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블로그

리뷰 김훈의 연필은 칼이다.

  김훈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칼의 노래〉였다. 〈칼의 노래〉의 첫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나는 김훈의 팬이 되었다. 그 한 문장이 〈칼의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요약해서 보여주었다. 하나의 문장이지만, 천근의 무게를 가진 문장. 그것이 바로 김훈의 문장이다. ‘버려진 섬’은 왜란이 발발하자 제 살기에 바빠 도망친 선조에게 버림받은 백성이었고, ‘꽃’은 버려진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왜적에 대한 항전의지였다. 국가의 어떤 도움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일본에 대항해서 싸운 민초들...

2019.08.16 공감 횟수 2 댓글 수 0

리뷰 인과응보(因果應報)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거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15쪽)     얼마 전 보았던 〈무현, 두 도시 이야기〉라는 영화의 초반부에 화면 가득 펼쳐진 자막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

2017.01.17 공감 횟수 1 댓글 수 2

리뷰 시작의 끝, 끝의 시작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89쪽.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는 반드시 제출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건 죽음이다. 언제 제출해야 될지 모르는 과제. 하지만 누구도 예외일수 없는 과제. 그게 바로 죽음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삶을 영위해가는 그 최종목적에는 바로 그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있...

2016.11.08 공감 횟수 2 댓글 수 2

리뷰 상실의 시대

  책의 제목은 오래전부터 들었다. 작가인 재롬 데이비드 셀린저는 잘 모르지만. 책의 제목은 모앤의 〈붉은 수수밭〉이나 오래전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연상시켰다. 왜 그랬을까? 그냥 추측하자면 붉은 수수밭과는 수수와 호밀이 곡식이라는 것이고, 러시아가 배경인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농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니 그런 추측을 했을 듯싶다. 아마도 붉은 수수밭과 지붕위의 바이올린의 배경이 농촌이고, 제목 속 호밀이라는 곡물이 그런 연관성을 조작했을 것이다. 수수와 호밀은 그렇게 대우받지 못하는 작물이다. 거친 느낌을 주는 ...

2016.10.27 공감 횟수 6 댓글 수 8

리뷰 삶은 자율주행 차인가?

  마지막 장을 넘기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밀려왔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대단하다는 감탄과 더불어 왠지 모를 허무가 밀려왔다. 한집안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통해 한국가의 흥망성쇠를, 나아가서는 인류의 흥망성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에는 감탄이, 정해진 궤적을 따라 운명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에 대한 덧없음이 허무를 동반했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작품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사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버무러져 이야기를 끌어간다. 한편...

2016.10.13 공감 횟수 2 댓글 수 2

리뷰 자신만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 ‘노벨상 수상 작품’이라는 작가의 이름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를 인식한다고 해도 독서모임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저 멀리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이며, 그 이름도 생소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웠으리라. 전혀 생소한 작가의 더욱 생소한 작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적은 활자에 여백도 없이 촘촘하게 편집되어 있는 책의 분량도 첫 인상이 좋진 않았다. 거기에 생전 모르는 작가이니 거부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고 그가 만든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거부감은...

2016.09.29 공감 횟수 3 댓글 수 4

리뷰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재미있다. 마치 한편의 잘 써진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다. 문장 또한 미려하다. 원본이 그런지, 아니면 번역가의 탁월한 문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 어렵다고 했던가? 그동안 만나본 알베르 카뮈의 작품은 〈이방인〉과 이 작품이다. 하지만 두 개의 작품이 카뮈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했을 때 그의 작품은 결코 어렵지 않다. 흥미진진하다. 중간에 책을 놓기 힘들만큼 재미있다. 냉철한 시선을 유지한 채 위기에 처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자인 김화영 교수에 의하면 작가는 이 ...

2016.09.26 공감 횟수 5 댓글 수 2

리뷰 저항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자유를 향한 강한 외침이 피를 꿇게 한다. 이 명문이 바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의 한 구절이다. 위 구절과 글의 제목만 봐도 이 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알 것 같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 반드시 리뷰를 작성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려고 꾸준히 리뷰를...

2016.06.28 공감 횟수 4 댓글 수 2

리뷰 삶은 한바탕 봄 꿈 같은 것.

  고전이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은 책을 일컫는 말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김만중의 구운몽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소설로써 학창시절 교과서에도 언급되고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는 작품이기에 그 내용과 저자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원전을 만나본 사람은 많지 않는게 사실이다. 옛글이기도 하지만 그냥 읽어 넘기기에는 작품의 무게와 문체의 심오함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는 다른 책에 소개된 이유도 있지만, 위의 말처럼 가장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원전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이다. ...

2016.06.24 공감 횟수 9 댓글 수 5

리뷰 ‘남의 살’에 대한 욕망이 비극의 시작이다.

어느 날 저녁 뉴스를 통해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가 세계 3대 문학상에 해당하는 맨부커 인터내서널상을 수상했단다. TV가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광주가 고향인 작가란다. 궁금했다. 그녀가 누군지. 그리고 어떤 작품인지. 그것이 그녀의 작품과 만나게 된 계기이다. 3가지 연작이 시차를 두고 하나로 구성된 작품은 첫 장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끝없는 긴장감으로 중도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로도 그 잔상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내 일상을 지배했다. 놀라웠다. 그리고 창피했다. 가까이에 이런 ...

2016.06.19 공감 횟수 4 댓글 수 2

리뷰 웰 다잉(Well-Dying)의 조건

  생명이 있는 것은 죽는다. 우리가 어머니의 태를 빌어 세상에 태어난 표식으로 배꼽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죽음이 미지의 세계가 주는 공포와 두려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며, 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인간에게는 그저 외면하고 싶은 대상일 뿐이다. 아니 모른 척한다. 하지만 잘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네 선조들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오복 중 죽음을 뜻하는 고종명(考終命)을 최고의 복중 하나로 꼽은 것이 이를 대변한다.    &nbs...

2016.05.30 공감 횟수 6 댓글 수 4

리뷰 삶은 삼류소설 속 실없는 농담 같은 것.

  챨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고. 어쩌면 이 명제에 가장 부합한 작품이 바로 밀란 쿤테라의 첫 작품 『농담』은 아닐까. 대학 학생회 간부이며, 인정받는 공산당 당원인 ‘루드비크 얀’. 그의 연인 ‘마르케타’가 학교의 학습모임을 떠나 보내온 편지에 자신에 대한 그리움 대신 모임에서의 즐거움만 적어 보낸 것에 섭섭한 나머지, 답장삼아 보낸 엽서에 정치적 농담을 적는다. 이로 인해 그는 사상적으로 의심받게 되고, 자이비판을 당하게 된다. 그런 처지에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2016.04.28 공감 횟수 5 댓글 수 3

리뷰 한 여인의 기구한 초상

  한 인간으로 태어나 겪는 일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 있다. 그 첫째는 생명을 가진 대상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생명의 종말을 맞는 죽음이고, 세 번째는 또 다른 나의 반쪽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결혼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만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결혼이라는 것은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더군다나 결혼을 위한 전제가 사랑하는 두 영혼이...

2016.04.26 공감 횟수 1 댓글 수 1

리뷰 변방이 곧 중앙이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135쪽)      이곳 남도지방은 어느 공간을 가더라도 잘 쓴 글씨 한 점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 관공서나 가정집을 불문하고 말이다. 어떤 글씨는 초서로 써지거나 한문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그 의미를 알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글씨가 가진 의미보다 글씨가 가진 기상과 넘치는 힘이 더 돋보인다. 흔히 하는 말로 호랑이의 포효와 승천하는 ...

2016.04.21 공감 횟수 2 댓글 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