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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낯섦

[도서] 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저/이난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때로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난후 돌이켜보면 그리운 법이다. 그 시절의 고통이 있었기에 현재가 있는 법.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임에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우리가 견뎌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도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되는 법. 우리는 지금도 미래의 역사를 쓰는지도 모른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소년.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자를 판다. 시골인 아나톨리아에서 도시인 이스탄불로 나와 낮에는 중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아버지를 따라 보자를 판매한다. 여기에서 보자란 기장으로 만든 술에 가까운 터키의 전통 음료다. 짙은 노란색을 띤 음료로 약간의 알코올이 가미되어 있다. 우리의 단술 정도라고 보면 될까. 1969년부터 2012년까지 약 사십 년 간의 이스탄불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거리를 누비는 노점상들. 소위 노동자 계층의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도 자기 집 한 칸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닮았다.

 

많은 부분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보자 장사치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오오자아아아~! 하고 외치는 소리는 우리의 과거와 닮았다. 찹쌀~떡!, 메밀~묵! 하고 외치던 소리 말이다. 때로는 집에 있는 손님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보자를 산다. 윗층에서 바구니를 내려 보내 보자를 사고 파는 모습은 정겹기까지 하다.

 

우리의 주인공 메블루트가 사촌 형 코르쿠트의 결혼식에서 형수인 웨디하의 여동생 중의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 반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수백 통의 편지를 쓴다. 코르쿠트의 동생 쉴레이만과 형수 웨디하의 도움으로 눈동자가 아름다운 '라이하'에게 3년간이나 편지를 썼다.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라이하와 도망치기로 했다. 일명 신부 납치. 터키에서 신부를 데려올때는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참금을 주어야 한다. 돈이 없는 메블루트는 라이하의 마음을 얻어 도망치기로 했던 것이다. 

 

신부의 아버지가 쫓아올지도 몰라 쉴레이만의 도움으로 트럭을 타고 도망쳤다. 도망친 신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던 메블루트는 번개가 칠때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가 자신이 그리워했던 그 소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 느꼈던 낯선 감정이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다.

 

지난 3년 간 편지를 썼던 소녀가 아내의 여동생이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메블루트는 라이하에게 자신의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를 평생을 함께 할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메블루트의 과거로, 이스탄불로 오게 되는 과정들을, 라이하와 함께 이스탄불의 격동의 현대사가 시작되었다.

 

 

 

소설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거리를 누비는 하찮은 보자 장수 임에도 메블루트는 누군가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그가 식당의 매니저로 일했을때 직원들을 감시해야 함에도 그들을 고자질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친구 페르하트가 전기검침원으로 일했을 때 불법으로 전기 쓰는 것을 봐주며 댓가를 챙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메블루트는 적발하지 않았다.

 

사람은 도시의 인파 속에서 외로울 수 있고, 도시를 도시이게 만드는 것도 어차피 군중 속에서 마음을 스치는 낯선 생각들을 감추는 데 있었다. (131페이지)

 

메블루트의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그의 주변 사람들은 돌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메블루트를 바라보는 감정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들을 그들의 이야기로 알 수 있다. 마치 독백처럼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터키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의 궁핍한 생활. 집을 짓고 나서 마을 이장에서 서류를 임시로 발급 받는 것하며, 그 증서가 곧 그들의 재산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 군부 쿠데타로 인해 서로를 적대시 했던 행동들. 도시화로 변해가는 이스탄불의 풍경은 재산을 다투는 모습까지 보인다.  

 

나뭇잎들이, 단어들이 말을 하며 움직였다. 마음의 의도와 말의 의도 사이에 놓인 다리는 물론 운명이었다. 사람은 어떤 의도를 두고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다. 운명은 이 두 가지를 합치할 수 있다. (중략) 하지만 마음의 언어와 말의 언어는 바람, 우연, 시간 같은 운명에 관련된 것들로 인해 실현된다. 라이하와 함께 발견한  행복은 메블루트의 인생에서 커다란 운명이었고, 그것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 (534페이지)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수많은 낯선 감정을 만나게 된다. 메블루트가 라이하를 처음 만났을 때 반했던 소녀가 아니었음을, 딸 아이가 태어났을때 라이하가 아이만 바라보았을때 느꼈던 질투라는 낯선 감정들처럼. 그럼에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테다. 두려웠던 감정들을 뒤로 하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표지속에서 보였던 지게를 짊어진 소년의 삶의 무게가 지쳐보인다. 그럼에도 미래를 향해 나아갔던 행복을 위한 발걸음이었다는 걸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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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파란자전거

    멋진 책 같네요. 우리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보입니다. 이야기를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에요...어떤 날에는 끝없이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파묻히고 싶은 데 그런 날 읽으면 좋은 책 같아보입니다...오르한 파묵과 이난아 번역가의 인연이 고맙게 느껴질...^^

    2017.12.10 21:2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이난아 번역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더라고요.
      이 책도 오르한 파묵의 책이기에 읽은 책인데, 한 소설 속에서 터키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

      2017.12.12 09:10
  • 파워블로그 언강이숨트는새벽

    아.. 어쩜 좋아요 . 그 미친듯한 그리움의 마음은 다 어디로 가고 ... 하지만 무작정 믿고 온 도둑신부도 어떤 자세가 있었을테니 함부로 내색도 못할 성질이겠네요 . 저라면 , 어땠을까요 . 제가 그 남자였다면 ... 마음에 구멍이 난것 같아 살면서도 힘들지 않았을까.. 또 아내는 늘 그 자리가 죄책감으로 얼룩이 안졌을까 .. 생각이 많아져요 . 직접 읽어보겠습니다~^^

    2017.12.11 01:2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신부를 데려오려면 막대한 지참금을 줘야 하거든요.
      한 눈에 반한 소녀를 공짜로, 사랑 하나로 도망치게 한 거죠.
      힘들게 살았다기 보다는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살았다는게 맞을 것 같아요. ^^

      2017.12.12 09:11
  • 파워블로그 뻑공

    그냥, 우리 사는 평범한 소시민을 상상하면 될까요?
    분위기는 낯설지 않은데 또 막상 이스탄불이라는 낯선 나라의 분위기는 잘 상상이 되지 않기도 해서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은 내일을 향해가는 우리가 오늘 살고 있는 모습인가 봅니다.
    보자? 이름이 특이한 술이네요. 마셔보고 싶다눈... ^^

    2017.12.11 13:5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블루

      평범한 소시민이라기 보다는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어요.
      기장으로 만들어 짙은 노란색을 띤 음료라네요.
      알코올 도수가 3% 정도 든... 어딘가의 노란색 유자 막걸리 색깔이라고 봐야 하나...
      저도 보자 맛이 궁금했어요. 지금은 터키에서도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2017.12.12 09:13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