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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저/공경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숙부가 모르는 것은 그가 뒤로 걷는 것이, 세상을 등지고 산을 등지고 뒤로 걷는 것이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반발하면서 걷는다. 인생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긴 마당에 반발 말고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책 22p 중에서)

 

 

 

'상실' :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은 그런 것이다.

태양은 여전히 뜨고 지며,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평범함을 유지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를 둘러싼 공기는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닌 것. 나를 기분 좋게, 행복하게 해 주던 그 느낌이 사라져버리는 것. 아무리 예행연습을 하려고 해도 결코 미리 경험하거나 철저히 준비할 수 없는 것.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진한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 그래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덩달아 잃어버린 사람들, 포근한 그 느낌을 잃어버리고 만 가여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공간, 곧 '집'과 같은 존재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작품 속 이야기의 제목에도 공통된 단어로 '집'이 들어간다.(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일주일 사이에 아내와 아들, 아버지의 죽음을 연달아 겪고 세상에 대한 반발심으로 똘똘 뭉친 채 뒤로 걸어다니는 토마스가 나온다.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하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고문헌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십자고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부검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교수는 1938년의 마지막 날 밤 사무실에 있다 아내 마리아와 이름이 같은 노부인의 예기치 못한 방문을 받는다. 가방에서 남편의 시신을 꺼내며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달라는 노부인의 요구는 당황스럽지만 교수는 그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상실감을 겪는 남자는 캐나다 오타와에 사는 상원의원 피터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무력감에 빠져 있던 피터는 미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만난 침팬지 오도와 함께 부모님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간다. 아들과 여동생이 있는 캐나다보다 낯선 포르투갈에서 오히려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피터에게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오랜 슬픔을 어루만져 주는 '집'이다.

 

독특해서 기억에 많이 남게 될 것 같은 작품이다. 우선, 세 이야기가 각각 분리돼 보이지만 이야기 속 다양한 장치를 통해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구성이 참 묘하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침팬지 등의 매개체가 첫 이야기 배경인 1904년부터 마지막 이야기의 배경인 1981년까지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또한 소설 속에서 고통스러운 상실감을 극복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독특하다. 뭔가 묘하게 이목을 끌면서도 약간 슬프고, 많이 기괴하다. 1900년대 초 자동차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즈음 사람들에게 주었을 문화 충격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은 일종의 코미디 영화인 것 같다가도 죽은 아내와 교감을 이루며 신비스러운 인체 해부를 감행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오싹한 스릴러 판타지 영화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제일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상실감을 극복하는 세 번쨰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소중하고도 행복한 순간이 더럭 하고 떠오를 때는 반대급부로 찾아오는 상실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의연하게 넘어가고 대처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단순하지만 인상적이다. 사랑을 또다른 사랑(?)으로 극복하는 형태는 상실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선택할 법한 자연스러운 애도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이 이야기>를 쓴 작가답게 얀 마텔은 이 작품에서도 인간과 동물,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그리고 종교에 대한 성찰 등 자신이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루고 있다. 너무도 이질적이라서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요소들이 얀 마텔의 소설 속에서는 잘 엉겨붙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안 어울릴 것 같은 소재를 읽고 싶게 만지고 조각해내는 힘. 작가의 브랜드 경쟁력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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