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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

[도서] 해적판을 타고

윤고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마당이 있는 집. 예전 같으면 싫어했을 집이지만, 지금은 마당이 있는 집이면 더 좋겠다 싶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심고, 꽃향기가 좋은 나무들을 심고 봄, 여름이면 초록빛 물결을 이루는 그런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물론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고 텃밭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마당에 정체불명의 폐기물을 묻어놓은 이야기에 대해 리뷰를 쓰려다 갑자기 마당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채송화나 맨드라미, 라벤더 등을 심어 놓은 마당 한구석을 빌려준 유나의 이야기였다.

 

일곱 살, 네 살 동생이 있는 열두 살의 유나네 집. 아빠가 일하는 센터에서 마당을 빌려 지하 10미터 깊이에 컨테이너 하나를 묻었다. 동생이 애지중지 키웠던 채송화와 라벤더 등이 파헤쳐진 건 당연했다. 아빠는 토끼들을 묻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옆집 마티 할머니나 동네 사람들은 유해 폐기물일 거라고 생각한다. 유나는 전에도 아빠가 실험용 개 두 마리를 묻었던 기억이 있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었다.

 

폐기물을 묻은 후 커다란 슈퍼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와 햇볕에 말라 죽고 막냇 동생은 키가 자라지 않았다. 임시로 맡겨진 토끼의 주검들을 다시 되가져가길 바라지만, 처음 유해 폐기물을 마당에 묻자고 했던 소장은 센터를 그만두었고, 새로운 소장은 가져가겠다는 말만 하고 짓고 있다던 새로운 폐기물 처리장은 완공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유나 네는 센터에서 제공해 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사 가는 날 벽에 집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슈퍼 지렁이 그림을 그린다.

 

열다섯 살이 된 유나는 우연히 잘못 탄 버스 때문에 남자 친구 뒤뒤를 만나게 되고, 토끼 자루들이 들어있던 집 벽에 그린 지렁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유해 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했던 센터에서 더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된 아빠는 책임 전가를 하는 센터 쪽과  긴 싸움을 하게 하게 된다.   

 

세상엔 우리보다 더 큰 거인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개미를 내려다볼 때처럼 거인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우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죽어라 달려봤자, 거인이 볼 땐 겨우 한 뼘 정도 이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우리 마당이 그대로 실험실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거인이 우리 마당에 비소로 오염된 토끼를 넣어놓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게 아닐까. (79페이지)

 

 

 

해 폐기물 매립과 환경에 대한 무거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열다섯 살 유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소설은 무겁지 않다. 천진난만한 유나의 동생들 때문이었다. 어른들처럼 감추려고 하거나 책임 회피를 하려는 그들에게 일말의 쓴소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나가 자루 아저씨라고 불렀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해적판 어린 왕자 책 이야기도 소설의 다른 면을 부각시켰다. 세 아이들에게 각자 어린 왕자 한 권 씩을 선물해 주었었다. 아이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유나에게는 루 아저씨가 읽었던 해적판을 주었다. 다만 원래 책과는 다른 결말이 있었던 마지막 두 장이 찢어진 책이었다.

 

유나는 뒤뒤와 어린 왕자를 돌려 읽으며 해적판 어린 왕자 책을 찾으려 했다. 해적판의 결말이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루 아저씨는 왜 결말 부분 두 장을 찢었을까. 결말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었을까.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던 유해 폐기물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결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에겐 그 해적판이 고스란히 원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와 뒤뒤에게 그랬다.(203페이지)

 

우리는 이제 각자 마음에 구멍 하나를 뚫고, 저장고를 만들었다. 끌어 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그 안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물론 도로를 달리는 그 문장처럼, 모든 게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을 가능성은 늘 있다. (204페이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비루한 어른들의 모습을 다루었지만, 한편으로 유나의 성장 소설로도 읽혔다. 책을 많이 읽어 똑 부러진 말을 하는 아이들의 순수함 때문에도 유쾌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재난이 일어난 여행지를 설계했던 여행사 직원의 이야기였던  『밤의 여행자들』과는 또다른 면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집 마당에 유해 폐기물이 묻혀 있다면 이것 또한 또다른 재난 지역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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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연재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도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합니다. 폐기물 때문에, 청소년들의 의식 성장을 그리고 있는 글이라 여겼습니다. 언어들이 참 싱그럽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글입니다. 내용은 우중충했지만요. 고발의 의미도 있으리라.

    2017.12.01 10:2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전체 연재분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연재 글과 거의 비슷한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이 나오니 그런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2017.12.01 13:10
  • 두목원숭이

    저도 연재 읽던 기억이 나네요. 표지가 너무 맑은 색이라 처음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듯 합니다. 참 내용이 더 추가 되었던가요?
    블루님 리뷰를 보고 나니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

    2017.12.01 12: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표지가 너무 싱그럽죠?
      다 읽지는 못해서,,, 거의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만...
      얇은 분량이지만 제법 무거운 주제라서 열심히 읽었어요. ^^

      2017.12.01 13:11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주제는 다소 무거울 수 있으나 전개 방식은 그렇게 무겁지 않아 좋았어요.
    그래서 주인공이 청소년 아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성장소설로도 환경과 관련된 어른들의 침묵으로도..
    다양한 시선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어요

    2017.12.02 14:0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그래서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르지요.
      청소년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작품이었어요. ^^

      2017.12.0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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