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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도서] 연필로 쓰기

김훈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김훈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칼의 노래였다. 칼의 노래의 첫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나는 김훈의 팬이 되었다. 그 한 문장이 칼의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요약해서 보여주었다. 하나의 문장이지만, 천근의 무게를 가진 문장. 그것이 바로 김훈의 문장이다. ‘버려진 섬은 왜란이 발발하자 제 살기에 바빠 도망친 선조에게 버림받은 백성이었고, ‘은 버려진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왜적에 대한 항전의지였다. 국가의 어떤 도움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일본에 대항해서 싸운 민초들을 김훈은 이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중에 작가가 꽃이꽃은의 조사 하나를 놓고서 일주일을 고민했다는 후일담을 듣고서 김훈답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꽃은은 자발적이 아닌 인위적인 외부의 도움이 가미된 방면 꽃이는 스스로 피어나는 꽃을 나타낸다고 하는 그의 답은 문장을 되씹으면 되씹을수록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김훈의 문장은 무겁다. 조사하나를 가지고 일주일을 고민할 만큼 그의 글은 신중하다. 그것이 바로 김훈의 글이 주는 마력이며,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멋은 아닐까.

 

   김훈의 글이 가진 마력에 빠진 나는칼의 노래이후 김훈의 작품을 미친 듯이 찾아 읽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서적뿐만 아니라 이미 절판된 김훈의 초기작품도 찾아 나섰다. 유명한 중고책방을 출근하다시피 뒤져서 칼의 노래>이전 절판된 김훈의 작품 전부를 구했다. 자전거 여행을 비롯한 초창기 그의 수필집을 구해서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읽었다. 일부 책은 필사도 했다. 필사를 통해 그의 문장이 가진 무게감을 반이나마 따라갈 수 있을까 해서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김훈의 문장은 김훈만의 문장이다. 그의 글이 가진 천근의 무게감도 마찬가지다. 일체의 감성을 배제하고 기자시절의 경험을 살려 사실을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글을 따라간다는 것은 요새말로 넘사벽이었다. 그건 누구도 표현해낼 수 없는 김훈만의 경지였다. 하여 그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한 문장 한 문장 되씹으며 만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할 수밖에.

 

   이 책을 통해 만나는 김훈의 글은 역시나 건조하다. 우리네가 다들 기억하는 사건, 사고들을 일체의 사견을 버리고 포커페이스의 덤덤함을 무기로 써내려간다. 그의 연필이 달려가는 곳에는 세월호도 있고, 화재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도 있고, 축구공도 있고, 황병기의 가야금 병창도 있고, 먹거리도 있고, 먹거리가 낳은 배설물도 있고, 6.25전사자의 유해도 있다. 이 책 속의 그의 연필은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향한다. 9시 뉴스를 가득 채우는 사건 사고부터, 우리가 주시하지 않고 넘어가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이 그의 시선과 연필을 만나면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광채를 뽐낸다. 건조함을 무기로 한 글이 오히려 광채를 발하는 것이 그의 글이 가진 절대적 모순이다. 김훈의 이 책의 서문에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 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자신의 뜻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미 김훈의 글을 통해 마음의 부침을 느끼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그는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객관적이어도 너무도 객관적인 그의 시선을 받아 흘러간 연필이 만들어 낸 궤적의 발자국은 깊은 연민과 감성의 주억거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서우리만치 냉정한 객관성이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때로는 분노케 하고, 때로는 연민에 사로잡히게 하고, 때로는 서글프게 한다. 이 무슨 역설인가. 그래서 김훈의 글을 대할 때마다 무섭다. 그의 글이 가진 그 냉정함이 무섭고, 그의 글이 가진 힘이 무섭고, 그의 글이 가진 감성의 질곡이 무섭다.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려진 손가락 사이로 공포영화를 보듯, 무서우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고 그의 글을 만나는 나는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그게 김훈의 글이 갖는 김훈만의 글맛이다. 한 때 그의 글맛을 본받고자 그의 글을 필사도 해봤지만 언감생심. 그저 그의 글을 대할 때마다 느끼며 감동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래서 오늘도 난 김훈의 글을 만났다.

 

   감성을 배제한 건조한 글속에 깃들인 그의 당찬 비유는 그의 글이 지니는 무심함에 무게를 더한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읽는 이의 가슴 깊은 곳의 감성을 진저리치게 만든다. 절로 긴 한숨이 새어나온다. 문장 하나에 온 우주의 진리가 담긴 듯한 그의 글의 진중함, 삶의 오묘함을, 진리의 심오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의 글은 날카롭다. 그의 글은 힘이 있다. 그의 글은 직선이다. 그의 글은 단순하다. 그의 글은 담백하다. 그의 글은 정직한 밥내음이 난다. 아무 맛도 없는 것처럼 무미하지만, 읽고 나면 아련히 느껴지는 혀끝의 그 맛. 뭐라 말할 수 없는 그 맛이 바로 김훈의 글맛이다.

 

   그의 글은 살아서 뛰노는 짐승이다.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길들인 순한 가축이 아니라, 산천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짐승이다. 때로는 토끼가, 때로는 노루가, 때로는 이 땅에서 사라졌다는 호랑이의 눈빛이 되는 것이 그의 글이다. 우리네가 살기위해 매일 정해진 끼니를 먹고, 그 끼니를 먹기 위해 힘겨운 밥벌이를 해야 되고, 그 밥벌이를 위해 오늘도 정해진 일상을 해치우고 사는 우리들처럼 이 책속의 그의 글은 우리네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을 만나고 나면 우리가 그저 그렇게 사는 일상의 순간순간이 그렇게 소중할수 없다. 대단하지 않는 것에 대단함을 느끼게 하는 그의 글이 모아진 우물. 그의 시선이 머무는 우리네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 바로 연필로 쓰기가 아닐까. 삶의 단순함에 때로는 서글퍼지고, 우울해질 때 그 서글픔과 우울함을 달래줄 감로수 같은 글이 바로 이 책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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