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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형님이 한분 계시다. 이분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일반적인 관계로 맺어진 분은 아니다. 십 몇 년전 한 모임에서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의 최고위직에 있다가 이제는 은퇴해서 그룹 계열사의 오너로 계신다. 서로가 일상에 치이다보니 잘해야 일 년에 한번 얼굴을 마주할까 말까 하지만 자주 안부를 확인하는, 속을 털어놓고 애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인 중 한분이다. 모처럼 일정에 여력이 생겨 얼마 전 주말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같이 식사하며 이런저런 애기를 나누다 내가 송가인의 애기를 꺼냈다. 요즘 어떤 자리에 가던 기회가 되면 송가인 애기를 꺼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형님. 송가인이라고 아세요?”

그 형님 왈 응 당연히 알지

내가 다시 말했다. “제가 요즘 송가인 땜에 사는 맛이 납니다. 노래는 들으세요?”

그 형님 왈 아니 못 들어?”

??? 아니 이 무슨 시츄에이션?? 안 듣는 것이 아니라, 못 듣는단다. 허 참????

궁금함에 물었다. “아니 형님 왜요?”

그 형님의 대답 송가인의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도대체 들을 수가 없어

 

   그날의 애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 형님이 어느 날 늦은 시간 퇴근하니 집에서 형수님이 TV를 보고 계셨단다. 아마 미스 트롯이었던 듯 하다. 헌데 이 형님 티비 조선을 바퀴벌레보다 더 싫어한다. 행여나 채널을 돌리다 티비조선을 스치기만 해도 시청률에 0.0000001%라도 도움이 될까 아예 검색채널에서 삭제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해 집에 갔는데 형수님이 티비 조선을 보고 계시니 큰소리로 야단을 하신 모양. 옷을 갈아입고 씻으려고 세면장으로 가는데 문득 TV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단다. 그 노래 소리에 이끌려 세면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 TV앞에 서서 처음 본 가수의 노래를 들었단다. 헌데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뚝... 행여 형수가 볼까봐 얼른 서재로 들어가 처음 본 그 가수가 누구인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단다. 그때 TV로 들은 노래가 김소유와 송가인이 함께 부른 진정인가요였단다. 유튜브에서 송가인의 영상을 발견하고 노래를 들었단다. 그 유명한 한많은 대동강”. 그 노래를 들으며 한없이 울었단다. 형수가 보니 씻는다던 사람이 갑자기 서재로 들어가 안 나오길래 형수가 들어가 봤더니 형님이 모니터를 보면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그렇게 울고 계셨단다. 깜짝 놀란 형수가 뭔 일 있나며 그렇게 물어도 형님은 말씀이 없이 눈물만 뚝뚝뚝... 그때 형수는 형님이 죽을 병 통보받고 그리 우는 줄 알고 한바탕 난리가 났단다. 물론 나중에 노래 한곡으로 그리 된걸 알고, 이해는 못하셨지만. 그 뒤로도 이 형님 송가인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노래를 들을 수 없단다. 듣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송가인 노래의 어떤 부분이 저리 강한 사람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까?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은 그 형님뿐만 아니다. 주위에 아는 지인들 중에도 송가인의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너무 쏟아져 듣지 못한다는 사람이 여럿 있다. 어디 그뿐인가? “뽕따러 가세” 3회에 출현한 서울 광장시장 육회집 어머니는 노래가 아니라 송가인이라는 이름 석자만 듣고도 그냥 펑펑 눈물을 흘리신다. 그 이유가 뭘까? 송가인의 노래에 어떤 마력이 있어, 한세상 부지런히, 강하게 살아온 이들을 무장해제 시켜 펑펑 울게 만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까? 너무나 궁금했다. 아니 다른 무엇을 떠나서도 송가인 노래의 어떤 부분이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축제의 장에 나와 송가인 노래 한곡을 듣기 위해 서너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까. 어디 그뿐인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가 삶의 의욕을 느끼게 만들고, 정년퇴직 후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이가 웃음을 짖고, 그들이 스스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고백을 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고전적 한국 미인형의 복스러운 외모, 트롯이던, 국악이던, 락이던, 발라드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노래든 소화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음악적 재능. 귀가 뚫리고 가슴이 뻥 뚫리게 만드는 살 떨리는 폭풍 가창력,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같은 품성, 꾸밈없고 정이 넘치는 인간미는 더 이상 애기하지 말자. 애기해야 입만 아프다. 최근에 뽕따러 가세1회부터 정주행 하며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면 저게 어찌 사람의 능력일수 있나 저건 귀신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노래에 신이 있다면 아마 송가인의 능력과 같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만큼 노래에 관한한 송가인의 능력은 넘사벽이다. 그러니 기존의 가수들과의 비교도 의미 없다. 가끔 TV속 음악프로에서 가수의 노래에 반응해 한 두 사람의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끔 봤다. 헌데 그때 그 음악프로의 노래가사는 대부분 부모에 대한 것이라던지, 아니면 헤어진 연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헌데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노래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흥겨운 노래를 듣는데도 눈물이 쏟아지는 건 무슨 일인가? 물론 송가인의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국악을 하면서 스며든 우리네 한의 정서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송가인의 목소리에는 흥겨운 노래를 할 때도 한의 정서가 깃들어져 있지만, 구슬픈 노래를 할 때는 역으로 목소리에 흥이 깃들여있다. 이렇듯 이율배반적인 목소리가 바로 송가인의 목소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송가인을 향한 전 국민의 폭발적인 애정공세는 설명이 안된다.

