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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정신

[도서] 보수의 정신

러셀 커크 저/이재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엑셀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이것저것 목록을 만들어 정리해둔다. 당연히 2000년 이후로 산 책들은 모두 제목, 원제, 저자, 출판사, 장르 등등을 입력해 목록화해두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정치’부문으로 분류한 책을 얼마나 읽었으며 언제부터 사서 읽기 시작했나 필터링해서 정렬해보니, 어이없게도(?) 2019년부터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정치 관련 서적을 간간이 읽기야 했지만, 주로 선물받거나 추천으로 읽거나, 시사주간지 혹은 월간지를 통해 접했을 뿐, 내 돈을 들여 단행본을 주문해 사서 읽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조국 사태는 이 땅의 중도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던 것 같다.

 

  이 책은 원래 러셀 커크가 세인트앤드류스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한다. 언뜻 제목만 봐서는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과 비슷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책을 실제 집어 들었을 때 그 어마어마한 중량감에 먼저 압도되었다.(솔직히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이 책에 비하면 가벼운 수필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슬픈 열대』, 『문명과 전쟁』, 『유대인의 역사』 이후로 이처럼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은 오랜만이고, 한 번 읽었다고 해서 ‘독파’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의 책이다.

  책의 앞부분 -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와 ‘저자 서문’, 그리고 ‘역자 서문’까지 읽으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가슴은, 본문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차분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학위 논문이라기에는 너무 은유적이고 미려하면서 수사적인 기술로 점철된 문체 때문에 사상서보다는 고전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매 페이지 아래 부분에 매번 엄청난 수의 각주가 등장하는 바람에 어지러웠고, 서양 사상가들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 숱한 사상가들의 이름들조차 낯설 정도이니 그 이름이 의미하는 사상이나 인용 의도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저자인 러셀 커크와, 처음에 거론되는 에드먼드 버크에 대해, ‘커크’와 ‘버크’라는 글자 탓에 툭하면 헷갈리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배리 골드워터의 『보수주의자의 양심』을 읽었다면, 야심차게 도전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읽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그간 보수주의에 대해 막연하게, 혹은 정책 방향 위주로, 아니면 뭔가 확고부동한 형태로 정의하고자 했던 나 자신의 융통성 없는 보수주의 개념을 오히려 선명하고 활기차게, 그리고 포용적이면서도 종교적 믿음과 합치되는 쪽으로 이끌어 주었음은 명백하다. 다만, 다시 한 번 단언컨대, 한 번 읽었다고 ‘완독’과 ‘독파’를 거론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단숨에 읽기보다는 차분하게 느릿느릿 곱씹어가며, 그리고 번역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도를 음미해가며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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