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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이다. 30년이 넘는 직장생활동안 9일의 휴가를 쓴 것은. 물론 실질적인 휴가는 5일이다. 휴가 5일에 앞뒤의 주말을 더하니 9일이 된 것이다. 그동안의 직장생활 중 가장 길었던 휴가는 결혼으로 인한 휴가였다. 그때 시절엔 일주일을 주었다. 하지만 회사의 분위기가 결혼으로 주는 일주일 휴가도 다 쓸 수가 없었다. 5일은 쉬고, 주말인 토요일-그때는 주 6일 근무체계였다-에는 출근을 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었다. 그 시절 금융기관에 근무하던 나도 그런 풍토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고, 이제 내일 직장생활을 정리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물론 언제 정리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휴가를 5일 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우수개 소리처럼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9일의 휴가. 참 적응하기 어려웠다. 헌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결혼이후 온가족이 이렇게 긴 시간을 같이 있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이번 휴가에 맞춰 이미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과 아들도 같이 휴가를 낸 상태라 온전히 9일간을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었다. 숙소는 딸이, 항공편은 아들이, 체류비는 내가 맡기로 했다. 같이 여행을 하고, 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9일간 지지고 볶았다. 온전히 9일간 우리 가족은 함께 움직였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9일간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또 애들이 성장해 가면서는 진학과 취업, 그리고 병역의 의무 등 이런저런 사유로 같이 할 시간을 많이 갖지는 못했다. 거기에 오랜 시간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는 직장생활도 한 이유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참 그렇다. 산다는 것이.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그 오랜 시간을 지냈지만 이렇게 함께 할 긴 시간 한번 제대로 갖지 못하고 뭘 위해서 그리도 바쁘게 살아왔는지, 행여나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서 3일간의 하계휴가를 신청하는 것도 온갖 눈치를 보았던 그 시절부터, 이제는 웬만큼 자리를 잡아 누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관리자의 직위에 오르고서는 아예 휴가는 생각도 못하고 지낸 시간이 오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선배들은 무슨 재미로 직장생활을 하고 삶을 영위해 갔을까? 돌이켜보면 우리네 선배들은 거의 휴가라는 것이 없었다. 물론 노동법상 정해진 기간은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휴가를 가지 않고 그냥 지냈다.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해서는 연말에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기도 했지만, 그 보상이 휴가를 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그랬다. 모두가 직장이 최선이고, 일이 삶의 존재이유로 알고 지냈다. 그러니 그런 선배들을 지켜보며 살아온 우리세대도 그 풍토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헌데 지금 세대는 그렇지 않은 듯 하다. 딸과 아들이 별 어려움 없이 일주일의 휴가를 내는 것도 그렇고, 개인에게 부여된 휴가를 무조건 사용하라고 회사에서 독려하는 것도 그렇고, 세상이 변하긴 변했는 모양이다. 하기사 휴가를 다녀온 이후 본 신문기사에 일부 직장에서는 년차를 전부 한꺼번에 사용하는 15일 휴가도 권장하고, 심지어 삼년에 한 번씩 별도로 안식 월을 일 개월씩 부여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러니 15일 휴가에 안식 월을 합하면 거의 두 달에 버금가는 휴가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버킷리스트 중에 제 일번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순례하는 것이다. 헌데 직장인이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일정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회사를 이직하거나, 퇴직하지 않고서는. 헌데 신문에 나온 그런 기업의 경우는 재직 중에도 가능한 일정이 나온다. 부러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는 있을지 몰라도 젊은 청춘들이 부럽지는 않았는데 그런 부분은 내심 부러웠다. 개인적으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속된 말로 다리에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순례길을 갈려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우리세대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딸과 아들이 어릴 때부터 주지시킨 것이 하나있다.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해서 별도의 가정을 갖더라도 일 년에 3일은 온 가족이 모여 휴가를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 약속대로 해마다 우리 가족은 일 년에 3일은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같이 시간을 보냈다. 올해 아들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직장에 들어가 맞은 첫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9일간의 휴가 마지막 날. 딸과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내년부터 휴가는 각자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가족과 휴가는 휴일을 끼워서 다녀오자고 말이다. 아직 한창 때인 딸과 아들이 부모에 얽매어 그 귀한 젊음의 시간을 보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휴가지에서 보니 어디든 젊은이들로 넘쳐났고, 연인 또는 또래끼리 젊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처럼 부모와 같이 온 다 큰 자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이름으로 보대끼며 같이 보낸 9일의 시간. 30년이 넘는 직장생활 중 처음이었던 9일간의 휴가. 앞으로 이런 시간이 또 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9일의 휴가는 삶에 있어 되돌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그 추억이 귀한 것은 같은 시간이 두 번 맡기는 힘들기 때문이리라. 딸은 지난 9일간의 추억을 동영상과 사진집으로 만들어서 보내주었다. 그저 일에만 얽매여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쉬는 것을 모르고 아등바등 달려온 지난 시간. 그저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건 개인적인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 모두의 소명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물로 위대한 역사적 성취나 세상을 바꿀 업적은 없었을 지라도 한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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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유럽 다녀오셨어요?
    온가족이 날짜를 맞춰 함께 여행한다는게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후안 님의 가족은 9일간 함께 보내셨군요. 좋은 추억 만드셨으리라 봅니다.
    저희 가족도 9일간의 휴가는 못가고 5일간의 휴가를 가까운 외국에서 보내고 왔어요.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기꺼이 참여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요. ^^

    2019.09.05 17:2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후안

      자녀들이 장성해가기 시작하면 개인마다의 일정이 있기에 같이할 시간을 맞추기란 쉬운일이 아니죠. 그래서 이번에 맘먹고 서로 일정을 맞췄네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같이 부대낀 시간이 없었던것 같아 다녀오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휴가였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이렇게 긴 휴가를 쓰는 것도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말씀하신대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어진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케하는 귀한 시간이었네요.

      2019.09.06 10:43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가족이 단 며칠이라도 함께하며 정을 쌓는 일을 소명처럼 여기는 단란한 가정을 떠올립니다. 저는 가족 없이 혼자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날 때가 많은데 뒤가 돌아봐집니다. 저도 퇴직하면 걷고 싶은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시간 걷는 일이 쉽지 않지만 관리를 잘해서 길 위에 서고 싶어요. 저도 내년이면 직장 생활 30년인데 그동안 바삐 살았던 자신을 위로하며 가고 싶은 길 위에 서려 합니다.

    2019.09.05 17:5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후안

      샨티님도 산티아고 길을 마음에 두시고 계시네요. 저도 다리에 힘이 남아있을때 떠나고자 하는데 국내 직장의 여건상 퇴직을 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네요. 하지만 마음에 언제나 미련처럼 남아있어 조만간 떠나고 싶은 생각입니다. 준비하는 차원에서 체력은 물론이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만 어쩔지 모르겠네요. 내년을 계획에 두고 있는데 할수 있으면 한 몇달 휴직을 해서라도 다녀오고 싶은 생각입니다. 잘 안되면 퇴직이라도....^^

      2019.09.06 10:46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