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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의 서울생활

[도서] 태영호의 서울생활

태영호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책은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표지 그림을 보면, 오른쪽 위에는 남산 타워가 보이고, 테라스 앞에는 한강으로 보이는 물이 흐르며, 태영호 의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작은 원형 테이블을 앞에 두고 의자에서 뒤로 느긋하게 몸을 젖힌 채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도 고위층이었고 대한민국으로 와서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하는 운 좋은 분인 것도 같다. 물론, 이 모든 게 운으로만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책, 유튜브에 올라온 미국 정가에서의 활동 영상 등으로 그간의 치열한 노력과 긴박한 탈북 과정,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잘 알려져 있으니까.

  이번 책은 서울에서의 생활상을 북한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내용이 쉽게 와 닿고 재미있었다. 우선 첫 부분에서부터 공감이 되며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은, 평양에서의 생활과 서울 생활이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평양에 거주한다는 것은 나름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 인프라의 문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북한에 전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하루에 여러 번 정전이 되는 정도인 줄 알았지, 평양에서마저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한두 시간 정도씩만 전기가 공급된다니... 그리고 전기가 들어올 때에만 엘리베이터가 작동해서 15층을 매일 걸어서 오르내렸다는 얘기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에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겨울철 실내 평균 온도가 8~10℃이었다든지, 우리에겐 흔하디 흔해서 한라봉, 천혜향 정도의 타이틀이 붙지 않으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귤이 북한에서는 귀한 과일이었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신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보다 택시 기사가 더 선호되는 사윗감이라는 내용도 재미있었는데, 후반부 즈음에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을 인기순으로 꼽는다면 검사, 판사, 운전사, 의사, 변호사 순(p.198)이란 내용을 보니 오래 전에 김만철 씨 일가 11명이 탈북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뒤 사위로 운전기사를 맞으면서 ’북한에서는 의사 사위보다 더 낫다‘고 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김만철 씨 일가 탈북이 1987년의 일이었으니, 세월이 그리 흘렀어도 북한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아주 느리게 흐르거나 혹은 거의 정체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하긴, 2007년에 런던대사관과 만수대창작사 대표단이 김정일에게 말 안장을 ‘정성품’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데(p.210), 얼마 전 쌍방울 그룹 비리 사건 관련한 뉴스 중에, 김성태 전 회장이 김정은에게 에르메스에서 제작한 고급 말안장을 보냈다는 내용도 있었으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은 중세 왕정시대 그대로인지도...

  그럼에도 남북한 공통의 사안도 눈에 띄기는 했던 것이, 남자들이 분위기 전환용으로 애용하는 군대 얘기라든가, 북한 역시 출산율 저하로 2030년이 되면 입대할 젊은 남자가 확 줄어든다는 대목이었다. 다만, 군대에 관한 한 섬찟한 것은, 북한의 군 복무 기간이 현재 10년(!)에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예측, 그리고, ‘피스톤 부대’(대남 침투 간첩들을 안내해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는 부대, p40)에 관한 언급이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고 했던 정치인이 누구더라?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이 아니라 ‘간첩 10만 설(說)’이 믿어질 정도이지 않나?

  북한 실상을 나보다는 더 잘 알듯한 태영호 의원조차 너무 나이브한 게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남북 철도연결에 대한 제안(p.154)이었고, 책과는 별개로 얼마 전 국회 토론회에서 북한방송의 선제적 개방을 제안했던 일이다. 상호주의가 아닌, 우리만 호의/선의를 가지고 개방하는 것이 과연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태영호 의원 자신도, 책에서 동서독 통일 당시 김일성과 김정일이 동독의 실책을 분석하라고 외무성에 지시했을 때, 가장 큰 오류가 동독 정권이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만 잘 운영되면 주민이 서독 방송을 봐도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꼽지 않았나 말이다(p.216). 우리 국민의 수준이 높아서 북한방송을 보더라도 선전/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인 것 같다. 요즘 사회를 보면 곧 들통날 게 뻔한 거짓말로 선전/선동을 일삼는 유사언론, 그리고 그에 편승해서 ‘협업’하는 정치꾼, 그 거짓말을 퍼나르는 좌파들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 그에 북한의 선전/선동 매체까지 더 얹는 건 그야말로 근거없는 자신감, 국가 안보를 시험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눈길이 갔던 것은, 북한의 대학 입학 과정에 필요한 추천 서류 내용 중 가계표 부분이다. 이른바 ‘백두산 줄기, ’혁명가 유자녀‘, ’사회주의 애국열사가족‘으로 가산 점수를 받는 내용이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행태 아닌가? 2020년 8월, 공공의대 학생 선발안에 시민단체 관계자의 추천을 받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고, 올해 7월에 말이 많았던 ’민주 유공자 예우법’도 생각나는 부분이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다고 할 수 있는 북한.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분석 뿐 아니라 이렇게 진솔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통해 이해하는 방식도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웃으면서 읽고 그럼에도 진지하게 곱씹어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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