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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도서] 우신예찬

에라스무스 저/박문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고전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선택한 책이다. 표지의 강렬한 그림도 흥미를 유발했다. 고전의 기역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책이 도착하자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읽으면 이해하겠지 생각하고 흐뭇하게 웃어본다.



 

네덜란드 출신의 사상가이자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는 21세에 아우그스티누스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했다. 5년 후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리스 고전을 섭렵하며 비판적인 지성과 글쓰기 능력을 키웠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무어를 비롯한 영국의 인문주의자들과 깊은 교류를 나누었다. 이후 부패한 가톨릭교회와 어리석은 현자들의 위선을 풍자한 <우신예찬>을 출간하면서 종교개혁의 불을 댕기는 역할을 한다.

라틴어 원전을 완역하여 풍부한 주석으로 읽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주석의 수가 400개가 넘으며 우신의 연설체가 돋보이는 문장으로 실려 있다. 원문에서는 제목이 붙어 있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제목에 붙어 있어 흐름과 내용을 요약하고 이해하기 편하게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우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상적인 사회 현상과 가톨릭 사제와 재판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가 실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기득권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우신의 현명하듯 우매한 연설에 집중해 본다. 그 연설의 앞자리는 내 자리다! 의욕을 갖고 시작했으나, 끝까지 갈수 있을까?

 

또한 이국적이며 참신한 요소가 부족하다 싶으면 케케묵은 옛 책들에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 네댓 개를 가져와 독자들의 눈앞에 알 수 없는 연막을 펼쳐놓습니다. 이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가 어려운 것도 해독할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느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 대단한 글을 쓴 저자에게 더 큰 존경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지요.(p27)

어리석음의 신인 우신이 대중 연설가들의 위선을 꼬집으며 하는 말이다. 간혹 뉴스나 정치인들, 학자들이 하는 말들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쉬운 말이 분명 있을 텐데도 어려운 단어를 쓰거나 그들만 아는 단어, 혹은 외래어를 써서 자신이 뛰어남을 은근히 과시한다. 우신의 말처럼 이해하는 사람은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에 대해 약간의 지적 우월함을 느끼게 만든다. 인간의 본성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자신의 우월함을 끊임없이 드러내려고 한다. 그 우월함이 낮아지려고 할 때 소위 말하는 전문용어를 쓴다. 전문용어를 쓰면 단번에 자신의 위치를 높여 놓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말과 문장을 쓰는 것이 더 우월한 것이지만 늘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대중 연설가들의 위선도 그렇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법관들도 마찬가지다. 법률 용어는 정말 한글로만 되어 있을 뿐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 분명 다른 나라말은 아니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왜 그런 말을 써야 하는가? 그 말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인가? 마치 가톨릭 사제들만이 성경을 읽었던 중세처럼.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위선들과 권력 유지를 위한 은밀한 통제들을 본다. 혹시 우신이 지금도 현명하게 끊임없이 활동하기 때문인가?

 

요컨대 옛적에 메니 포스(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철학자이자 풍자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달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펼치는 소동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파리나 각다귀떼가 자기들끼리 다투고, 싸우고, 속이고, 약탈하고, 조롱하고, 난장판을 벌이며, 태어나 늙고 죽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너무나 하찮고 얼마 살지도 못하는 비천한 미물들이 이토록 엄청난 소통과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p150)

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답게 책의 곳곳에서는 신학적인 관점이 흐른다. 위의 본문도 달에서 보는 것을 말하지만 읽으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싶어서 몸살이 나던 시기가 있었다. 일등이 되지 못한 다면 최소한 저 사람보다는 한발이라도 앞 서고 싶었던 욕심으로 마음이 힘들었던 때. 누군가 내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보시면 우리는 모두 개미 같지 않을까요? 그 개미 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나고 싶어서 아웅 다웅해봐야 개미일 텐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랬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개미보다 못한 나 일수 있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그때 생각과 관점의 변화는 내 안에 갇혀 있던 좁은 생각과 시야를 넓혀주었다. 그때의 일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나를 다잡는 문장이 되었다. 그렇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인간은 하찮고 비천한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하찮음으로 비극을 만들지 말고 희극과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자. 그러기에도 짧은 인생이지 않은가?

