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이나 앞부분만 보고 이런저런 상상으로 책 내용을 예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제게, 이 책 역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기는 했습니다. 오래 전에 봤던 일본 공포영화 『소용돌이』(사실 정확한 제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라...^^;)에서부터, 잃어버린 진화의 신세계를 다룬 『프래그먼트』, 그리고 나노테크놀러지,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된 생물학 병기 등등... 물론 이런 상상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하나둘 제거되고 소멸되어 책 내용에 맞게 정리되기는 하죠.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은 여러 가지 장르가 혼합된 소설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생물학적 병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병기’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전쟁과 첩보전이 가미되어 있고, 인류의 종말이라는 절망적인 위기 상황과, 과학자의 헌신이라는 희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서평들을 읽어보면 “숨 쉴 틈 없이 몰아친다”라든지, “과학을 적용한 부분에도 흠잡을 구석이 없다”라든지 “격렬한 감정과 생각할 거리로 점철된 소설” 등등 칭찬 일색인데, 솔직히 읽다가 쉽게 덮고 밀쳐놨다 다시 펼치고 했던 저로서는 별 감흥이 없네요.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어쩐지 이미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로빈 쿡의 작품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떨칠 수가 없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현 시국이 워낙 ‘숨 쉴 틈 없이 몰아치고’, ‘격렬한 국론 분열’이 이어지는데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극적인 뉴스들로 점철되다 보니, 예전같으면 흥미롭게 읽었을 SF소설마저 이젠 그리 흡입력이 없어서요. 그래도, 워렌 페이의 『프래그먼트』 이후, 오랜만에 마이클 크라이튼스러운 SF소설을 하나 건졌다는 생각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