 

   송가인만의 목소리가 가진 그 마력. 듣는 이의 가슴속을 허락도 없어 파고들어와 뒤흔들어 폭풍 눈물을 쏟게 만드는 그 힘, 누구나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송가인의 포로가 된다. 처음엔 그 이유가 송가인의 성장배경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송가인의 성장환경이 불우하거나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송가인의 성격이 워낙 긍정적이고 활달한 면도 있지만, 집안환경으로 봐도 부모님 두 분 다 다정다감하시고, 정과 흥이 넘치시는 분이다. 거기다 위에 두 오빠를 둔 막내였으니 온 가족의 사랑은 독차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송가인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은 그런 성장과정이 한몫했을 것이다.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 7년간의 무명생활이 송가인의 삶에 있어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만큼 큰 굴곡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러니 성장과정에서의 정서가 송가인의 노래 속에 깃들었다고 추측할 수는 없다. 난 송가인이 성장과정 속에서 보고 들은 환경도 일익을 담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가인의 어머님은 무형문화재 제 72호인 진도 씻김굿의 전수조교이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씻김굿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진도 씻김국은 다른 지역과 달리 화려한 무복을 입거나 작두를 타거나 극적인 효과를 두지 않고, 진도 당골(무속인을 지칭하는 말)들은 소복을 입고 한지를 오려서 만든 넋전을 들고 굿을 한다. 씻김굿의 전 과정은 노래로 시작되어 노래로 끝난다. 씻김굿은 밤새 당골의 노래로만 이어진다. 춘향가나 심청가를 완창하는 것과 맞먹는 6시간이 걸린다. 웬만한 명창들도 춘향가나 심청가를 완창하고 나면 몇 달은 몸살이 나서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난 명창도 완창은 평생 서 너 번에 불과하다. 허니 씻김굿을 진행하는 당골의 입장에서는 가히 목숨을 내놓고 하는 굿이다. 씻김굿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종천의 마지막 대목인 길 닦음이다. 하룻밤 내내 걸리는 씻김굿은 길닦음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굿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즉 굿의 형식은 죽은 자의 한을 소멸시키고, 극락왕생을 바라는 행위이지만. 정작 씻김굿은 산자들의 한을 치유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행위이다. ‘씻김 굿씻김의 대상은 죽은 자의 원한이 아니라, 망자를 떠나보내는 산자들의 애환을 씻어주는 것이다. 굿 막판에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애환을 소멸시킴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이런 씻김굿을 어린 시절부터 자주 접해왔던 송가인의 잠재의식속의 씻김굿에 깃들인 한의 정서와 치유의 정서가 녹아들어갔을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송가인이 가수로 데뷔한 초창기부터 그런 정서가 발휘되어 송가인의 노래 속에 녹아들어가 있어야 한다. 헌데 아니었다.

