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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호라이즌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

개봉일 : 1997년 10월

폴 W.S. 앤더슨

영국, 미국 / 스릴러, SF, 공포 / 청소년 관람불가

1997제작 / 19971003 개봉

출연 : 캐슬린 퀸란,졸리 리처드슨,로렌스 피시번,샘 닐,리차드 T. 존스

내용 평점 4점

  “여름엔~♬ 아이스커피!”가 아니고, “여름엔~♬ 호러 무비!”죠.

 

  장맛비가 그치면서 시작된 무더위로 공포영화에 끌리던 차에, 얼마 전에 과학서적을 읽다 깨닫게 된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오래된 영화를 굳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우주선 이름이었던 「이벤트 호라이즌」에 대해 저는 각본 쓴 사람이 그냥 멋지게 들리라고 지은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천체물리학 용어였더라고요. 물론, 천체물리학 용어에 담긴 의미와, 영화 속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각본가가 멋지게 들리라고 차용한 게 맞는 거겠죠.(까마득한 우주 너머에서나, 혹은 블랙홀 경계면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빛을 통한 정보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관찰이 불가능한데요, 그 정도에 해당되는 먼 우주, 혹은 블랙홀의 중력권 경계면을 ‘이벤트 호라이즌’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니, ‘이벤트 호라이즌’대로라면 우리는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볼 수가 없는 거죠.)

 



(스포일러 경고 : 이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으니 언젠가 이 영화를 보실 분은 스크롤 내리기 전에 심사숙고하십시오.)

 

  (영화는 긴박한 느낌의 음악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화면 위로 제작진과 배우의 이름이 나온 뒤, 우주 식민지 개척사를 소개하면서 시작됩니다.) 서기 2015년 달에 첫 식민기지가 세워지고 2032년에는 화성에서 광물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2040년, 탐사선 「이벤트 호라이즌」 호가 태양계 탐사를 위해 발사되었으나 해왕성을 지나면서 사라져버려 최악의 우주선 참사로 기록된다는 자막이 나옵니다.

  그리고 2047년,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서 상처투성이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는 악몽을 꾸던 중 알람소리에 깬 위어 박사(샘 닐). 그는 사별한 부인 클레어(홀리 챈트)의 사진에 그리움을 담아 아침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 이 우주정거장 장면이 이 영화 시각 효과 예산의 1/3을 잡아먹었다고 하더군요.)

 

  체류하던 우주정거장 데이라이트 호에서 「루이스 & 클락」 호로 옮겨탄 그는 밀러 선장(로렌스 피시번)에게 감사인사를 하려 하지만 선장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듯이, 루이스 & 클락 호의 대원들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아무 것도 없는 해왕성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니까요.

  56일 후, 해왕성 가까이 온 루이스 & 클락 호의 중력탱크(=동면캡슐)에 있던 밀러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깨게 됩니다. 혼자 중력탱크 밖으로 나온 그는 목소리를 따라간 함교에서 클레어를 발견하고 반가워하지만 그도 잠시, 눈을 감고 있던 클레어가 눈을 뜨자 안구가 적출된 듯 텅빈 그녀의 눈을 보게 됩니다. 비명을 지르며 번쩍 눈을 뜬 그는 여전히 탱크 안에 있고, 밖으로 나와 쓰러지는 그를 대원들이 부축해주죠.

  잠시 후 브리핑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밀러 선장이 위어 박사에게 대원들을 소개하고, 부관인 스탁 중위(졸리 리차드슨), 기술 담당 저스틴(잭 노즈워디), 구조 요원 쿠퍼(리차드 T. 존스), 의료 장교 피터스(캐슬린 퀸란), 조종사 스미스(숀 퍼트위), 그리고 의무관 디제이(제이슨 아이작스)가 위어의 설명을 기다립니다. 여전히 감사인사부터 시작하려던 위어는 단도직입적으로 해명을 요구하는 밀러의 말에 극비임무를 공개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신호가 포착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이미 해왕성 부근에서 두 대의 구조선이 실종된 전례가 있던 터라 대원들은 즉각 반발하지만, 밀러는 위어에게 계속 설명하게 합니다. 위어는 시공간을 접어 차원의 문을 통과하는 초광속 이동에 대해 설명하고, 그렇게 이벤트 호라이즌 호가 프록시마 센타우리 항성계로 가는 차원의 문을 연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죠. 밀러는 사라진 7년간 이벤트 호라이즌 호가 어디에 있었을까 묻지만 그건 위어도 알 수 없는 지라 바로 그걸 조사하러 왔다고 대답합니다.

