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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노래

[도서]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가난한 사랑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입니다. 중3 때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그때 왜 그 시를 그렇게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와의 첫사랑은 국어 선생님으로 인해 아픔만 남았습니다. “너는 절대 시 낭송은 하지 마라” 이 말이 시와의 사랑을 파국으로 몬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래도록 시를 읽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너무 컸으니까요.

하지만 그 상처가 무색할 만큼 시간이 흘렀나 봅니다. 아니면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된 것인지도... 그 첫사랑 시와 어색한 만남을 가져 봅니다.

 

 

오래된 시집에는 시인의 소개도 시절을 말해 줍니다. 몇 년생, 무슨 무슨 학교 졸업, 시집으로 어떤 것들이 있다고 설명 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시집이 나온 80년대에 시인의 눈을 통해 보는 우리나라가 가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족의 아픔이 강물이 되고, 평야가 되어 이어지고, 사람들이 나무로 어우러져 크기를 키워 갑니다. 가난해서 아름다웠고, 간절했던 그 시를 가만가만 읽어 봅니다. 정성을 다해 썼을 시인의 젊은 날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시의 어느 부분이 아직 어린 날의 나를 흔들었는지 희미합니다. 다만 지금도 선명한 이미지로 남은 눈 쌓인 골목길의 새파랗게 쏟아지던 달빛이 어릴 적 살던 곳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루에 두 번 밖에 다니지 않던 버스에서 내려서 30분을 걸어야 했던 작은 동네였지요. 그때는 눈도 자주 오고 겨울이 유난히 춥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겨울밤 문을 열고 나오면 달빛이 꼭 시처럼 새파랗게 쏟아졌습니다. 새파랗게 쏟아진다는 표현에 선명해지는 이미지를 보며 시인의 표현에 감탄합니다. 별다를 것도 없는 낱말들인데 이런 느낌과 이미지를 전달하다니, 그래서 시인인가 봅니다. 가난해서 사랑을 버렸던 시대를 살지 않아도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머니 보고 싶은 마음과 고향집 감나무까지 그리운 마음은 타향살이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게 됩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상경으로 인한 그리움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그리움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버스비가 없어서 어머니 보고 싶다고 그리움만 키우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지금도 여전히 가난으로 인해 부모님을 그리워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들은 나날이 풍족해지고, 넘쳐 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랑 노래를 읽으며 이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것을 꿈꿔 봅니다. 하지만 시인의 탁월함으로 인해 아름답고 애틋함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감사합니다.

 

 

나무여, 큰 나무여

이 큰 나무를 키워온 것은

비와 햇빛만이 아니었다

뿌리를 타고 오르는

맑고 시원한 물지게만은 아니었다

뿌리를 몸통을 가지를 이루면서

얽히고설켜 서로 붙안고 뒹굴면서

때로는 종주 먹질 다툼질도 하는

수만 수십만의 숨결 있었으니,

비와 햇빛과 함께 물줄기와 함께

이 큰 나무를 키워온 것은

이 숨결이었다 이 뜨거움이었다. (나무여, 큰 나무여 중 1연)

지금 여기 우리 이 모습으로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이나 삶이 아닙니다. 보이게 삶을 주신 부모님부터 보이지 않게 나를 스쳐갔던 작은 만남까지 모두 얽히고설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잘났다고 혼자 고고한 척도 의미 없습니다. 내가 삶을 유지하기까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면 족합니다. 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귀한 마음. 늘 표시 나지 않게 섬기는 사람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 다른 이들의 필요를 챙기며 슬며시 피는 웃음꽃.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눈을 돌리면 산을 가득 메운 나무들처럼 우리도 서로 함께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며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을 통해 한 그루의 나무인 자신을 봅니다. 혼자서는 숲을 이룰 수 없고, 더 크게 자라지도 못하는 나무 같은 존재인 나를 봅니다. 이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뜨거움 숨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이 부르튼 손과 발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멍든 팔과 다리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깊은 산골짜기에 외진 섬마을에

환하게 밝혀진 불빛이 말하리니,

공장에서 광산에 부두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노래하리니,

이 부르튼 손과 발의 이야기를,

이 멍든 팔과 다리의 노래를. (늙은 전공의 노래 중 1연)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의 손을 유심히 봅니다.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남은 손을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 어머니의 고운 손을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은 마음에 울컥하는 심정이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어머니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나를 봅니다. 지금도 내가 우선이지만 어릴 때도 내가 우선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작고 거친 손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모를 심던 그 빠른 손이 싫었습니다. 예쁘지 않았으니까요. 문득 그때의 철없음이 생각나는 시입니다. 부르튼 손과 발이 부끄럽지 않다는 말이 내게 콕 박힙니다. 그 손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너무 쉽게 잊었습니다.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삶을 기꺼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부끄러워도 자랑도 하지 않는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내신 우리의 부모님께 가만히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때 그 사랑으로 우리 오늘까지 살아왔다고. 감사하다고.

 

 

시는 아름답지만 아픕니다.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비쳐서 더 아픕니다. 마치 과거는 없던 것처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뜨거운 숨결로 부르튼 손과 발로 살아낸 부모님들이 계시다고. 모든 것이 거저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온 시간에 망각을 더해 혼자만 잘난 줄 알았습니다.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을 시인은 시인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낸 것을 봅니다. 시를 통해 말하고 아파하고 위로하는 모습에서 사랑을 읽습니다. 혼자만 들끓는 짝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시인은 열심히 사랑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자연을, 나라를...

그 사랑으로 인해 시는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아름답다의 어원은 앓은 다음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때의 시를 당신에게 권합니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지난날을 온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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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소녀

    동그란세상님^^

    정말 시를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들이
    잔잔한 시가 되고, 음악이 되어
    한 편의 에세이 같은 좋은 리뷰를 올려주셨네요^^

    그리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역할과 소임에 충실해야 함에도
    교사의 말 한마디로 시를 멀리 하셨다는 글을 읽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훌륭한 시 감상을 올려주시니,
    역시나 동그란세상님의 문학적인 자질은 타고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집을 좋은 리뷰로 잘 감상하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일들만 가득한 멋진 하루 보내세요~동그란세상님^~^

    2022.07.12 10:5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동그란세상

      문학소녀님~~^^
      그때 저의 감정에 공감해 주시고, 공분을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요즘은 소녀님의 댓글보는 맛에 리뷰를 올리고 있지요. ㅎㅎ
      정성껏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누군가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지요.
      선생님은 학교에만 계시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말 좋아했던 시라 조금더 쉽게 써진것 같습니다. 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2022.07.12 17:02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