 투표에 7.2점이니 꽤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은 듭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차근차근 떠올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요.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이지만, 영화가 촬영된 때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라 1950년대 뉴욕 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구요, 주연배우인 제인 와이먼은 청순가련+순진형 여주인공을 도맡아 연기하던 배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4번 노미네이트되어 1회 수상한 이력이 있죠. 하지만 실제 사생활에서는 결혼을 다섯 번 했습니다.(세 번째 남편은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로널드 레이건...--;)
감독은 루돌프 마테(Rudolph Maté)인데, 이 감독이 1962년에 『300 스파르탄(The 300 Spartans)』이라는 영화를 찍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그 유명한 300이 사실은 이 감독 영화의 리메이크작이었다니... 다음에 언제 기회가 되면 300 스파르탄을 보고 리뷰를 올리고 싶은데, 문제는 1962년작을 어디서 구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