  위어가 들려준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신호는 신호라기보다 고통에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리는데요, 필터링시켜 분리해낸 소리를 들은 디제이가 ‘리베라테 메(Liberate me)’, 즉 ‘구해줘’라는 라틴어인 것 같다고 합니다.

  마침내 해왕성에 도착한 루이스 & 클락 호가 이벤트 호라이즌 호와의 도킹에 성공하자, 위어는 자신이 만든 우주선이니 꼭 함께 가겠다고 요구하지만, 밀러는 ‘안전이 먼저’라고 딱 잘라 거절하죠.

 

(▲ 도킹 장면에서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크기는 엄청난 스케일로 루이스 앤 클락 호를 압도합니다. 거대한 독수리 옆에 파리가 알짱대는 느낌 정도...^^;)

 

  저스틴, 피터스와 함께 밀러가 진입한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선내는 소지품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앞서 위어가 꾸었던 악몽과 거의 똑같습니다. 밀러는 의무실, 저스틴은 기관실, 그리고 피터스는 함교로 각기 흩어져 내부 수색에 나서는데요, 의무실은 사용한 적이 없는 듯 보이고, 기관실은 고기 가는 기계 내부처럼 보이는 나선형 소용돌이 터널 너머에 있으며, 함교에는 피와 부서진 뼈들이 벽면과 창에 붙어 있습니다.

  

(▲ 특히 기관실로 가는 통로는 보고 있기만 해도 어지럽고 다소 섬뜩하기도 한 기이한 디자인인데요, 실제 저게 기계설비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그냥 공포 유발 효과를 위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는...)

 

  위어가 지시한 항해 일지 장치를 꺼낸 피터스는 돌아서다가 눈이 사라져버린 사체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한편 저스틴은 기이한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송출 신호를 증강시키는데, 위어가 중력구동기라고 설명한 장치가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하더니 저스틴의 통신이 끊어져버립니다.

 

(▲ 중력구동기도 참 무시무시한 게, 성게처럼 뾰족뾰족한 가시돌기들이 꽂힌 디자인이라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었네요.)

 

  그리고 눈부신 빛을 뿜던 중력구동기가 멈추면서 암흑면이 드러나자 호기심에 저스틴은 그 면에 손을 집어넣어 탐색하다가 그만 안으로 끌려들어가 버리죠.

(▲ 빙글빙글 돌던 3개의 링이 나란히 합쳐지는 순간, 구가 사라지고 암흑면이 드러납니다.)

 

  급히 쿠퍼가 기관실을 향해 가지만 잠시 후 저스틴을 삼킨 암흑면에서 충격파가 발산되고 루이스 & 클락 호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결국 클락 호에 남아있던 대원들은 위어의 제안대로 이벤트 호라이즌 호로 옮겨 타게 되고, 암흑면에서 튀어나온 저스틴을 쿠퍼가 붙잡긴 했습니다만 저스틴은 의식불명 상태가 됩니다.

 

(▲ 그런데, 이 장면도 상당히 섬뜩한 게, 중력구동기 주변을 왜 이렇게 온통 뾰족한 창 모양 돌기들로 장식해놓았는지... 정말 기계공학적 의미가 아니라 영화를 위한 시각 효과적 디자인으로 꾸며놓은 티가 팍팍...)

 

  위어가 이벤트 호라이즌 호를 정상 가동시킨 동안, 스미스는 루이스 & 클락 호에 7m짜리 틈이 생겼음을 보고하구요. 함교의 벽면에 말라붙은 피와 살덩어리를 보며 밀러는 위어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를 묻지만 위어도 영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죠. 대원들은 클락 호를 수리하는 한편,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서 일어난 일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진작부터 클레어의 환영에 시달리던 위어 외에도, 다리를 못 쓰는 아들을 지구에 남겨놓고 임무에 투입된 피터스와, 과거 우주선 화재 사고로 대원을 잃었던 밀러 역시 이상한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자신이 만든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 점점 집착하며 떠나지 않으려는 위어, 생존자가 없음에도 생체 신호는 사방에서 감지되는 이벤트 호라이즌 호. 과연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고 밀러와 대원들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까요?...