 

   송가인의 노래를 접한 뒤로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송가인의 음원을 무작위로 수집해서 들었다. 헌데 들어보니 일부노래는 지금의 송가인보다 목소리는 청아한데 지금의 노래만큼의 감동이나 울림은 없었다. 심하게 애기하면 같은 사람의 노래가 맞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노래가 달랐다. 음원의 제작연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튜브의 영상이나 음원의 최초 제작연도가 명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정식 발매된 음원을 기준으로 확인해 볼 수밖에.

 

   송가인은 총 3장의 앨범을 출시했다. 1집은 201210월에, 2집은 20165월에, 3집은 20174월에. 1집과 2집은 조은심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고, 3집은 우리가 아는 송가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헌데 다 알다시피 송가인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미스 트롯이후였다. 그렇게 오랜시간 활동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2012년에 최초의 앨범을 냈던 송가인이 성인 가요 신인상을 받은 것은 7년이 지난 20181월 이었다. 2017년 일 년동안 3집에 실린 거기까지만1,581회 공중파를 탄 것으로 인해 성인가요 공중파 싱글 신인 여자가수 상을 받는다. 이로 미루어볼 때 송가인의 존재가 조금씩이라도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3집 앨범이 출시된 다음부터 였다. 전체 노래를 들어보니 지금과 같은 감동을 주는 송가인의 음색은 2집의 일부곡과 3집에서 보인다. 1집은 완전히 다른 노래다. 송가인의 3집에 실린 거기까지만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며 공중파를 타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데뷔한지 7년 만에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미스 트롯을 통해 송가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더불어 2집과 3집 사이에 이름도 바꿨다. 그럼 2집과 3집 사이에 일년동안 송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래의 감성 자체를 완전히 바꾸고도 남을 그 무엇은 무엇일까?? 가장 정확한 것은 송가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추측해볼 수밖에.

 

   여러 신화나 기독교의 성경을 보면 신이 누군가에게 위대한 일을 맞길 때 제일먼저 그들의 이름을 바꿨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첫 제자인 베드로의 원래이름은 시몬이었지만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로 바꿨다. 이런 예는 많다. 그래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한사람의 삶에 있어 커다란 변화이다. ‘조은심에서 송가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어찌 보면 가수로서는 신의 한수이다. 송가인의 이름을 풀면 노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니 지금의 송가인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름이 아닌가. 그럼 이름도 바꾸고, 노래가 가진 감성도 바꾼 그 일 년 동안에 무엇이 송가인을 그리 바꾼 것일까?

 

   길가다가 개가 방귀만 뀌어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세상이다. 혹 송가인의 1집과 2집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거나, 가슴을 울렸다는 글이 있는가 찾아봤다. 없었다. 물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누구 한사람 정도는 지금처럼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는 글이 있을 줄 알았다. 헌데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거의 최근의 글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영상하나를 발견했다. 송가인은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도 무대에 서서 국악공연을 한 자료는 여럿 있었다. 그중에 20153월에 진도 씻김굿 공연을 한 영상이 있다. 영상이 워낙 짧아 송가인이 진도 씻김굿을 처음부터 집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라와있는 영상에는 씻김굿의 마지막 대목인 길 닦음이었다. 앞에서 애기한 대로 씻김굿은 길닦음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굿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고 했다.. 길닦음은 굿에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고,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애환을 풀어주며 굿에 참석한 이들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목이다. 송가인이 삼장개비 곡조로 읋조리듯 진행하는 영상 속 씻김굿의 장면은 엄숙하면서도 구슬펐다. 어쩌면 이게 아닐까? 송가인의 노래가 듣는 이의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와 그들에게 위로를 주고, 그들의 마음을 휘젓는 이유가 바로 이 씻김굿의 정서가 그녀의 노래 속에 녹아들어간 것은 아닐까?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성장과정에서 본인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성향은 뭔가 계기를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폭발적으로 발현된다. 어쩌면 송가인이 성장과정에서 보고 들으며 잠재되어 있던 씻김굿의 정서가 그녀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다가 송가인이 직접 씻김굿을 집전하면서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잠재의식이 발현된 것이 아닌가. 3집과 씻김굿 공연의 시간차는 씻김굿의 감성이 송가인의 노래 속에 녹아들어가 숙성되었던 시간은 아닐까? 원래 무녀가 아닌 송가인의 입장에서는 씻김굿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워낙 연습벌레로 알려진 송가인이기에 상당량의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송가인의 잠재의식 속 씻김굿의 정서가 폭발적으로 송가인의 노래 속에 녹아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린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닐까? 김소유와 같이 부른 진정인가요에서 보여주었던 슬픔과 설움의 경계를 오가며 외줄타기를 하듯 감정의 골짜기를 위태위태하게 지나가며 노래를 이어가는 그 마력을 송가인이 2015년에 공연한 씻김굿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김소유와 같이 부른 진정인가요에서의 송가인은 자신의 파트 첫 소절에서는 슬픔, 거의 무반주인 두 번째 소절에서는 하소연, 세 번째 소절에서는 설움을 표현해낸다.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는 슬픔의 감정선에 원곡자인 김연자는 폭풍눈물을 쏟아낸다. 김소유가 불렀던 1절에서는 지긋히 눈을 감고 감상하던 김연자가 송가인의 두 번째 구절과 세 번째 구절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설움을 폭발시켜버린 것이다. 이것이 송가인의 노래가 가진 마력이다. 이것과 유사한 것은 용두산 엘리지를 부를 때 구사한 에드립을 활용한 3단 고음이다. 김연자는 일본진출로 한참 잘나갔지만,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엄청 고생했다. 이렇듯 삶에 애환이 많은 이일수록 송가인의 노래에 더 많이 감동하고 더 많이 위로를 받는다)

