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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식탁

[도서] 사유 식탁

알랭 드 보통,인생학교 저/이용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밥상머리 교육이 한창 유행일 때가 있었다. 간혹 의욕이 넘치는 선생님들께서는 그날 아침 부모님과 밥상머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써오라고 하기도 하셨다. 의욕을 가지고 좋은 말들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늘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좋은 말보다는 늘 빨리빨리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고, 어쩌다가 여유가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시간을 그냥 보내기도 했다. 그런 기억들이 책을 보자 떠올랐다. 그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아쉬움을 접으며 알랭 드 보통의 사유 식탁으로 들어가 본다.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철학자. 1993년 첫 소설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발표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저작 활동과 함께 2008년부터는 인생 학교를 설립하고 학생을 가르치며 책을 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주축이 되어 만든 인생 학교는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모토 아래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 상파울루 등에 분교가 있다. 삶의 본질과 연결된 다양한 질문을 묻고 토론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식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레시피가 책의 대부분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확장하는 1장은 서문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2장부터는 본격적인 레시피가 나온다. 음식의 재료들을 좋은 개인의 덕목으로 비유하여 요리법과 함께 실려 있고, 이후에는 자신을 돌보는 레시피, 친구들과 함께하는 요리, 여러 관계에 어울리는 요리들과 자신을 즐기는 요리가 실려 있다. 3장은 음식만큼이나 중요한 대화에 대해서 싣고 있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음식과 낯선 이방의 식탁으로 살며시 가서 앉는다.

 

식재료와 요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고, 어떻게 현재의 문제에 직면할 태도를 갖추도록 돕는지를, 음식이야말로 생각을 떠올리거나 저장하고, 추억을 전달하는 방식으로서 우리 삶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p15)

이 책의 주요 목적 정도 되겠다. 음식이 단순한 음식이 아님을. 먹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음식이 어떤 의미 인지를 생각해 본다. 저자의 탁월한 비유와 폭넓은 사유를 다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음식에 대한 나만의 의미는 있지 않을까? 음식을 먹으면서 언제 행복했었나를 기억해 본다. 많은 것들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산골의 식사는 늘 초라하고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채워주던 감자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김과 함께 살아난다. 동생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별말 없이도 웃음으로 채웠던 시간들이 흑백영화처럼 느리게 지나간다. 그 감자로 우린 놀이를 이어갈 힘을 얻었고, 나눠먹는 즐거움을 알았다. 손가락이 문고리에 쩍쩍 붙던 겨울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몽글몽글한 순두부는 음식이 아니라 풍경이다. 그 겨울의 한옥 집과 동생들과 추위와 어머니의 분주한 몸놀림으로 기억되는 풍경. 그 풍경으로 오늘을 버티고 견디며 사는 것인지도.


 

우리는 작으면서도 광활하고, 복잡하고도 단순하며, 매우 괴상하면서도 독특하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일은 결국 올 것이고, 우리는 이번에도 능히 대처할 것이다.(p145)

우리 자신 돌보기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레시피 중의 하나다. 이 설명으로 무슨 레시피인지 알 수 있을까? 조금 더 힌트를 주면 내일이 힘든 날이 될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레시피다. 무엇일까? 레몬 생강차의 레시피와 함께 실린 글이다. 이 책의 큰 특징 중 하나. 레시피 하나에 글 하나이다. 요리법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실린 글을 읽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혹은 깨달음이. 함께 실린 그림도 아름답게 어울린다.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 요리법 중 하나는 정말 해봐야겠다고 다짐했고, 가장 무난하고 쉬운 것을 찾았다. 바로 레몬 생강차. 마침 아침저녁 일교차가 큰 환절기다 보니 딱 맞는 레시피다. 그 레시피에 어울리는 작가의 격려의 말. 우리는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지만 결국은 내일의 일을 능히 대처할 것이다. 그렇다. 이 간단한 차를 만들면서 자신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 분주하고 바쁘지만 결국은 주어진 일들을 다 해낼 자신을 믿는다. 향긋한 레몬향과 톡 쏘는 생강처럼 일들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할지라도 능히 대처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작고 광활하고 복잡한 나는. 심지어 괴상하기까지 한 나는.

 

앞으로 우리는 음식과 대화 메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식사에 임해야 한다.(p354)

마지막 장 대화에 나오는 말이다. 대화를 마지막 장에 서술하면서 전체 요리가 나오듯 대화도 코스에 따라 배열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저자는 책에서 자주 말한다. 음식에는 많은 신경을 쓰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서 왜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느냐고.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다. 음식을 맛있게 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쓰면서도 대화를 한쪽으로 너무 밀어 두었다. 대화는 약간의 양념이 아니다. 대화 자체가 음식과 함께 주메뉴인 것이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어우러지는 대화는 저자의 말처럼 식탁을 단순한 식탁 이상으로 만든다. 바로 사유 식탁이다. 어떤 대화들이 감정들이 음식과 함께 나누어지고, 기억되는지도 중요한 것이다. 대화들도 음식을 준비하는 심정과 정성으로 상대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상대를 향한 질문과 배려들이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그날의 일들이나 자신의 과시를 위한 대화는 아무리 근사한 식탁이라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음식은 혼자 먹기 위해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배려와 섬김이 대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대화와 음식을 통해 자신의 약점이 부끄럽지 않게 되고, 짝사랑이 치유되기도 하며, 미루 두었던 일들을 해낼 용기를 얻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다. 음식이 단순히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서서 이제는 사유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맛깔난 음식 사진을 원하는 것처럼 빛나고 사랑이 있는 대화도 준비하자. 상대를 향한 마음을 온전히 보여 줄 수 있는.

 

책에는 132가지의 레시피가 나온다.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적재적소의 음식들이 더 행복감을 더해준다. 간혹 이어지는 맛깔스러운 사진과 그림, 주제별로 색깔이 다른 종이까지 이 책은 볼거리가 많다. 단순히 볼거리가 많은 것이 아니고 무심하듯 툭툭 던지는 말들이 생각을 자극한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요리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우정을 생각하며, 우울을 달래고, 자신이 싫어질 때도 견디는 힘을 얻는다는 것을.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의 중요성도 새롭게 배운다. 낯설고 생소한 이국의 요리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먹어 보고 싶다는 의욕이 일어난다. 레시피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과 수량들을 검색한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식재료와 양념들이 우리에게는 맘먹고준비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도 요리를 좀 더 즐겁게, 행복하게 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또 책에 실린 대로 대화를 전체 요리처럼 구성하여 해보는 것도 시도해 봐야겠다. 밑줄과 색인들이 책의 색깔과 어울려 숲을 이룬다. 많은 부분 밑줄을 그었고, 감탄했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음식을 향을 맡듯이 책을 읽었다. 정갈한 음식 사진에서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느낌이 들고, 향기롭고 감미로운 음식 향이 코를 자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색다른 요리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모르거나 관계가 어려울 때 저자의 레시피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리가 힘겨움이나 지겨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완전한 사랑임을 깨닫는 선물을 줄 것이다. 그의 사유 식탁에 당신을 초대한다. 당신은 열린 마음과 미소만 가지고 오면 된다. 모든 것은 우리가 준비할 테니.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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