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도서관 갈 건데 뭐 좋은 책 없어?”
날마다 통화해서 안부를 챙기는 여동생에게 물었다. 여동생은 가끔씩은 소설도 읽은 게 좋지 않냐면서 <바깥은 여름>을 추천했다. 나보다 오래 깊이 있게 소설을 읽어 온 여동생의 추천이라 별 고민 없이 빌려 왔다. 여름 원피스를 입는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제목이 왜 바깥은 여름인지가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여름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서 기대하는 마음이 된다.
저자 김애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다. 수상 경력이 화려하게 책날개에 이어지고 있는데, 그 수상 경력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마음이 더 간다.
책은 모두 7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처음 시작은 입동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입동?? 겨울의 시작. 원피스를 입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여인을 따라 나도 문안으로 들어가 본다.
-미진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지그시 아내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글픈 비명을 질렀다.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십 년을 기다리다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잃었다. 부부는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오랫동안 이사를 다녔고, 이 집은 대출을 끼고 사서 아내가 혼자 리모델링을 한 집이었다. 아이를 잃고 아내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힘들어해서 시어머니가 집에 와서 집안 일과 아들과 며느리를 챙기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식탁 앞 벽에 복분자 진액이 폭발하여 얼룩을 남기는 부분이다. 무심한 것인지 실수인지 모르지만 아들이 없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추석 선물이라면서 복분자를 보내왔다. 남편은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게 치우려고 두었는데 그것이 벌써 2달 전이었다. 시어머니는 밤에 목이 말라 음료수인 줄 알고 열이었다가 그 음료수가 폭발하여 집안 곳곳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긴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아내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에서 화를 내고 말을 한다. 시어머니는 당황하고 무안해서 바로 다음날 내려가시고 집에는 또다시 아내와 남편만이 남았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들의 기억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아내의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라는 대사도 아이를 잃고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집을 사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아이와 남편과 함께 완벽한 집을 꿈꾸었던 아내에게 아들의 죽음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들의 죽음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거나 대사를 통해 표현하지 않는다. 에둘러서 아내의 행동이나 남편의 상황을 표현한다. 그것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와 그들의 고통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무심한 사람들과 일상적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무심결에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대체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향해 모르고 그랬다는 말을 많이 한다. 타인의 상처와 슬픔에 모른다는 것은 죄이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당당하게 드러내서 말하며 상처를 줄 일이 아니다. 소설을 통해 뉴스 속의 이야기가 실감되고 체험되는 경험을 한다. 마치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를 내가 가까이서 보는 것처럼 아픔이 느껴진다. 소설은 이런 힘이 있구나. 느끼게 되는 뛰어난 소설이었다.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했다. 찬성은 ‘구경이나 해볼 마음’으로 휴게소 전자용품 매장에 들렀다 액세서리 용품 진열대 앞에 한참 머물렀다. 그러곤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보호필름을 만지며 자기도 모르게 “사흘......” 하고 중얼댔다. 그러니까 사흘 정도는...... 에반이 기다려주지 않을까 하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찬성은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찬성을 돌보기 위해 휴게소에서 일을 하신다. 어린 찬성은 부모님의 사랑이나 돌봄을 거의 느껴보지 못한 채 혼자 외롭다. 가정 형편상 휴대폰도 없고, 그로 인해 친구들과 대화도 잘되지 않는다. 그런 찬성이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가 버려진 개 에반을 집으로 데려온다. 그 에반을 통해 찬성은 돌봄과 마음을 나누는 것들을 배워가고 에반의 형 노릇을 하던 어느 날 에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자신의 용돈을 털어 동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에반은 나이가 많고 암이 걸려서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의사는 에반의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안락사를 이야기하고 그 비용을 위해 찬성은 난생처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통해 안락사 비용 10만을 만들었다. 10만이 주머니에 들어오자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고, 돈을 쓰고 싶은 유혹이 시달리던 찬성은 에반을 데라고 동물 병원에 가지만 상중이라 일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이후로 조금씩 돈을 쓰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오늘은 자신의 중고 휴대폰에 액정보호 필름을 붙이는 장면이다. 그러면서도 사흘이면 에반이 버텨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의 마음이라기보다는 돈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쓰면 안 되나? 이게 조금 더 급하니까... 아니면 이게 꼭 하고 싶은데... 이런 망설임들과 유혹들에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실수하게 되는가?
찬성은 아픈 에반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도 처음 가져보는 휴대폰의 편리함과 자신의 것에 대한 욕망이 더 크게 일어났다. 하루하루를 잘 먹지도 못하고 고통 가운데 견디는 에반을 보면서도.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기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내가 우선인 것이다. 나의 욕구, 나의 희망, 내 필요, 내 아픔... 인간은 원래 그런 족속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아픔에 무디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생각과 마음을 매일 연습하고 배워야 한다. 내가 만약 찬성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해 봐도 쉽지 않다. 이후 에반은 찬성의 도움으로 안락사 할 수 있었을까?
이후로도 쉽지 않은 단편들이 이어진다. 문장은 날카롭기도 때론 주인공처럼 무기력하게도 이어진다. 공시생 연인의 이야기, 사라지는 말들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이야기, 시간강사의 이야기, 다문화 아이의 숨은 폭력성과 남편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어의 박물관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가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공시생 연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딸아이가 겹쳐지기도 했다. 인문학을 읽으면 자신의 감정을 깨닫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게 된다는 말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짧게 이어지는 단편들에서 그 주인공들이 강렬한 생명력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와 머릿속에서 자꾸만 튀어나왔다. 여름날 휴게소 모퉁이를 걷고 있는 찬성이와 에반이 보이는 것 같았고, 언어를 시연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외로운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소설을 왜 읽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소설이 허구일 뿐이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깊이 공감하는 마음과 시선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다가 짧기까지 하니 읽어 볼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