 

 

 

  제작진은 아마도 우주 저 너머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지옥이 존재하고 그 곳의 악이 우주선에 씌어 일어난 무시무시한 사건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물론 악령에 씐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에 의해 잔혹하고도 공포스런 일이 자행되는 것은 굳이 우주까지 가지 않아도 이 지상을 배경으로 한 숱한 영화에서 그려졌더랬죠. 하지만, 달아날 곳 없는 폐쇄된 우주선 안에서의 사건은 또 나름대로 공포를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긴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지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우리는 대개 지옥을 ‘잘못 산 삶에 대한 댓가를 사후에 고통스럽게 받게 되는 곳‘이라고들 여깁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지옥 못지 않은 고통을 살아가는 동안에 겪는 분들도 있죠. 심지어 우리가 보기엔 썩 그렇게 잘못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보기에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지옥은 ’사후의 심판‘이라거나, 악령의 굿판이었다기보다는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광기와 악의 표출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사악한 악령의 짓으로 보이는 장면들이야 있었지만, 애초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대원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그들 자신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으니까요. 광대하고 어두운 우주의 심연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미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경건해지기도 하지만, 그 깊은 암흑에 극강의 공포를 느끼는 경우 미쳐버릴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미쳐버린 대원들 간에 광기의 살육과 고문이 자행되고, 그렇게 약육강식처럼 서로를 죽인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자가 아마도 피터스가 맞닥뜨린 눈 없는 시체가 아니었을까요? 그런 식의 광기는 항상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시험에 들게 만드는데 위어의 경우 그 약한 부분은 자신의 창조물인 이벤트 호라이즌 호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무관심에 상처받아 자살한 부인 클레어에 대한 죄책감이었죠. 환영을 보았던 또다른 인물 중 밀러는 우주선 화재 사고에서 구하지 못한 대원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고, 피터스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애잔함과,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데 대한 죄책감이 컸구요.

  물론 고통과 죄책감으로 시험에 들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위어는 결국 악에 사로잡히고 말았지만, 피터스는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결국 자신의 목숨을 잃었고, 밀러는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니까요. 비록 이 영화는 악령과 광기와 폭력의 장면들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영화였지만, 저는 밀러를 통해 악을 이기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사랑과 자기희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덧붙임 1) 앞부분을 보면서 세월의 간극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요...

  ① 영화에서는 ‘2015년 달 식민지 건설’이라지만 2020년이 6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에야 겨우 달 뒷면을 탐사했죠.

  ② 그리고 우리 뇌리에 기록된 최악의 우주선 참사는 1986년 1월 28일에 일어났던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사고 아닌가요? 발사 73초 후에 고체 연료 추진기 이상으로 폭발해 7명의 대원이 전원 사망했던 그 사고야말로 현재까지는 최악의 참사가 아닐까 합니다.

  ③ 태양계를 벗어나면 뭔가 심상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이 난리를 떨었지만, 실은 보이저 1호가 이미 2012년 8월에 태양권계면을 넘어 성간 우주에 진입했으니 영화에서의 설정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봐야겠네요.

 

덧붙임 2) 1997년작인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SF명작들이나 공포영화의 장면들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① 우선, 함교의 출입문을 미지의 존재가 요란하게 두드려대는 장면에서 저는 1956년작 『금단의 별(Forbidden Planet)』이 생각나더군요. 인류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 무의식을 증폭시키는 장치를 썼다가 그 무의식 이드의 폭력성에 의해 멸망했고 그 장치를 우주식민지를 건설한 지구인 과학자가 발견해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설정이었거든요. 물론 그와 비슷한 장면은 숱한 공포영화에서 써먹긴 했지만 말입니다.

  ②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폭력과 광기의 영상 장면에서 등장한 고문용 헬멧은 언뜻 봐서 영화 『헬레이저(Hellraiser)』를 연상시켰구요.

  ③ 그 외, 『에일리언』과 『스타게이트』의 몇몇 장면들도...

 

덧붙임 3) 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혹시 속편이 나온다면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앞부분, 즉 구명선으로 쓴 선수 부분이 배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만, 핵심인 중력구동기가 없으면 그냥 팥 없는 찐빵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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