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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하늘

[도서] 세종의 하늘

정성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세종의 하늘> 완독.

다른 책을 읽느라 미처 다 읽지 못했던 <세종의 하늘>. 드디어 다 읽었다.

공교롭게도 어제 4월 8일이 세종대왕 517주기 (1450년 음 2월 17일 승하)를 맞는 날이었고 의미 있는 날에 이 책을 다 읽게 되어 사뭇 남다르다.

세종시대는 조선왕조가 신생 왕조의 틀에서 벗어나 많은 발전과 안정을 이루었던 시대였다. 물론 그 한계나 실책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전반적으로 조선의 기틀이 다져지고 또 발전과 안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특히 새 왕조의 안정을 위해 민생의 안정은 그 어느때보다 시급했고 이를 위한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하기 위한 노력은 세종뿐만이 아니고 그 이전과 이후의 왕들에게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 세종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더 구체적으로 농사직설이라는 농법의 제작과 보급, 천문 관측 기구와 각종 시계의 제작등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되었고 또 많은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특히 동양사회에서 천명을 받은 왕이 통치의 안정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세종은 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천문 관측 기구의 제작과 각종 시계의 제작에 적극적이었다. 더구나 시간, 날짜와 관련한 역법의 경우는 중국의 경우에 맞춘 것이다보니 우리의 것과 맞지 않아 일식이 일어났을 때 시간이 맞지 않아 예보관이 곤장을 맞는 일까지 벌어져 이런 폐단을 바로잡고자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세종의 천문과 과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천문관들에 대한 대우에서도 드러나는데 윤사웅의 경우가 특히 그러했고 그는 세종의 의도대로 꾸준히 천문 연구와 관측에 힘써 3품 벼슬까지 받았고 또 세종으로부터 어사주를 받으며 격려를 받았다고 할 정도니 세종의 인재를 보는 안목과 활용이 천문 과학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이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들 중에 이천, 장영실, 이순지, 김담 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천은 북극고도에 대한 세종의 질문에 잘 대답하여 세종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각종 천문 관측 기구의 제작과 연구에 참여했고 장영실은 두말할 필요없는 당대 최고의 천재 과학기술자였지만 세종대 후반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아쉬움을 주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세종이 탈 어연을 부실 제작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했던 이로서 장을 맞고 쫓겨났다는 등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설들은 모두 설일 뿐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아무튼 세종 시대는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조선이 발전하고 안정되었던 시기였지만 특히 천문이 중심이 된 조선의 과학기술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만큼 세종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그의 지원에 힘입은 많은 인재들의 활약으로 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음이 확인되는데 이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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