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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

[도서]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저/홍성광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나이 들어 갈수록 순수 문학보다는 철학서적에 손이 간다. 철학적 명제를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늙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슬픈일인지도 아니면 기쁜일인지도 모르겠다. 니체를 처음 만났던 것은 대학을 다닐때 였다. 교양 필수로 꼭읽어야 하는 도서목록에 들어있어서 겉멋도 좀 부리고 교양도 좀 넓히자(?)는 목적에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그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뭔가 심오한 내용이긴 한데  이해가 되는 내용도  아니었고, 썩 마음에 와닿았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니체라는 사람의 발상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까지 내 머리에는 어려서부터  세뇌되었던 기독교로 꽉 차 있었다. 처음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예수일까라는 생각으로 읽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니체는 자신을 상징하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서 여로에 있는 것이다. 방랑기라고 할까? 그가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에서 그리고 철학적 , 정신적 방황을 통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방식이었다고 해야 맞는 것일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가 자주 비판의 대상으로 삼던 신과 신을 믿는 시람들에 대해, 그리고 초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외에는 끝없는 운명의 굴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은유와 서사시적인 구조 , 복잡한 의미들로 가득한 내용때문에 내가 내용을 제대로 잘 파악하면서 읽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니체 정도는 읽고 있는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뿌듯했었다. 정말 읽었다는데에 만족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도덕의 계보학]을 집어 들면서 오랫만에 니체를 만나 반가웠다. 멋모르고 읽었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대로 읽어보자는 다짐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성급했다. 나의 능력은 아직 니체를 깊이 이해할 정도로 여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 마저 들었다. 니체의 글은 은유도 많고 자꾸만 에둘러 표현하다보니 유럽신화나 기독교적 정서에 푹 젖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읽어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한참을 읽다가 '이게 뭘 말하는 거지?'하며 다시읽기를 반복하였다. 도덕의 계보를 따져가는 니체의 박식함(특히 어원을 찾아가는것과 종교적,역사적인면 )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래서 이사람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구나 싶었다. '선과악','좋음과 나쁨', '죄와 양심의 가책' 이라는게 다 지배자의 논리와 2000년 가까이 유럽인들을 지배한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것 아닌가? 거기서 성적,출세, 지위, 재산만을 따지며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지도,수용하지도 못하는 사회를 노예도덕의 소유자로 가득한 사회라는 것이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금욕적 이상이 인간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에는 인간 의지의 근본적인 사실, 그 의지가 홍허하다는공포가 표현되어 있다. 인간 의지에는 하나의 목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의지는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르를 의욕하려한다.-본문134쪽 

 

'금욕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읽으면서 바그너와의 관계를 미리 몰랐다면 참 한심한 사람이라여겼을 것이다. 같은 철학자도 아닌데 이렇게 자기 글에 실존인물을 실명을 거론하면서 헐뜯어도 될까싶을 정도였다. 니체의 눈에비친 바그너의 도덕이 노예도덕임을 강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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