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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한 장처럼

[도서] 꽃잎 한 장처럼

이해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간혹 마음에 아름다운 것을 향한 갈망이 몸부림칠 때가 있다. 마음은 조급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그렇게 살지 못할지라도 마음만은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의 끌림으로 시집을 빌려 온다. 그것도 아름답다고 소문난 시집을...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사전 정보 없이 오롯이 만나보기로 한다. 내 마음에 옅은 봉숭아 물 같은 아름다움이 번지기를 소망하면서.

 

넓고 어진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클라우디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이해인 수녀님은 바닷가 수녀원의 글방에서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책날개에는 인자한 웃음을 머금은 수녀님의 사진이 있고, 첫 표지에는 꽃을 그린 수녀님의 사인이 인쇄되어 있다. 마치 읽은 독자 모두에게 선물하는 것처럼. 나태주의 시인의 추천사와 수녀님의 말이 이어지고, 꽃잎 하나, 둘로 나뉘어 시와 산문, 편지와 생활 속 메모라는 제목으로 짧은 일기도 소개되고 있다. 꽃잎 하나를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맑은 꽃향기가 맡아지는 시들 속으로 향기를 따라간다.

 

꽃잎 한 장처럼

살아갈수록/ 나에겐/ 사람들이/ 어여쁘게/ 사랑으로/ 걸어오네

 

아픈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걸어오는/ 그들의 얼굴을 때로는/ 모르는 채/ 숨고 싶은 순간들이 있네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 꽃잎 한 장의 무게로/ 꽃잎 한 장의 기도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오랫동안 알고 지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의 이름을

꽃잎으로 포개어/ 나는 들고 가리라/ 천국에까지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람들이 어여쁘게 사랑으로 다가온다니... 어여쁘다는 느낌, 하다못해 괜찮다는 느낌마저도 가물 가물가물한 나에게 한순간 켜지는 빛 같은 강렬함으로 다가오는 말. 어여쁘다. 뜻으로는 다 담아지지 않는 시인의 말. 어여쁜 사람 하나 가졌다면 인생이 아름다울 것이다. 시인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어여쁘다고 보고 느끼고 말하고 있지만 시인이 어여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어여쁜 마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포개어 천국까지 들고 간다는 다짐이 마음을 울린다. 그들 속에 나도 속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뭉게뭉게 피어나 시야를 가릴지라도 부럽다. 이런 마음으로 사랑으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는 그들이. 나를 위해 누군가는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지만. 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리라 다짐한다. 누군가를 사랑으로 품으며 꽃 잎 한 장의 기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기리라. 천국에까지 그 이름들을 가지고 가야겠다. 꽃 잎 한 장은 아주 가볍지만 천국까지 가지고 간다는 표현을 통해 그 기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 잎 한 장 조차도 새롭게 보게 되는 시가 되었다.

 

어떤 일기

어떤 일로/ 마음속에/ 화가 머물러/ 살짝 균형이/ 깨졌을 때도

 

온몸이/ 몹시/ 가렵거나/ 쓰라린 통증으로/ 집중이 안 될 때도/

무어라고 중얼중얼/ 푸념하기보단/ 나는 그냥/ 웃어보기로 한다

 

살아 있기에/ 아프기도 한 거야/ 다 지나갈 거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

 

스스로를/ 다 고이면서/ 평화를 부르니/ 아파도 슬퍼도/ 어느새 슬며시

반가운 얼굴로/ 평화가 온다

이런 시를 앞에 두고 지난 일기들을 쭈욱 떠올려 보니 누가 볼까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일기에는 다스리지 못한 마음들이 빼곡하게 쓰여있다. 누가 맘에 안 들고, 누가 어떤 말을 해서 마음이 상했고... 그 일기들이 부끄럽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웃어보라고. 시에서처럼 조금만 더 참고, 가만히 다독이면서 웃어 보라고. 내 마음의 평화를 타인의 손에 맞기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고통도 살아있음이라 감사하면 웃을 수 있겠지. 찌는 듯한 무더위를 식히는 비처럼 평화가 마음에 가득히 내려 채워 주기를 바라본다. 웃어야지.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히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360여 쪽에 해당하는 책에서 주제에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시이다. 말을 조심하고, 다스려서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오랜 숙제이자 수련처럼 느껴진다. 한편의 기도 같은 시를 읽으며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본다. 말을 더 겸손하고 향기롭게 하기 위해 침묵과 기도가 선행되어야 함을 읽는다. 말이 말로써 무게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침묵의 시간이 필수인 것 같다. 너무 많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다고 말이 향기롭지는 않을 것이다. 말에 대한 그 많은 주의와 경고들이 무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말에도 욕심과 이기심이 들어가 있는 것이겠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한 말들을 너무 많이 듣고 하고 살았다. 잠시 멈추어서 자신의 말에 대해 기도하듯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책은 어느 페이지, 어느 시를 읽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시에서 은은하게 맡아지는 향기를 따라 다 읽는 것이 아까울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희수를 맞은 시인이 주위의 사람들을 표시 나지 않기 위해 적은 실천 사항들을 보면서 경건함을 느꼈다. 이렇게 쉬운 말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이렇게 무게를 갖고 다가오는 생경함을 경험한다. 말과 글이 힘을 갖기 위해선 삶이 말이 되고 글이 되어야겠지. 시인은 평생을 자신이 말 한 대로, 글에 쓴 대로 살아온 느낌이다. 그래서 그 기도가 사랑이 꽃 잎 한 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무게와 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그 무게를 모두 감당할 그릇은 못되지만 마음에 작은 꽃물 하나는 들인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섬기며 기뻐하고 말을 아름답게 가꾸어 삶을 가꾸어 가는 것. 이상적인 삶을 모두 따라 살 수는 없지만, 그 다짐들을 품고 그 마음으로 내 삶을 보기로 한다.

읽는 동안 따뜻했고 행복했던 독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꽃 잎 한 장으로 보이는 놀라운 안경을 갖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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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소녀

    동그란세상님^^

    이해인 수녀님 시집을
    이렇게 좋은 리뷰로 이쁘게
    풀어주셨군요^^

    늘 꽃처럼 이쁜 마음으로,
    말과 글에 대한 묵직한 경종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좋은 시들은 세상의 밀알이 되어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어날 것 같습니다.^^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새론 한 주 내내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래요^^
    맛있는 저녁 드시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저녁 시간 보내세요~동그란세상님^~^

    2022.07.18 18:2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동그란세상

    문학 소녀님~~^^
    공통 분모처럼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공유해서 더 기쁘고
    감사해요~~^^
    제 글로는 다 담을 수 없어 며칠을 책 언저리에서
    서성거렸어요 ㅎㅎ
    다시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셔요 ~~^^

    2022.07.19 10:03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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