 

   위의 형님과 대화를 나눌 때 물었다.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무엇이 그리도 형님을 울렸는지?” 그 형님 왈 나도 몰라. 헌데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데, 그 노래 소리가 마치 누군가 내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고, 참 힘들지 고생했어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느낌을 받았단다. 내가 만난 어떤 여자 분은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면 따뜻한 손이 가슴을 어루만져주며 자신의 마음속 설움을 달래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글을 쓰는 나도 처음에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헌데 그건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건 치유의 눈물이었고, 위로의 눈물이었다. 한바탕 울고 나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린 누구나 살면서 가슴속에 많은 애환을 지니고 산다. 삶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쌓아갈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있어도 속 시원하게 어디 가서 한번 크게 울어보지도 못하고, 하소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꾸역꾸역 살아왔다. 억울해도, 힘들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제대로 위로 한번 받지 못하고, 그 모든 울음을 가슴속에 묻으며 산다. 그러다보니 세월은 가고 나이는 들었다. 이제는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은 하나 둘 곁을 떠나고, 귓전을 흘러가는 바람한줄기에도 마음에 서리가 내려앉는다. 하지만 아직도 힘들다. 부모를 부양해야하고, 자식들은 아직 제몫을 못한다. 나이가 들어 힘도 빠지고, 여기저기 치인다. 하지만 그래도 이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의 한 많고 서러움 많은 중년들이다. 헌데 어느 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가수의 노래가 들려온다. 그 가수의 노래는 귀로 들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들려온다. 어디 들려오기만 하는가. 허락도 받지 않고 그 노랫가락은 우리네 가슴속을 휘젓고 들어온다. 그리고 휘젓고 들어온 그 노래 가락은 어느 순간 따뜻한 손길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우리의 애기를 들어 주고, 우리의 슬픔과 삶의 애환을 어루만져준다. 그것이 바로 송가인의 노래가 가진 힘이다.

 

   씻김굿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산자를 위로하는 굿이다. 그들의 삶의 애환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행위이다. 송가인의 노래는 씻김굿이다. 송가인의 노래는 이 땅의 중년들의 아프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씻김굿이다. 이 땅의 가슴 아픈 이들을 위한 치유의 은사(恩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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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후안 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TV조선 프로그램 미스 트롯에 이어 미스터 트롯까지 보고 있으니 극우로 경도된 방송 시청률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집니다. 소리꾼 송가인의 노래는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씻김굿이라는 말이 딱인 듯해요.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송가인의 노래를 저도 즐겨 듣습니다.

    2020.02.22 09:48 댓글쓰기

PRIDE2