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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도서] 남해 금산

이성복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추천한 시집이었다. 무려 이 책의 모든 시를 필사하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그 궁금증으로 책을 사서 읽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늘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하고, 가벼운 존재감으로 가끔 시선만 붙잡던 시집을 기다림을 핑계로 읽어 본다.

남해 금산은 무슨 뜻일까? 시집의 제목을 찾는 것으로 책을 노크한다.

 

시인 이성복은 195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겨울에 시 <정든 유곽에서>를 계간 <문학과 지성>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등이 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후 6년 만에 묶은 시집이다. 전보다 깊고 따뜻하며, 더욱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뛰어난 시 세계를 보여준다. 1986년 7월에 초판이 발행되어 오늘까지 재판 25쇄를 찍은 시의 저력을 실제로 느껴보리라는 다부진 다짐과 함께 그의 조각난 삶과 서러운 일상의 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강변에 바닥에 돋는 풀

강변 바닥에 돋는 풀, 달리는 풀/ 미끄러지는 풀/ 사나운 꿈자리가 되고

능선 비탈을 나고 오르는 이름 모를 꽃들/ 고개 떨구고 힘겨워 조는 날,

 

길가에 차이는 코흘리개 아이들/ 시름없는 놀이에 겨워 먼 데를 쳐다볼 때

 

온다, 저기 온다/ 낡은 가구를 고물상에 넘기고/ 헐값으로 돌아온 네 엄마

빈 방티에 머리 베고 툇마루에 누우면,

 

부스럼처럼 피어나는 온 동네 꽃들/ 가난의 냄새는 코를 찔렀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잊히지 않던 한 단어는 선을 넘는다던 냄새였다. 함께 본 사람들은 그 부분을 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감춰질 수 없고 선을 지킬 수도 없는 그 가난의 냄새가 측은하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런 기억으로 인해 이 시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순서로 보면 이 시가 먼저이고, 영화가 나중이지만 영향력으로 인해 마치 그 순서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풀이 강변 바닥에 돋는다면 물이 말랐다는 말이겠지. 달리고 미끄러지며 풀은 의례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가난하고 가뭄이 심한 동네의 꽃들은 능선 비탈을 나고 오르며 피고 있다. 잠깐 조는 것이 아니라 힘겨워 조는 날 코흘리개 아이들의 놀이도 재미가 없고 지친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지쳐 놀이가 즐겁지도 재미있지도 않을 때쯤 어머니가 돌아오신다. 이제는 돈이 될 것도 거의 없는 집에 낡은 가구를 고물상에 헐값으로 넘기고 돌아온 어머니의 고단함이 빈 방티를 베고 눕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상도 사람인 나는 시에서 익숙하고 반가운 단어를 만난다. 방티... 고무로 된 방티. 표준어를 엄격하게 배우며 사투리에 괜한 열등감을 느끼던 나는 방티 같은 단어는 쓰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하고 작품성 있다는 시에 쓰이다니. 반갑고 기쁘다. 그 방티를 넘어서 문제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고 한다. 왜 가난한 동네는 꽃들도 부스럼처럼 피는지. 그러나 부스럼 같은 꽃이라도 피어서 그 가난의 냄새를 덮기도 하고 이기기도 했지 않을까?

어머니 1

가건물 신축 공사장 한편에 쌓인 각목 더미에서 자기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각목에 붙은 못을 빼는 여인은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여인이다 시커멓게 탄 광대뼈와 퍼질러앉은 엉덩이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으잖다 아직 바랜 핏자국이 수국꽃 더미로 피어오르는 오월. 나는 스무해 전 고향 뒷산의 키 큰 소나무 너머, 구름 너머로 차올라가는 그녀를 다시 본다 내가 그네를 높이 차올려 그녀를 따라잡으려 하면 그녀는 벌써 풀밭 위에 내려앉고 아직도 점심시간이 멀어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여인.

 

어머니

촛불과 안개꽃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흐리시면서,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친 아들의 손발에,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가끔씩 시를 읽으면 놀라게 된다. 단어와 단어들이 이어지는데 신기하게도 모습이 그려지고 마음이 느껴진다. 공사장 한편에서 자신의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못을 뽑는 여인. 그 여인이 어머니라고 한다. 가난한 시절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어머니는 여성이면서 남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간혹 공사장에 보조처럼 따라다니시는 여성분들을 본 적이 있다. 온전히 한 일꾼으로 남성이 하기에는 애매하고 소소한 일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여성분들이 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물론 남성 일꾼의 품삯을 다 받지 못한다. 그래도 일거리가 있는 것에 감사하고 열심히 일하던 우리의 어머니. 시인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가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머니라는 단어는 모두에게 눈물샘이 된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마지막 연의 마지막 부분. 아들의 손과 발,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라는 말에 울컥한다. 온갖 하소연들을 한쪽 귀를 흘리신다는 것은 자신에 관한 부분일 것 같다. 어머니 당신에 관한 모든 일들은 이렇게 한쪽 귀로 흘리시듯 하시지만 아들의 상처는 두고 볼 수 없는 어머니. 그 간절한 마음이 장도리로도 뽑아지지 않은 못을 뽑을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때로는 못을 뽑으시는 마음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라 생각된다. 어머니의 굳은 손과, 지친 뒷모습 뒤로 가을 하늘은 너무 푸르고 높다.

 

시인은 기억에 평화가 없다고 하고 격렬한 고통도 없이 날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고 말한다. 격렬한 고통도 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잡채 다발보다 미끄러운 약속된 땅의 삼십 년이라고 한다. 문득 손에 잡힐듯한 잡채 다발의 미끄러움이 연상되면서 탁월함을 느꼈다. 어느 시를 읽어도 시인의 탁월한 묘사와 감정들이 느껴진다. 물론 깊이 있게 다 이해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나만의 느낌으로 시를 읽는다. 정답을 찾으려고 들면 시를 읽을 수 없다. 그냥 시가 주는 느낌을 따라 아름다운 말들과 풍경들과 사람들과 사물들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시집 뒤에 설명된 시의 해석도 어렵다. 큰 줄기처럼 느낌으로만 가난과 어머니와 치욕 이 정도의 단어로 남았다. 그의 치욕을 몰랐고, 그의 가난을 몰랐으며 그의 어머니를 모른다. 하지만 시인의 시를 통해 나의 치욕을 떠올리고, 나의 가난을 돌아봤으며, 나의 어머니를 오래 생각했다. 느낌으로 알지만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과 현상들과 사물들을 기막히게 표현하는 시인이라는 사람들을 부러움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어령 선생은 예술가들을 날아다니는 앨버트로스에 비유했다. 하늘을 날아다니기에 땅에 내려오면 바보가 된다고. 예술가들은 반쪽 날개로라도 날아보려고 소설을 쓰고,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하는 자들이 예술가라고.

반쪽 날개로 날아보려고 애쓰는 시인의 시를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해를 넘어서는 느낌과 감동으로 온전히 느껴지는 시간이 되기를. 지식으로 이해로 재단하는 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끼고 읽는 시가 되기를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하지만 이해를 내려놓는 것은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는 건너야 할 넓은 강처럼 다가왔다. 그러니 한 번 더 읽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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