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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즘은 가로수로 벚나무를 많이 심죠. 굳이 진해까지 가지 않아도 출퇴근하면서 벚꽃놀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라는 배려인가요...?

 처음엔 쌀쌀한 날씨에도 매화꽃이 여기저기 환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길바닥에 큰개불알풀도 ('큰'이란 글자랑 안 어울리게) 앙증맞은 보라색 꽃을 환하게 피웠습니다.

 

 며칠 전엔 목련꽃이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더니, 오늘은 마침내 벚꽃까지 피어버렸데요... 

 

 거리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 오면 늘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봄'하면 생각나는 좋은 책과 영화를 추천하라고 하니, 저도 그 영화를 추천해보려고요...

 

 해마다 길거리에 벚꽃의 하얀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계절이 오면, 저는 늘 '동사서독'을 떠올립니다. (극장은 못 가고) 비디오테이프로 대여해서 그 영화를 처음 본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가로수에 하얀 꽃이 만개하고 그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저는 그 영화를 생각하죠.

 

 물론 영화에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은 없습니다. 복사꽃이 피는 시절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 하나가 끼어있을 뿐... 하지만, 장국영, 장만옥, 양가휘, 임청하, 양조위, 유가령, 양채니, 장학우같은 쟁쟁한 스타들이 그려내는 그 여러 사연들 중에서 항상 봄과 맞물려 제 마음에 아련한 그리움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장국영과 장만옥의 어긋난 인연이었습니다. 

 

 장국영의 회상씬에서 아름답게 단장한 장만옥이 거울을 보는 깊고도 쓸쓸한 눈빛의 느낌은 봄날 햇살 찬란한 거리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걸 볼 때의 느낌과 기묘하게 일치하죠.

 

 장만옥은 먼 곳을 바라보는 공허한 시선으로 독백합니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어요’라고... 사랑하는 남자의 형과 결혼한 여자의 그 감춰진, 알 수 없는 마음... 그런데 그게 어이가 없다거나 불륜같은 느낌이라기보다 그저 쓸쓸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묻는 것같아요... ‘지금 거울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의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청춘시절, 당신이 가슴시리게 사랑했던 이는 당신을 그처럼 사랑해주었던가요?’...

 

 물론 그들만 그런 건 아니었죠.

 

 동쪽에서 늘 오기에 동사라는 별명을 가진 황약사. 그는 취생몽사라는 술을 마시면 지난 일을 잊어 번뇌가 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술에 취해 지난 일을 잊어버리고 새장을 쳐다보는 그의 눈길은, 술을 마시지 않은 구양봉보다 번뇌가 덜한 것같지 않아보입니다.

 

 그렇게 왕가위의 영화 - '동사서독'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상처(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던)들로 인해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유하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선을 어딘지도 모를 먼 곳에 두고 있지만 그들이 응시하고 있는 곳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죠. - 스스로 부여잡고 있는 과거의 상흔...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덧없는 봄날의 꿈을 보는 것같은, 혹은 지나가버린 청춘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같은 잔잔한 슬픔이 전신을 휘감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봄이 되면, 햇살 눈부신 거리마다 벚꽃이 찬란하게 꽃을 피우면, 그리고 봄날의 절정이 지나감을 알리듯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면,... 늘 그 영화가 생각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아, 글을 쓰다보니 다시 ‘동사서독’이 보고싶어지는군요. 주말입니다. 이제는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DVD로 ‘동사서독 리덕스’나 봐야겠습니다.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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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