 

그들 중 대다수는 기껏해야 자신들이 정한 규율과 인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쓸 뿐인데도, 그들의 공로에 대한 상으로 천국 하나만 받기는 부족하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리스도가 다른 모든 것은 무시하고 오직 한 가지 명령. “사랑하라”를 실천했는지만 본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p182)

책의 상당 부분을 가톨릭 사제들과 가톨릭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이어진다. 책을 읽어 보면 이 책이 왜 금서가 되고 종교개혁의 촉매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연옥에 있는 사람이 구원받는다니 이런 터무니없는 말이 믿어지고 행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성경을 사제들만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성경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다고 하면 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신학을 알고 배웠던 사람들, 즉 저자나 루터 같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명령 사랑하라를 지키며 실천했던 순수했던 개신교가 여전히 그 순수함을 갖고 있는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교회가 세속화되어 감을 우리는 너무 자주 많이 보게 된다.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이 행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은혜가 되지 않는다. 불법과 편법 사이 교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양 떠든다. 부끄러움에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은혜 인 양 떠드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저자의 말처럼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직 한 가지 명령. 사랑하라를 실천했는지만 볼 것인데. 사랑이 그리스도의 본질이며 본체인데, 우리는 사랑을 너무 내 식으로만 이해하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는 사람으로 마음이 무겁다. 쩌렁쩌렁한 우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랑하라”

 

저자는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이다. 방대한 인문 지식들이 책의 곳곳에 빼곡하게 흩어져 있다. 그 자취를 주석을 의지하여 힘겹게 한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따라갔다. 이름도 생소하고 낯선 그리스 로마신화의 가계부터 신들의 특징, 인문학자들의 비유와 책의 문장들을 저자는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만 따라가는 나는 숨이 찼다. 몇 번을 넘겨서 주석을 다시 읽어야 했고, 주석을 읽느라 글의 흐름을 놓치기도 했다. 중반쯤 읽었을 때는 뒤에 해제를 먼저 읽고 올까 하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다. 지금 읽어도 시대 상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풍자들을 읽으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느 시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전이 되는 것이겠지만. 또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과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공감되지 않는다. 풍자나 비평이 그렇게 날카로운 것 같지 않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대를 생각해 본다. 그 시대에 저자 말고는 누구도 가톨릭을 이렇게 비판하거나 풍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할 때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이런 어려움은 뒤에 실린 친구에게 쓴 편지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비판받는 것과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저자는 견디기 힘들어한다. 조심스럽고 겸손한 마음을 담은 편지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우신을 등장시켜 사회 기득권의 부패와 위선을 말하던 저자는 실제 생활과 관계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 번의 이야기, 책으로 끝나는 일이라면 누구나 개혁가나 풍자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말, 그 책 이후에도 그는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삶으로. 자신의 삶에 더 무거운 책임을 지면서. 자신의 말과 글에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 때로는 조롱까지도 견디며 살아야 내야 하는 것이다. 기꺼이 감당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의 시작이 있어서 종교개혁은 시작되었고, 그 혜택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으니. 또한 번역을 한 박문재님께도 감사한 마음이다. 정말 상세하고 자세한 주석을 보며 에라스무스 못지않은 해박함에 감탄했다. 도장 깨기 같은 마음으로 도전했다가 오래 고생했다. 하지만 좋은 책과의 만남에 힘겨운 독서도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누구? 저처럼 힘겨운 독서를 행복한 만남으로 만드실 분 있으신가요? 손드세요~ 저만 혼자 고생할 수는 없잖아요. 혹시 당신은 힘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용기 내서 도전해 보세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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