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귤밭에 묻은 풋풋한 우정
초록의 시간이 지나고 나무가 다채로운 색깔로 자신을 치장한다.
서귀포의 가을은 잘 익은 귤이 서귀포 마을 곳곳은 주홍빛 귤이 알알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풍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귤을 소재로 하는 문학작품이 발표됐다.『귤의 맛』은『82년생 김지영』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조남주 작가의 성장 소설이다. 제목이 주는 상큼함에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경기도 신영진구 신영진 중학교에 다니는 여중생 다윤, 소란, 해인, 은지 4명의 이야기다. 소설은 이들의 우정과 저마다 가슴에 담은 속사정을 차례로 풀어낸다.
중학교 1학년 때 영화 동아리에서 만나 축제를 준비하며 친해진 이들은 중2 겨울방학에 함께 여행을 온 제주도에서 귤 따기 체험을 했다. 넷 중에 성적이 가장 우수한 다윤은 1지망에 탈락한 학생들이 마지못해 가는 고등학교로 함께 진학하자는 제안을 해온다. 나머지 세 명의 친구들은 고민 끝에 지원율이 가장 낮고 학업 분위기도 좋지 않은 신영진고로 함께 진학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노트에 적은 후 타임캡슐에 담아 빵에 묻었다.
'귤밭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지는 먹느라 바빴다. 해인은 잡히는 대로 귤을 따서 바구니에 담으며 동시에 까먹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윤은 커다란 귤은 바구니에 넣고 작고 못생긴 귤들만 까먹고 소란은 동그랗고 먄들맨들 예쁜 귤만 골라 정성껏 꼭지를 잘라 바구니를 채웠다.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P.160~161 중에서
남쪽나라인 서귀포의 따뜻한 햇볕과 산들산들 한 바람 그리고 농부들의 정성으로 감귤나무에 끝까지 영양분을 채워준 노지 감귤밭에서 감귤따기 체험을 하는 4명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감귤 꽃을 피우고 녹음이 짙게 깔린 초록의 빛깔에서 탐스럽게 주홍빛으로 익은 감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노지 감귤을 떠올렸다.
새콤달콤한 상품 감귤이든지 꼬마 귤이든지, 못생기고 커다란 파치 귤이든지, 마트에서 구매했던 귤과는 달리 신선하고 청량한 감동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귤의 크기와 맛이 제작각이지만 각자 청량한 맛을 품은 것처럼 소설 속 네 명의 주인공들도 성적에 차이고 있고 개성이 제각각이지만 각자 자신을 믿고 더디게 영글어갈 것이다. 이들에게 자신만의 색깔과 맛이 한 가득 담긴 귤로 자라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평범한 중학교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 안을 들여다보면 같은 교실 안에 있지만 때로는 경쟁자이고, 그러면서도 서로 기대는 동료다.
소설은 모범생인 친구와 공부엔 큰 관심이 없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을 하는 친구, 부모 혹은 친구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의 일화와 감정선이 흐른다.
한껏 푸르러야 할 시기에 입시경쟁으로 드리워진 각자의 그늘을, 네 친구는 서로에 기대어 함께 넘어섰다. 어긋나다가도 어느새 새어나간 진심에 서로 보듬으며 우정은 단단해졌다. 타임워프를 타고 초록 빛깔을 품었던 시간을 경험했던 일들을 생각나게 해 힘겹게 읽어내게도 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며 읽어 내게 했다.
4명의 친구가 같은 고등학교에 갔을까? 궁금하다면, 주홍빛으로 탐스럽게 익은 과즙이 팡팡 터지는 새콤달콤한 서귀포 감귤을 먹으며 읽어 보라 권한다.
귤의맛/조남주/240쪽/문학동네/13,000원/2020년08월18일 출간
허지선(사서 출신의 시민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