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저만치 혼자서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6월

 

짧은 소설 "영자" 중에서

저녁 여섯시 무렵에 노량진에서 시간은 시들었다. 

시간은 메말라서 푸석거렸고 반죽되지 않은 가루로 흩어졌다.

저녁이 흐르고 또 익어서 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말라죽은 자리를 어둠이 차지했다.

저녁 여섯시 무렵에는 시장기가 몸속에 번졌다.

저녁마다 시장하기는 했는데, 지나간 시장기는 기억 바닥에 매몰되어서 모든 시장기는 처음이었다.

몸이 시장하면 어둠의 가루들 속에 허기가 번져서 눈앞이 시장했다.

저녁의 시장기가 몸에 번지면 몸이 비어서 창자에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메말라서 푸석거리고 가루로 흩어지는 시간이 보이는 것 같다. 그 시간이 말라죽은 자리에 어둠이 내린다고 표현한다.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시장기를 표현한 부분도 사족을 붙이기 어렵게 멋지다. 글을 읽는 순간 그 시간이 느껴지고, 그 시장기가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느껴지는 시간과 시장기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기억되고 있을까?

그 시간이 말랑말랑하게 반죽되어 칼국수가 되고 수제비가 되는 저녁을 꿈꾼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