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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http://m.ch.yes24.com/Article/View/51401

<채널예스>에서 매주 수요일,
은희경 소설가의 사물에 얽힌 이야기 '은희경의 물건들'을 연재합니다.



요즈음 나는 거의 구두를 신지 않는다. 전에는 무조건 굽 높은 구두만 고집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하이힐을 신고 만리장성 사마대에 올랐던 사람이 바로 나다. 킬힐도 여러 켤레 갖고 있었다. 킬힐을 신어보니 높은 데는 공기가 다르다는 둥 스탠딩 공연장에서 처음으로 무대를 제대로 즐겼다는 둥 키가 큰 남자랑 대화가 수월하더라는 둥, 너스레를 떠는 산문을 쓴 적도 있다. 친구들이 나에게 '킬힐형 음주가무 장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던 시절이다.

구두 대신 운동화를 즐겨 신으면서부터 몇 가지 변화가 생겨났다. 우선 걷는 게 편해지면서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게 됐다. 스타킹 대신 면양말을 신으니 발 위생에도 좋았고. 하지만 운동화를 신어도 구둣주걱만은 변함없이 사용한다. 구둣주걱의 도움으로 신발 속으로 수월하게 발을 집어넣으며 나는 매번 감탄하곤 한다. 좁은 틈에 딱딱한 지지대를 집어넣어 공간을 늘리고 거기에 물건을 안정되게 위치시킨 다음 부드럽게 빠져나오는 도구.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그리고 그 기능에 적합한, 딱딱하면서도 탄력이 있고 휴대가 간편한 물건은 뼈와 살을 겸비한 우리의 손가락. 나 역시 오랫동안 신발 뒤축 쪽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뒤 앞부리로 바닥을 콕콕 찍어가며 다소 구차하게 신발 속에 발을 욱여넣어 왔다. 내가 문명인답게 구둣주걱이란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은 아마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난 덕분일 것이다. 

미국에서 2년을 지낼 때, 나는 차고나 앞마당에다 쓰던 물건을 내놓고 파는 가라지 세일에 자주 갔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춤추지 않을래?」에서 한 남자가 떠나 버린 여자와의 삶을 처분하기 위해 잔디밭에 물건을 내놓고 앉아 있던 그 가라지 세일. 나에게 그것은 물건을 사려는 목적 이전에 이국의 삶을 엿보는 방편이기도 했다. 

특히, 집 전체를 개방하는 에스테이트 세일은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었다. 죽은 노인의 집을 그 상태 그대로 대행 회사가 인계받아 누구든 들어와서 집주인이 생전에 쓰던 물건을 헐값에 사가도록 하는 그런 장소에 가보면 약병과 휠체어는 물론 앨범이나 편지뭉치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무로 만든 스키와 유대 촛대와 맞춤 양복점의 전화번호가 새겨진 무거운 옷걸이 등을 구경하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느 집에서인가 '1946년 사라, 결혼식에서'라고 적힌 구겨진 흑백 사진을 왠지 모르게 주머니에 넣었는데, 몇 년 뒤 그것이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이란 소설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의 구둣주걱도 그중 어느 집에서 5달러 정도에 산 물건이다. 길고 우아한 곡선, 견고한 손잡이와 부드럽게 말린 몸체의 탄력성, 바닥의 기능적인 날렵함, 매끄러운 촉감과 은은한 광택. 뒷면에 '핸드 메이드 인 스코틀랜드'라고 새겨진 그것은 무려 상아로 만들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상아색의 구둣주걱. 얼마 안 가 그것은 외출을 쾌적하게 하는 동시에 현관을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봄, 그 도시에 있는 동물원에 갔을 때였다. 그곳은 동물 우리가 없고 자연 상태 그대로의 야생동물들을 멀리서 관찰하는 동물원이었다. 재롱이나 먹이 주기 같은 이벤트는 당연히 없었다. 그때까지 내가 본 동물 중 가장 무시무시해 보였던 들개는 통유리가 설치된 실내에서 망원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본 것은 뜻밖에도 코끼리였다. 물론, 우리 안이 아니었고 사육사가 목욕시키는 장면을 우연히 지나가다가 통유리 창 너머로 본 것이었다. 호스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에 얼굴을 갖다 대며 장난을 치고, 한쪽 발을 번갈아 들어 올려 목욕에 협조하는 아기 코끼리의 귀여움이란.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내 구둣주걱이 본래 누구 몸의 일부였는지.

코끼리의 지능이 높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나나 농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에 종을 매달았더니 코끼리가 진흙으로 속을 메워놓아 소리가 안 들리게 해놓았다거나, 농장을 지키는 개에게 짐승뼈를 '뇌물'로 바치고 무사 통과하더라는 얘기까지 있다. 물론, '지능'이란 인간이 만든 기준이고, 야생동물을 남획하는 일과 코끼리의 지능이 높다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기억력이 뛰어나서 '코끼리는 잊지 않고 복수한다'는 케냐 코끼리 연구소의 보고서 제목은 다소 함축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간이 환경 파괴의 대가로 자연에게 보복을 당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다 보면 나는 신발을 신을 때마다 죄의식 속에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나의 상아 구둣주걱, 이대로 좋은가.

이대로 좋은 일은 결코 아니지만, 오늘도 나의 구둣주걱은 현관에서 내 외출을 돕고 배웅한다. 그나마 좋은 일이라면 그 구둣주걱에서 코끼리를 보듯이, 깃털 베개에서 오리를 보고 가죽 가방에서 들소를 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처럼 죽음과 죽임이 개입된 '잘못된 만남'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탓에 물건을 살 때 조금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조지 해리슨>에는 한 친구가 폴 매카트니에게 '환경주의자가 가죽점퍼를 입었어?'라고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자신의 점퍼를 새삼스럽게 내려다보는 폴 매카트니의 표정. 그 짧은 장면에서도 나는 내 현관에 걸려 있는 구둣주걱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혹은 남들이) 살아온 그대로 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편협하고 또 안이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다음 이야기는 '우산과 달력 선물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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