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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었다

[도서] 한 사람이 있었다

이재무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책을 고를 때 참고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출판사다. 가을이고 시를 읽고 싶었고, 마침 열림원의 시집이라 고민 없이 골랐다. 꽤 유명하다는 시인의 이름은 미안하지만 몰랐다. 그렇지만 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시의 베아트리체였던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대문 글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시인은 몇 살이나 되었는데 이런 감정을 아직도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그럼 나이가... 시인은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인가?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벌초>,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몸에 피는 꽃>, <시간이 그물>, <위대한 식사>등이 있다.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품 해설에 나온 말처럼 황홀한 고통의 노래처럼 이어진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빛바래지 않고 순수하게 이어지는 시의 숲길을 천천히 음미하듯 걸어 본다.

 

한 사람 1

최초로 그리움을 심어준 사람

결락의 고통을 안겨주고

부재의 허무를 살게 하여

나를 깊이 만든 사람

세계가 비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우친 사람

바람을 예민하게 느끼고

구름과 별과 달에 눈길이

머무는 습관을 심어준 사람

비와 눈 속을 걷게 한 사람

그 흔한 달개비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하고

기차와 여관과 해안선과 강안을 좋아하게 만들고

바다의 수평선과 연을 맺어준 사람

슬픔이 거름이고 힘이고 지혜를 준다는 것과

나를 울게 한 이는 나라는 것을 알게 한 사람

모국어와 사랑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시를 쓰게 한 사람

이 책의 주제 같은 시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마지막에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까지 쓰고 있다. 결락의 고통과 부재의 허무를 시라는 것으로 승화 시킨 시인. 모든 조개는 이물질을 진주로 승화 시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픔과 상실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시인이 되거나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부단한 부딪힘과 그리움이 사랑이 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고통보다 더 큰 황홀함으로 시에서는 아직도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이 혹은 감사가 묻어난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쓰면서도 그 사랑과 그리움은 시의 행간에 남는다. 거름과 힘, 지혜를 주는 슬픔도 슬픔보다는 그 이후에 얻는 유익이 많아 보인다. 그런 것들을 슬픔에서 길어내기 위해 시인은 얼마나 많은 날을 자신을 울게 했을까? 자신의 울음마저도 한 사람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모국어와 사랑에 빠지게 하고 시를 쓰게 한 한 사람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바래거나 옅어지지 않으며 날마다 새롭게 새로운 모국어로 태어난다. 그 모국어들이 시의 바다에서 정갈하게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오롯이 아픔만이 아닌 그 한 사람을 향한 마음들이 읽는 내게도 전해진다. 가슴속 아련한 첫사랑을 더듬더듬 짚어보게 만드는 시. 시를 통해 풀어 놓는 시인의 투명하고 맑은 수채화. 그 그림 앞에 먹먹한 마음으로 오래 서성인다.

 

미루나무

언덕 위 큰 키로 서서 바라보고 싶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네 모습

바람에 팔랑대는 이파리처럼 나를 들키고 싶었다

작품 설명에도 인용된 짧지만 강렬한 시다. 언덕 위 큰 키로 서서 멀리서 걸어오는 네 모습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마음. 아직 눈에 다 잡히지도 않는 희미한 실루엣에도 팔랑대는 이파리처럼 흔들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것. 특히 짝사랑일 때의 그 간절한 마음. 들키고 싶기도 하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마음. 하지만 언덕 위 큰 키로 서서 멀리서 걸어오는 네 모습을 보는 나는 오늘은 들키고 싶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살랑이는 바람에도 팔랑대는 이파리처럼 자연스럽게 들키고 싶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도록. 자신에게도 너에게도 숨길 수 없도록 들키고 싶을 만큼 커진 마음이 언덕 위에 서 있는 미루나무 같다. 팔랑대는이라는 말로 느껴지는 바람이 봄날 같다. 왠지 이런 감정과 봄날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초록이 싱그러운 미루나무의 짧은 이파리들 사이로 부드럽게 부는 바람. 그 바람에도 온몸을 흔드는 이파리. 바람이 불고 있음으로 모두가 알게 하는 이파리들의 움직임처럼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오늘은 들키고 싶다. 그렇게 들키고 싶었던 마음들은 어디로 갔을까? 온전히 너에게 향하지 못하고 지금 이렇게 시가 되었나 보다. 오늘도 시인의 마음엔 한 줄기 바람이 분다. 

 

악기

내 몸은 그녀 앞에서 악기가 되곤 하였다

나를 연주하는 그녀

그녀가 보이면 내 몸의 현은

절로 튕겨져 다양한 음계를 내었다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연주가 아프고 황홀했다

들키고 싶었던 마음들이 그녀 앞에서 연주하게 했을까? 그녀가 보일 때 절로 튕겨진 다양한 음계는 어떤 소리를 내고 연주했을까? 얼굴이 붉어졌나?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아예 작아져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나? 그것도 아니면 어색하면서도 크게 웃었나? 눈동자는 오직 그녀를 쫓으면서도 불안한 듯 흔들렸나? 한 사람을 어떻게까지, 얼마나 사랑해야 그 사람 앞에서 내 몸이 악기가 되는 걸까? 시로 읽는 다른 사람의 사연은 아름답고 분위기 있다. 하지만 내 몸이 상대를 향해 악기가 될 정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얼마나 큰 고통일까? 사랑은 굳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최고로 아는 나는 감히 짐작조차도 못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아픔과 상실에도 시인이 되지 못한 것이겠지.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려고 천천히 한 번 더 읽어 본다. 나는 누구를 향하여 들을 수 없는 연주를 아프고 황홀하게 하고 있을까?

시에는 한 사람에 대한 마음들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제목이 한 사람이 있었다 하겠지만. 사랑 노래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었나 보다. 사랑 노래는 풋풋한 청춘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이런 사랑도 있음을 본다. 이런 그리움도 있다는 것을.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인연이 되지 못했어도 평생을 마음속에서 시가 된 사람. 그 사람으로 인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황홀했다고 시를 쓰는 시인. 그런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그의 아내를 생각했다. 남편이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산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일 것 같았으므로. 하지만 시인의 아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지 쉽게 생각하기로 한다. 어찌 되었던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아름다운 시를 읽고 즐길 수 있으니 감사하다. 시인이 밤새 고통 가운데 길러낸 시들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저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감동하면서 읽으면 된다. 순간 시인이 아닌 것이 감사하기까지 한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신체적 나이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아직도 여전히 소년의 마음과 감성으로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며 여전히 그녀를 향한 마음들을 꺼내는 시인을 만나보길. 마음 한구석 잊고 있었던 한 사람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마음들이 솔솔 피어나는 따뜻한 시간을 선사해 줄 것이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11월에 따뜻한 차를 마시듯 마음이 온통 따뜻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게 될 테니. 주의- 아내나 남편에게 질문하지는 말자. 나만의 그로 혹은 그녀로 시와 함께 묻어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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